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로든 게임 같은 영화, 나아가 영화 자체를 생각하게 하는.
게임을 잘 몰라도 닌텐도라는 이름을 완벽히 모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회사 자체는 100년이 넘었지만,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한 일본 닌텐도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마리오 시리즈의 효시가 된 <동키콩>(1981), 그리고 이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85)가 나온 덕분이었죠. 아타리가 만든 초기의 게임 업계가 빠르게 무너지는 상황에서, 닌텐도는 마리오를 내세운 게임 콘솔 패미콤/NES로 다시 게임 업계를 살리는 것에 성공했고 이후 온갖 부침과 문제가 있었지만 후발주자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와 더불어 게임계를 대표하는 3대 회사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인기와 별개로, 영상화는 그다지 잘 되지 않았었죠. 물론 닌텐도만 그런 건 아닙니다. 게임이 본격적으로 영상의 문을 두드린건 2000년대 이후부터니까요. 일찌감치 음악/영화 산업에 진출한 소니도, 마이크로소프트도 2010년대 중후반부터서야 좀 더 관심을 드러냈고요. 닌텐도에게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예외긴 했지만, 애초에 포켓몬 시리즈는 닌텐도 단독 소유 IP도 아니고, 게임 이상으로 애니메이션이 히트를 친 지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닌텐도가 마리오 시리즈를 영화로 만든게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TV용으로 애니메이션도 몇 번 만들었고, 근래 들어선 하나의 놀림거리가 된 롤랑 조페 제작, 밥 호스킨스-존 레귀자모-데니스 호퍼 주연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93)도 있었죠.
마리오 시리즈를 다룬 이전의 작품과 이번 신작 애니메이션의 큰 차이라면, 닌텐도가 단순히 원작 IP의 소유권자로 남지 않고 기획이나 제작에 본격적으로 관여를 했다는 점일 겁니다. 애시당초 판권 표기도 통상적인 할리우드 작품과 달리 무려 ‘닌텐도 & 유니버설 픽쳐스‘로 이번 영상화의 주도권이나 권한이 닌텐도에게 강함을 드러냈고, 스탭롤을 보니 아예 닌텐도 차원에서 팀을 짜서 크리에이티브 전반에 관여한 흔적이 보입니다. 닌텐도는 실제 작품을 만들 파트너로 <슈퍼배드> 시리즈로 대스타가 된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를, 연출자로는 히어로를 가지고 신나게 가지고 노는 재미를 만든 <틴 타이탄 GO!>의 두 콤비를 불렀습니다.
그러면 결과는 어떨까요. 이미 전세계적으로 흥행 질주를 멈추지 않는 모습처럼, 작품은 정말 신납니다. 어떤 의미로든 마치 테마파크에 온 느낌이고, 게임 같은 영상물입니다. 좀처럼 눈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화면이 요동치고, 일루미네이션 특유의 기술력이 닌텐도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90여분이 금방 지나갑니다. 손에 컨트롤러가 들려있지 않아도 내가 TV나 게임기에서 조종하던 캐릭터가 생동감을 지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고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본다면 게이머들이 함께 모여 한 편의 게임을 클리어한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90분 내내 빼곡히 채운 닌텐도 관련 이스터에그를 신기해 하면서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겠죠.
하지만 이러한 테마파크 같고, 게임 같은 느낌은 그저 좋게만 끝나는 건 아닙니다. 어딘가 흥겹고 신나는데, 왜 그런 장면이 나와야 하는지 사실 잘 알 수 없긴 하니까요. 마치 테마파크에서 판타지 구역 옆에 갑자기 SF 테마존이 붙어 있고, 게임- 특히 이 영화 원작 같은 닌텐도 고전 게임들에서 그런 것처럼 별로 설명이나 맥락도 없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장면과 캐릭터와 기믹이 붙어나오는 느낌입니다.
물론 게임을 오래 해본 팬이라면 그건 ’왜?‘가 아니라 ’당연한 출연‘이 되겠죠. 원작 게임에선 정말 그런 장면과 캐릭터가 나왔고, 그걸 팬들의 바람대로 재현하니까요. 하지만 원작을 잘 모른다면 조금은 몰입이 어려울 가능성이 큽니다. 분명 흥미진진하지만, 조금 의문이 가지려하면 바로 온갖 스펙타클을 선사하니까요.
닌텐도의 업력이 꽤나 길고, 오랜 팬들이 엄청난 수로 널려 있기에 ‘팬이 아니면 조금 낯설 수 있는 점’은 막대한 흥행으로 꺼내기 어려웠지만- 역설적으로 게임을 즐긴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한국에서는 분명 하나의 장벽일 것입니다. 이를 조금이라도 보완하기 위해 주인공의 성장 서사, 근래 추세에 맞춰 피치 공주를 좀 더 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리긴 했지만 이들 서사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아 딱 ‘트렌드’라는 말에 어울리는 정도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의미로 이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은 표현물이나 산업으로서의 영화가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습니다. 마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비롯한 일본 인기 TV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팬이 아니면 생경할 지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팬층의 존재는 작품 특유의 시각적 스펙터클과 더해지며 놀라운 수익 기록을 내고 있죠. (여기에 [스마트폰도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도] 의도적으로 노래에서도 드러나는 1980년대의 향수, 약하지만 존재하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 피치 공주의 재해석도 흥행의 축이긴 할 겁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대중영화가 대중을 크게 노리지 않고 이미 상정하는 팬을 향해도 압도적인 박스오피스 성적을 내는 장이 이미 형성되어 있음을 보이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작품만이 원인은 아니죠. 마블/DC의 히어로 영화들이, 시기와 국가를 가리지 않고 명절 때마다 배우로 밀어붙이는 어설픈 영화들이 다 그랬죠.
하지만 OTT의 빠른 성장이 영화관이라는 존재를 조금씩 미묘하게 만드는 가운데, ‘이미 있는 팬덤을 위한 영화’의 점차 거세지는 성공은 영화관이 이제는 어떤 장소인지를 다시 물어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보이는 초상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치 이미 팬덤 간 기록 경쟁의 장이 된 전세계의 실물 음반 시장/차트와, 음원에서도 ’총공‘이 판을 치는 한국 음악 문화처럼 말이죠.
물론 영화는 ’비디오‘ 같은 복제 수단이 등장한 이후부터 이미 영화관만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지금의 변화는 영화관에 필요 이상의 아우라를 주는 것이 허물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포스트-시네마’는 오래 전부터 현재 진행형이었죠. 이미 영화-관의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좀 더 다른 영화 생태계나 정책, 향유-접든 문화의 장을 고민하는게 더 나은 길이겠죠. 어떤 의미로 이번 마리오 시리즈의 영화가 지닌 면모와 흥행은, 역설적으로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접근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