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22/미디어스] 누구도 몰랐다. 이 사건이 서두라는 것을.
* 이 글은 2015년 5월 22일 [미디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482 해당 링크를 통해 원문과 댓글(…)을 [미디어스]에 직접 접속하여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추신 : 대체 누가 알았을까요. 장동민이 속한 개그 그룹 '옹달샘'의 팟캐스트가 일시적인 공분을 넘어 일상적인 문제 제기로 자리 잡을 줄, 그리고 다음 카페 '여성시대'에 대한 공격이 계속 꾸준히 경향을 이어오다 결국 강남역 10번 출구의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과소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솔직히 이 글이 게재되고 나서 참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가장 많은 댓글을 (미디어스, 오늘의 유머, 디시인사이드 무한도전 갤러리, 클리앙, 인벤, 웃긴대학, 에펨코리아, 아이러브싸커 등등 다 합해 대략 1천개는 받았던 것 같습니다.) 받았던 글이지만, 대다수는 그저 (글에서 살짝 예상은 했었지만) '어떻게 다른 커뮤니티들을 범죄적 커뮤니티인 여성시대에 비교할 수 있나' '기자(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2010년 이후로 기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가 꼴페미에 여성시대 회원인가 보다'는 식으로 일관할 뿐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끔씩 논문이나 가십성 기사에서만 주목되는 인터넷 커뮤니티/서브컬처를 놓고 벌어진 사건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몇 년 뒤 이 사건을, 그리고 제 글과 제 글을 놓고 벌어진 웃픈 해프닝을 다시 바라본다면 그때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아니, 이 글에서 지적한 부분과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한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발 이 글이 현재 진행형이 되지 않길 빌 뿐입니다.
착잡하다. 개그맨 장동민의 문제적 발언이 수면 위로 올라온 뒤에 일이 이렇게 진행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단순히 장동민이 내뱉은 발언에 대해 정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거나, 일부 프로그램 출연을 중단하지 않고 여전히 계속 TV에 나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뒤에 벌어진 사고와 흐름들은 그야말로 한국 사회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한창 장동민의 발언으로 한국 사회가 논란에 휩싸여 있을 무렵 또 하나의 작품이 문제 선상에 올랐다. ‘레진코믹스’에 연재 중인 작가 ‘레바’의 웹툰 <레바툰>이었다. 5월 1일에 업로드 된 제 13화 <Trans> 상편에서 <레바툰>은 작중의 여성 캐릭터 표현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해당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다른 남자 캐릭터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제멋대로 행동하다 그만 위기에 닥치고, 그 뒤 제 3자의 캐릭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할 것임을 암시하는 결말로 마무리 된다. 작품이 문제가 되자 작가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사과를 한 뒤 이후 하편을 올리는 동시에 상편의 결말을 순화하면서 논란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편의 내용 또한 적절하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작가가 원래 명성을 얻었던 ‘병맛’ 코드로 유쾌하게 자신에 가해진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도 있었으나, 하편에서는 오히려 그런 코드를 통해 논란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보였다.
아무튼 장동민 발언 논란으로 일어난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 문제가 논란이 이어질 무렵, 여론은 갑자기 뒤틀려 새로운 타겟을 향하게 된다. 2009년에 개설된 다음 카페 ‘여성시대’였다. ‘여성시대’는 이름대로 여성 누리꾼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고, 그러한 공간 중에서는 나름대로 높은 인지도와 많은 회원을 거느린 곳이다. 몇몇 누리꾼들이 여성시대에서 장동민과 <레바툰>을 비하할 목적으로 이 두 대상에게 여성 혐오 문제가 있다고 여론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누군가는 이용자들이 일베에 글을 올려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여성시대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잠입해 사이트 주도권을 획득하고 여론조작을 하는 사람들의 근원지로 지목했다.
이렇게 여성시대가 모든 사건을 저지른 주모자로 조금씩 이야기 될 무렵, 이 여론에 불을 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사진 커뮤니티 ‘SLR클럽’에서 회원들에게 상의도 없이 비밀 게시판을 운영했는데, 그 비밀 게시판을 제공받은 커뮤니티가 여성시대였단 것이다. ‘탑시크릿’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게시판에는 주로 성인 이용자를 위한 콘텐츠들이 공유되었고, SLR클럽 측이 비밀 게시판 운영에 있어 성인 자료 위주로 운영하지 말 것을 당부했음에도 이 당부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이전에 쌓였던 다른 주장들과 연계되어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낳았다. 사건 관련 게시물이 빠르게 공유되었고, 여성시대는 공공의 적으로 등극했다.
이후 대부분의 커뮤니티와 SNS에서 여성시대를 만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있다. 몇몇 누리꾼은 여성시대에 올라온 글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여성시대에 위법적 요소가 산재하다며 검찰에 고소까지 했다. 여성시대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 중에서 조금이라도 민감하거나 논란적이며 바로 캡처되어 조롱거리가 되는 지경이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여성시대는 하루 빨리 인터넷 공간에서 퇴출되어야 할 존재처럼 되어가고 있다.
여성시대에 대한 비난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과연, 여성시대가 이 모든 사건을 저지른 원흉인가. 그리고 사라져야 할 존재인가. 물론 여성시대나 이 카페의 회원이 완전무결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분명 SLR클럽에서 비밀적으로 게시판을 운영한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한 선택이며, 일부 회원들이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시대에 가해지는 공격들이 모두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여성시대에 대한 논란 대부분은 아직 명확하게 입증되지도 않았다. 해당 주장을 펼치는 자들은 여성시대에서 유독 장동민과 <레바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다른 사이트에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음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그것이 곧 여성시대의 여론 조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사안들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부터 이미 인터넷 전역에서 이야기되던 것들이다. 다른 논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비난의 기초가 부실하다보니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사상누각에 놓여 있다. 가장 대표적인 주장이 여성시대가 범법 행위를 양산하고 있으니 당장 폐쇄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여성시대 내부에서 낙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 연예인에 대해 루머나 팬픽, 각종 성적 발언을 내뱉는 것은 사이버 명예훼손과 음란물 배포죄, 각종 만화나 음악, 영화가 불법 공유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나온 판례에서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올린 글만으로 커뮤니티 자체의 폐쇄를 판결로 내린 사건이 거의 없다는 것을 떠나, 애초에 이들이 지적한 사례는 여성시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커뮤니티와 SNS에 거의 해당하는 문제들이다. 이들의 주장은 어떤 의미에선 전 세계 대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이 당장 폐쇄되어야함을 뜻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로지 이러한 문제가 여성시대의 것임을 내세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시대를 ‘단죄’함으로써 얻고 싶어하는 어떤 결과이다. 해당 주장들을 진지하게 믿고 있는 이들은 정말로 이런 행위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시대가 법원의 판결을 받고 사라진들, 정의가 구현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여성시대가 사라지면 낙태에 대한 정보 공유가 사라져 아무런 문제가 없어질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여성시대가 사라져도 낙태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이야기될 수밖에 없다. 다른 지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터넷 상의 책임 몰기, 여성 혐오와 만나 폭발하다
여성시대에 대한 논란은 작년에 미국에서 촉발된 하나의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바로 ‘#게이머게이트’(#Gamergate)라는 이름의 인터넷 여론 운동이다. 시작은 여성 인디 게임개발자 조이 퀸(Zoe Quinn)에 대한 논란이었다. 그녀는 2013년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라는 이름의 인디 게임을 발표했다. 장르가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이나 메시지를 지닌 게임. 한국에서는 보통 ‘기능성 게임’이라 번역하나 이는 시리어스 게임의 영역을 제약하는 번역이므로 사용하지 않았음.)이기에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게임에 혹평을 날렸지만 게임 웹진들에서는 이 게임에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며 꽤 좋은 평점을 매겼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조이 퀸은 게임을 공개한 이후 자신이 누리꾼들의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음을 주장했고, 몇몇 인터넷 상의 평가에 민감하게 대응했다. 이렇게 조이 퀸과 게이머들 사이의 갈등이 쌓일 즈음 퀸의 전 남자친구가 대형 폭로를 했다. 퀸이 게임 개발자나 웹진에 종사하는 다섯 명의 남자들과 불륜을 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자기가 만든 작품에 좋은 평을 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성적 로비’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명확한 근거는 없었지만 이는 곧 확정적인 사실로 여겨졌고, 그녀는 게임계를 어지럽히는 것은 물론 게임 저널리즘을 망치는 원흉이란 비난을 받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 찬성하는 이들은 SNS에 ‘#게이머게이트’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자신들의 주장을 설파했다.
이후 벌어진 일들은 심각했다. 조이 퀸에 대한 각종 악성 비난이 들끓었고, 조이 퀸이 여기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비난은 더욱 증폭되었다. 급기야 조이 퀸의 입장에 동조했던 미디어 비평가 아니타 사키시안(Anita Sarkeesian)이 살해 협박을 받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미국의 미디어들은 이를 대서특필했고 ‘#게이머게이트’는 단순히 인터넷 상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서브컬쳐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성 인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제적인 사건이 되었다. 당시 ‘#게이머게이트’를 주도했던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4chan(한국의 디시인사이드와 비슷한 성격의 커뮤니티)은 자신들이 여성 인권을 존중함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 개발자 후원 프로젝트에 모금을 하는 모습까지 보였지만, 그러한 행보가 조이 퀸이나 아니타 사키시안에 대한 혐오와 비난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했다.
‘#게이머게이트’ 사건은 여성시대에 대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 여성시대가 그랬듯 조이 퀸 역시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그녀가 만든 게임은 분명 호불호가 갈렸으며, 그녀가 했던 대응 역시 다분히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많았다. 하지만 ‘#게이머게이트’에 참여한 이들이 내건 ‘게임 저널리즘의 개선’이 조이 퀸을 매장시킨다고 해결될 사안 역시 아니었다. 한국이 이미 그렇듯 미국 역시 게임 웹진들 역시 대부분 게임 회사의 광고에 수입을 의존하고, 결국 이에 따라 비평과 리뷰가 좌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난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절대 깊이 보려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비난을 조이 퀸에 속은 거대 미디어의 농간이라는 음모론으로 처리할 따름이었다.
물론 이런 식의 특정 대상을 비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던 것이긴 하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도 문제의 복잡한 일면을 보는 대신 걸림돌로 튀어 나온 대상 몇몇을 지적해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양상은 계속되었던 일이다. 그러나 ‘#게이머게이트’ 사건이 특정 여성에 모든 책임을 몰아간 것처럼, 여성시대 사건 역시 유독 대다수의 누리꾼들이 그 커뮤니티의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전부터 존재하던 책임 몰기에 여성에 대한 혐오가 겹쳐져 있음을 의미한다. 여성시대 사건과 ‘#게이머게이트’ 사건의 차이가 있다면, 최소한 후자의 경우 미디어를 통한 비평과 자성의 시도가 있었다는 점 정도이다.
더 많은 페미니즘이 필요한 사회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여성시대에 대한 비난은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의 그림처럼 도식까지 만들어가면서까지 이들을 없애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문제가 과연 여성시대를 없앰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에 대한 근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정작 더 직접적으로 혐오적인 태도를 표출했던 장동민과 <레바툰>에 대해서는 많이 관대하게 넘어갔던 이들이, 단순히 하나로 묶기에 애매한 사건들을 너무나 쉽게 묶으면서 이들의 절멸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대단히 문제적인 상황이다.
되짚어보면, 게임 만화 등 서브컬쳐와 관련된 논란이나 발전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오면 득달같이 ‘이 모든 게 여성가족부(또는 이 자리에 YWCA 등 여성과 관련된 단체나 개인이 모두 들어간다.) 책임이다’라는 댓글들이 범람했을 때부터 이 사건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 정책을 제외하면 딱히 서브컬쳐에 손을 댄 지점도 없음에도 어쨌든 이들에게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페미니즘 운동은 자신들이 즐기는 서브컬쳐를 망치려는 상징적 원흉으로 취급된지 오래다.
이외에도 우리는 이전부터 너무나도 쉽게 여성과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각종 비난을 접해왔고, ‘된장녀’, ‘김치녀’. ‘꼴페미’와 같은 각종 비하어를 양산해왔다. 비슷한 문제를 벌인 남성에게 이러한 부류의 수식어가 붙는 일은 거의 없었고, 언론 역시 어뷰징을 위해 이런 비하들을 기사로 확대재생산 해왔다.
이러한 상황이 종합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충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도 너무 부족한 현실이다. 페미니즘의 토양이 부족한 자리에 ‘정의 구현’과 ‘풍자’라는 이름의 여성 혐오가 여기저기에서 터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혐오는 반복되고, 장동민 발언 논란으로 솟아오른 자성의 시도는 180도 회전해 한 커뮤니티를 없애기 위한 움직임이 되어 흐르고 있다. 언론은 이러한 시도에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국민일보>를 위시한 몇몇 매체들이 조회수를 끌어모으기 위한 혐오를 기사로 양산하고 있을 따름이다. <레바툰>은 여전히 자신이 받았던 비판을 조롱섞인 소재로 작품에 활용하고, 최근엔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마저 이러한 혐오를 양산하는 작품을 그리고 말았다. ‘#게이머게이트’ 사건에는 그래도 언론의 비판적인 접근 시도가 있었다. 지금 어떤 한국언론이 이 사건을 비판하고 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여성시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 증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