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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Oct 13. 2015

잠자기 싫어.

여전히 작지만 희망이 있고 즐겁기에 지옥은 아닌가 보다.

<일기와 수필사이>


  "아빠, 트램펄린 10번만 뛰고 잘게."

  "아빠, 그림만 그리고 잘게."

  "아빠, 이것만 하고 잘게."

  "아빠... 아빠... 아빠..."

  8시 30분이 되면 아이는 바빠진다. 자야할 시간이 다가온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갑자기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떠오르는 게 맞을 거다. 여하튼 아이는 이 놀이만 하고 잘게, 이 책만 읽고 잘게, 그렇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을 말한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날 부른다.

  방에 불을 끄고 하품을 하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요구사항을 말한다. 하나를 해결해 주면 또 다른 하나를 요구한다. 결국 단호하게 협상을 거부하고 잠을 재워야 한다. 나의 단호함에 눈을 억지로 감는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잠에 빠져든다. 이렇게 잘 자는 데 왜 안 자려는 걸까?

  아기 때 아이 엄마가 "여보, 우리 딸은 수험생인가 봐. 다른 애기들은 꾸벅 졸기도 하는데, 애는 잠이 온다 싶으면 고개를 흔들어 잠을 깨우네."라고 했었다. 난 아이가 꾸벅 꾸벅 조는 걸 거의 못 봤다. 낮잠은 애당초 3살 때 졸업했었다. 

  근데 내가 요즘 녀석이랑 비슷하다. 잠을 자기 싫다. 재미있다. 시계를 보면 자정이 가까워 오니깐 자야하는데 머리 속에서 자꾸 뭐가 떠오른다. 떠오르는 그것들을 놓치기 싫어서 그리고 계속 간직하고 싶어 잠을 잘 수가 없다. 녀석이 잠을 자려고 갑자기 아빠, 아빠, 아빠를 부를 때 굉장히 간절함이 느껴졌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어떻게 포기하고 잠을 잘 수 있을까? 애나 어른이나 재미있는 게 있으면 쉽사리 자기 어렵다.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1순위가 건강이고 재능은 그 다음라고 했다. 건강이 있으면 재능은 어떻게든 키울 기회가 있지만-물론 나 같은 사람은 키운다고 클 재능 따윈 없지만- 반대로 재능으로 건강을 지킬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은 10시에 잔다고 했다. 그럼에도 너무 재미있어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지만 보름 이상 새벽 2시를 넘겼기에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더군다나 달리기 후  마신 맥주 한잔에 그간의 피로가 몰려온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는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구절이 나온다고 하더라. 지옥이란 곳은 죽음의 희망조차 바라면 안되니 얼마나 끔찍한 곳인가. 비록 힘들지만 난 여전히 작지만 희망이 있고 즐겁기에 지옥은 아닌가 보다. 알딸딸해서 마음대로 써본다. 내일 읽어보고 지우든지 해야겠다.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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