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처음 우리가 잘 맞다는 것을 안 건, 무언가를 먹을 때였다. 나는 음식이라는 것은 가장 본능적인 욕구이자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먹을 것을 나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크게 가지는 사람이다. 무엇인가 같이 먹고 시간을 보내고, 그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큰 의지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도 그랬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겉치레보다는 조금 더 실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다. 결론은 우리는 그래서 먹는 데다 가장 돈을 많이 썼다.
캣캣뷰의 축축한 이불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려니 바로 문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에 상쾌하지 못하게 눈을 떴다. 밖은 이미 조금씩 어두워져 있었고, 잠이라도 깨볼까 싶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인도 맥그로드간즈가 생각났다. 저 멀리 짙고 푸른 나무들로 무성해진 산이 비현실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어제만 해도 지친 몸으로 퇴근을 했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랐는데, 오늘은 이렇게 자연 속에 있다니, 그래 이게 사는 거지 하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마음의 걱정들을 어디론가 보내고, 아니 머릿 속에서 잊어내고 나니(출근하면 금세 다시 재생되겠지만) 배가 고파왔다. 빨리 그를 깨워 길가로 나가야 했으니까.
길가는 조금씩 어둑어둑해졌다. 낮에 없던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나와 길거리를 활보했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발마사지 가게의 10대 아이들은 프랑스인의, 중국인의, 한국인의 발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마치 이발소 의자들처럼 가게 안의 스무개가 넘는 의자들은 나란히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 의자에 앉은 외국인과 그 외국인의 발을 주무르고 있는 사파의 아이들.
마사지의 질을 따지자면 어렵겠지만 단돈 5달러 정도의 돈으로 여행자들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자는 취지에서는 나름 가성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마사지 손님이 없을 때,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유행가를 따라부르고, 같이 일하는 아이들과 수다를 떨었다. 매니저급의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길가로 나와 여행자들에게 마사지를 권했다.
우리는 그 틈 사이로 멋쩍게 웃어 보이며 굶주린 배를 채울 가게를 찾아다녔다.
2년전, 처음 사파에 도착했을 때는 성당 주변으로 숯불꼬치 구이집이 나란히 줄지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술 한 잔 기울이기 참 좋은 곳이었고, 현지 사람들이 한잔하는 노란빛의 술도 얻어마실 수 있는 그런 추억이 있는 곳. 그러나 2년 후 다시 찾은 사파는 성당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런 포장마차에서의 추억을 다시 만들 수 없는, 조금 더 발전한 여느 관광지처럼 사파는 변해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번듯한 가게로 들어갔다. 잘 정리되어진 여러 꼬치들을 바라보며 못 까이(1개), 하이 까이(2개)를 말했다. 맛있어 보이는 꼬치들을 고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꼬치에는 맥주였기에 병맥주를 시켜놓고 꼬치가 나오기를 10여분 기다렸다.
잘 익혀나온 어묵 꼬치는 말랑 말랑 쫀득했고, 바나나잎에 쌓인 돼지고기는 베트남의 향신료에 푹 담겨 코를 찔렀다. 함께 찍어먹게 나온 매콤한 소스는 한국 사람의 입맛에 딱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맥주를 들이킬 수밖에 없는 밤을 보냈다.
먹는 것은, 먹고 산다는 것은 찬란하고 위대했다.
특히 그날 밤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