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그러나 뻔하지 않은
기묘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흥행이 안 되는게 이해가는 영화입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비밀은 없다]는 '한국식 스릴러'와는 전혀 딴판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할 액션씬도, 신파도 없이 영화의 워킹 타이틀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보였던 가정에게 닥친 큰 사건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그려냅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경미 감독의 데뷔작 [미쓰 홍당무]의 터치를 가지고 스릴러를 만들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다양한 작품에서 소재로 즐겨 사용하는 '노처녀'가 겪는 스트레스와 심정을 여성의 시선에서 충실하게 그려냈었죠. [비밀은 없다] 마찬가지입니다.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극중 사건은 단순히 주인공의 가족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다-의 수준을 넘어 조금씩 헤쳐 나갈 수록 지역 감정,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문제, 정치적인 지점 등 다양한 요소들이 촘촘히 개입되어 있는 것을 보이고 있어요. 영화는 작중의 실종 사건을 이 각각의 지점에서 바라보며 다층적으로 풀어냅니다.
그리고 사건을 푸는 방법 역시 대단히 감각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한 톤으로 진행되던 작품은 경찰 첫 수사 씬에서 기묘한 위트가 들어가더니 결국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할 정도로 독특한 리듬으로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래서 몇몇 관객들은 한국에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나 [고백] [갈증]으로 유명한 나카시마 테츠야를 연상하는 듯 싶고, 실제로도 좀 비슷한 감이 없진 않습니다. 내용이 전개되는 양상이나 관객을 밀어붙이는 방법이 정석적인 방법이 아니라 키치한 편집과 색감, 음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유사해보이니까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비밀은 없다]는 결국 한국 사회에 기초해서 충격적인 전개를 터트린다는 점이겠죠. 이야기의 끊고 맺음도 좀 더 완결성이 있고요.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엔 없는 작품입니다. 익숙한 (액션) 스릴러를 기대하고 갔던 이들에겐 액션도 없고, '신경질적인' 영화의 리듬이 무척이나 불편할 것이고 주인공의 남편이 정치인이라는 점에 뭔가 정치적으로 자극할 요소가 있나 싶었던 사람들에겐 다른 의미로 자극적인 지점만이 가득할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워킹 타이틀이었던 [행복이 가득한 집]이 좀 더 영화의 이해나 접근에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광기가 넘치고, 매니악한 방향으로 흐르는 영화의 모습은 대중적인 호응을 이끌기엔 쉽지 않아 보입니다. CJ가 이런 스토리보드나 각본에 투자를 한 것이 신기할 정도에요. 영화 사이사이 개입된 소수자 문화의 요소에 불편함을 느낀 분들도 당연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나마 [끝까지 간다]를 제외하면 다들 비슷비슷한 한국식 스릴러가 가득한 가운데, 쉬운 흥행을 마다하고 독특한 흐름을 걷기로 한 이경미와 각본으로 참여한 박찬욱 사단의 선택은 분명 중요하죠.
그리고 그 결과물 역시 최근 제작한 한국 스릴러 영화 중에선 스토리는 물론 미쟝센으로 따져봐도 매우 파워풀합니다. 이렇게 여성이,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 흔치도 않고요. 그 모습들이 어떤 이들에겐 불편할 지도 모를 겁니다. (아니, 당연하게 불편할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잊혀지지 않는 스릴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