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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May 14. 2020

할머니는 피자가 좋다고 하셨어

"할머니 뭐 드실래요?"

"거 뭐냐.. 너네 먹는.. 피자, 그거 먹자!"


.


사춘기 시절,

할머니와 외식을 할 때면 마음 한켠에 불만이 있었다.

칼국수, 전골, 한정식...

그나마 마음에 드는 메뉴가 고기였다.


여덟 살 아래 남동생은 돌때부터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먹는 아이로 자랐다.

할머니 식단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콩자반, 나물, 마늘쫑, 버섯무침, 멸치조림, 감자채볶음..

생각만해도 군침이 도는 정성어린 밑반찬인데

그때는 그 밥에 그 반찬인 식탁이 싫었다.


내가 원하는 메뉴는 피자, 햄버거였던 시절이었으니,

어쩌다 하는 외식에서도 한식을 먹으려니 집에서 매일 먹는 한식을 왜 구지 돈주고 밖에 나가서 사먹어야하는지

그 때의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남동생이 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는 그 무서운 성장기에 들어섰을 때는

프랜차이즈 배달 시장이 성장하고 있던 시기였다.

집에 피자가 배달되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꼭 한조각씩 피자를 드셨다.


할머니가 언제 처음 피자를 드셨는지는 모른다.

한식만 드시는 줄 알았던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손에 치즈 냄새 물씬 풍기는 피자가 들려 있는건 뭔가 어색했다.

우리가 먹으니 그저 함께 자리를 채우신다 생각했다.


"나는 피자가 좋더라."

"느끼하지 않으세요?"

"느끼해서 좋은거지. 노인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나도 그런거 먹을줄 안다."

70이 되신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피자' 자체도 좋으셨을지 모르지만, 우리와 우리의 문화를 공유하고 싶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옛날 사람'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문화에서 배제되고,

'어른들'은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상처받으셨을 수 있다.


내가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나보다 어린 직장 동료가 늘어나면서,

나와 다른 문화권을 공유하는 세대와의 소통이 만만치 않을 때가 있다.

'공유'라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단어였을까.


피자를 즐기는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은 시간이 내게도 오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상에는 손주들이 돌아가며 신상 간식을 한 접시씩 놓는다.

쿠키, 샌드위치, 피자, 카스테라...

전통적인 상차림에 생뚱맞지만 힙한 간식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뿌듯해진다.


"할머니! 이게 요즘 유행하는 간식이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다음엔 또 다른거 사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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