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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May 20. 2016

필리버스터를 위한 짧은 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를 위하여

* 이 글은 한국여성민우회가 잠시 후 오후 5시부터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진행하는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에 보내기 위한 짧은 원고로 작성한 글입니다. 개인 사정 상 참석하기 어려워, 이렇게 졸고만 보내는 것에 대해서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 좀 더 가벼운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결국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앞으로도 가벼움을 지향하지만, 동시대적 사건에 대해서는 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각을 유지하며 계속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고, 최근 계속 보이는 한국의 여성 혐오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착각'하던 남자입니다. 작년 5월, Daum 카페 '여성시대'가 갑작스레 SLR클럽-오늘의유머-디시인사이드로부터 이상한 공격을 받으며 그야말로 '문제적 커뮤니티'가 될 때, 그리고 장동민-유상무-유세윤으로 이루어진 코미디언 그룹 '옹달샘'이 팟캐스트에 여성 혐오적 발언으로 사회적 파장이 일었을 때만 해도 저는 그저 '한국에 여성 혐오가 서서히 물밑으로 올라오고 있구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현상에 대하여 글을 쓰고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482, <다음 카페 '여성시대' 논란이 던진 긴급한 메시지>, <미디어스>, 2015년 5월 22일) 그 글에 수백 개나 되는 악플이 달릴 때만 해도 저는 그렇게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조금씩 물밑에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한국은 여성 혐오적인 경향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사실이 여러 사건들을 통해 파장을 일으키며 실체를 드디어 알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그걸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한국 사회의 이곳저곳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성을 멸시하거나 혐오하는 정서로 득시글 댔었죠. 단지 저를 비롯한 남자 대부분들은 그 현실을 너무나도 익숙하게 생각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여겼었던 것입니다. 아니면 이전엔 없었으나 지금 갑자기 출현한 것으로 착각하거나.


 대체 왜 한국은 이렇게도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되고만 것일까요. 이에 대한 많은 분석과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성을 낮거나 멸시하여 보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필리버스터를 낳은 강남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에서 조차도 언론은 '화장실女'라는 호칭을 붙였고, 수많은 드라마와 예능은 여성으로 하여금 수동적이거나 그저 애교를 부리는 존재가 되기만을 원합니다. 여성의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에는 너무나도 난망합니다. 그런 인식이 보편화된 상황 속에서 여성 혐오적 발언과 범죄가 계속 반복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하려는 시도가 기존의 매체들에서는 거의 주목을 하지 않거나 버려지기 일쑤니 까요.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분노와 이 글이 읽힐 필리버스터와 같은 시도가 저는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모든 시위와 파업이 그러하듯,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이 상황 자체를 바꾸고 변화를 이룩하겠다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유의미한 사건이니까요. 누군가는 이러한 시도가 '정치적'이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이 사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거리에 나온 순간부터 이 시도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사회 질서를 바꾸고 새로운 질서를 재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정치니까요.


 더욱 많은 시위와 집회, 그리고 말들이 나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글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많은 행동들이 터져나와 그간 옹이구멍으로 내 식견만이 옳은 줄 알았던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통렬한 지적을 해주길 바랄 따름입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움직임만이 지금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아니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더 이상 여성 혐오로 죽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함께 뭉쳐 달려들며 당신의 그 생각이, 그 시선이 너무나도 잘못되었음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싸울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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