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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Nov 14. 2015

목욕탕

나의 어머니가 목욕탕을 사랑하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나 보다.

<일기와 수필 사이>


  우울한 토요일이다.

  말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하루가 많이 힘들었다. 심지어 오늘 영어연수 시간에는 Jake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마음마저 힘든데 귀까지 피곤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오니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셨다. 식탁 위에는 김밥 3줄이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 혼자 있게 되었는데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조증이-건강검사 결과 부교감신경이 우세하다고 했다. 조울증은 아니고 열에 아홉은 조증인데 아주 가끔 울증이 오는 경우도 있다. 혹 조울증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웃자고 하는 소리니깐. 여하튼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있으면 이게 웬 횡재냐며 영화관을 가든지 아님 편하게 책이라도 읽었을 텐데 울증이 오시니 그것마저 하기 싫었다. 가까스로 <앵무새 죽이기>를 꺼냈지만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자판을 두리며 이러쿵저러쿵 글 쓰고 있는데 어머니와 아이가 돌아왔다.

  "할머니, 아빠 집에 있네."

  "출장 마치고 집으로 바로 왔나 보네."

  "아빠"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우울했지만 그래도 녀석의 볼에 볼을 비비고 녀석의 냄새를 맡으니 그나마 힘이 났다. 그럭저럭 회복을 하고 식탁에 앉아 김밥을 나눠먹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 꽤 피곤해 보인다. 목욕이라도 좀 다녀와라."

  "목욕탕 가면 피로가 좀 풀리려나?"


  아이는 안된다고 했지만, 어머니 말씀따라 기분 전환도 할 겸, 토이스토리 3편으로 협상하고 목욕탕을 갔다. 잠깐 목욕탕에 대해 언급을 하면, 내 어머니의 목욕탕 사랑은 아주 대단하시다. 어머니와 나는 지금 사는 집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나는 조깅 코스로 수목원이 있기 때문이고 어머니는 바로 앞에 큰 목욕탕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목욕탕을 가시는데, 그 이유가 다양하다. 소화가 안 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찌뿌둥 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심신에 작은 문제가 발생하면 반드시 목욕탕을 가신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저녁 10시가 넘더라도 다녀오시면 해결되니깐 말이다. 여하튼 어머니의 목욕탕 사랑을 전적으로 믿진 않지만 나 역시 보고 자란 게 있으니 그래서 목욕탕 찾았다.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에 세신까지 받기 위해서 온탕에서 몸을 불렸다. 이십 분 정도 있으니 몸이 나른해져, 노천탕엘 갔고, 다시 이동하여 사우나에서 마무리를 하였다. 이제 어느 정도 몸을 불렸다고 생각하고 세신사분께 나의 목욕탕 열쇠를 드렸는데, 내 앞에 무려 4명이나 있는 게 아닌가?

  제대로 때를 한번 밀어보겠다고 사오십분을 불렸는데 다시 4명을 기다려야 한다니 숨이 막혔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불리면 되겠지 하고 기다렸다. 그렇게 온탕에서 프랑스 테러 사건 뉴스를 50분 정도 더 보았다. 몸이 불대로 불어서 내가 손으로 밀어도 될 판이었다. 하지만 너무 물 속에 오래 있어서 혼자 해결할 힘은 발가락의 때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뉴스를 보다가 쓰러질 것 같아서 생수 한 병을 사와 마시며 기다렸을 정도였다.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저 멀리서 "140번"을 불렀다. '아~'하고 어찌나 반갑던지 물 속에서 돌고래가 점프를 하듯 솟아올랐다. 그리고 한걸음에 세신 침대-그런데 이걸 침대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테이블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침대라고 부르자. 그곳에- 누웠다. 세신사분이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

  "옆으로 누워요."

  "팔 올려요."

  "엎드려요."

  "앉아요."

  "고개 들고"

  "다시 누워요."

  "끝났어요."


  그렇게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기분이 정말 우울했는데, 어머니 말씀처럼 목욕을 하고 나니 정신이 꽤 맑아졌다. 나의 어머니가 목욕탕을 사랑하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나 대증요법으로는 부작용이 없으니 혹시나 우울하다면 목욕탕에 가보길 추천한다. 주의할 점은 반드시 몸을 불리기 전에 세신을 기다리는 사람의 인원수를 파악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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