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계급의 문제, 그리고 여성으로써의 문제
영화적으로만 따져보면 특출나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한 20세기 초반 영국 노동자 계급의 여성이 어떤 과정을 구쳐 여성 참정권 운동('서프러제트', suffragette)의 투사가 되는지를 그리는 작품이에요.
당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던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쓴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에 기반을 두어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당시의 운동 양상을 묘사하고 싶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작품의 전개가 꼭 마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보는 느낌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운동을 알게 되고, 가족와 주변인의 냉대와 경찰의 압박을 겪다, 결국 자신을 짓누르는 문제에 눈을 뜨고 냉철한 리더의 감화, 그리고 동료의 희생으로 열렬한 투사가 되는 전개가 많이 전형적으로 흐르긴 합니다. 그런 점을 누군가는 프로파간다와 다를 바 없다 여길지 모르고, 실제로도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구석이 많다 봅니다.
하지만 (프로파간다가 정말 안 좋은 것인지는 둘째치고) [서프러제트]는 전형적인 부분이 많으면서도 곱씹을 부분 역시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20세기 초반 영국의 시대적 상황을 묘사하며 계급적인 지점과 여성 인권의 처지를 모두 지적하는 묘사가 꽤 두텁습니다.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 주인공 모드 와츠는 세탁 공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일을 한 노동자 계급이자, 여성입니다. 와츠가 일하는 공장은 자본주의적인 착취와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동시에, 공장장이 대놓고 여공들이게 성폭력을 자행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공장 밖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신문은 내각 고위층과 유착을 맺고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기사를 냅니다. 고위층의 부인은 자기가 모은 돈이 있어도 남편의 허락을 맡아야 하고, 하층 계급인 주인공 와츠의 남편(벤 위쇼)은 와츠를 사랑하는 척 하지만 와츠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자 주인공을 집에서 강제로 내쫓습니다. 물론 그가 노동자 계급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매 씬마다 당대의 상황을 두드러지든, 두드러지지 않든 세심하게 묘사하며 주인공의 처지를 대변하는 동시에 왜 그녀가 투사가 되었는지를 암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현재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당시의 현실에 초대해 그 시기의 문제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현재의 상황과 대비하게 이끕니다. 운동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인 만큼 운동의 노선에 대한 논쟁, 그리고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리고자 하는 '이슈 파이팅'의 모습도 충실히 그리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렇게 [서프러제트]는 비록 영화적으로는 독보적이거나 특출나지 않고 심지어는 인물의 설정이나 구도가 뻔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을 감싸는 시대적 상황과 모순을 충실히 묘사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움을 지니는 작품입니다. 또한 관객들을 페미니즘 운동에 이끌게 만든다는 점에서 실천적인 성격을 지닌 영화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영화에 '운동'이나 '선동'이라는 요소가 가득 담겨 있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간 한국에서 사회 고발을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들 대다수가 ([화려한 휴가] [노리개] 등등…) 영화의 기본적인 전개조차도 얼렁뚱땅 지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최소한 [서프러제트]는 영화라는 자신의 기본적인 목적 자체에는 충실하게 극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칭찬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진정으로 사람들을 자극하며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라면, 그리고 좀 더 리얼리즘적이며 비판적인 시대극을 만들 고 싶은 사람이라면 참고할 여지가 많기도 하고요. 그런 미덕이 있는 작품이 바로 [서프러제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