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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Jul 13. 2024

강유가람 <럭키, 아파트> 단평.

스릴러와 다큐적 감각이 섞인, 정상성에 갇힌 아파트를 비추는 장편 데뷔작

2011년, 영화에 발을 막 들인 강유가람 감독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았던 장편 다큐멘터리 <모래>는 여러모로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영화를 배운 것도 아니었고, 원래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는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 사회 부동산의 욕망을 잘 짚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작품은 자신 주변의 포커스를 놓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자신과 비슷한 이들이 있는 한국 사회가 부동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로 차근차근 접근했습니다. 기억하는 한 (독립)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 거의 처음으로 한국의 부동산 광풍을 다룬 작품은 그렇게 사적인 시선과 인식을 거시적인 흐름으로 이어내는 시도에 성공했습니다.


이후로도 강유가람은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왔습니다. 처음으로 개봉했던 작품이자, 이태원에 모여든 과거과 현재의 사람들을 번갈아 비추며 장소의 역사를 짚는 다큐멘터리 <이태원>, 자신과 동년배로 1990년대 대학에서 ‘영 페미니스트’로 활동했었던 동지들을 만나며 페미니즘 운동의 한 피리어드를 짚었던 <우리는 매일매일>, 자신처럼 2010년대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동료 여성 감독(박소현·이솜이·소람)과 함께 만든 페미니즘 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 등등의 작품을 만들었죠. 한동안은 장소에 깃든 맥락과 의식을 짚는 작품을 만들었던 강유가람은, 2016년 전국적으로 달아오는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페미니즘적 움직임을 짚은 2017년 단편 다큐 <시국페미>를 기점으로 다양한 시점과 관점에서으로 페미니즘을 다뤄내는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다큐멘터리에 집중한 강유가람이 처음으로 장편 독립 극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2020년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가진 <럭키, 아파트>입니다. 강유가람 감독에게 극영화는 완전히 첫 시도는 아닙니다. 아직 두 번째 장편 다큐 <이태원>을 공개하기 바로 직전인 2015년 <진주머리방>으로 단편 극영화를 만든 적이 있었죠. 하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다큐에만 전념했기에, <진주머리방>은 잠시 손을 댄 독특한 시도라는 생각만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만들어낸 극영화는 대체 어떤 질감일까요. 시놉시스나 초반부 시퀀스에 드러나는 인상은 이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다뤄낸 소재들을 하나의 극에 녹여낸 느낌입니다. 특히 ‘아파트’가 주된 장소이자 소재라는 점에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받게 됩니다. 첫 장편 다큐였던 <모래>는 집안이 기울어진 상황애서 어떻게든 아파트의 재개발만을 학수고대하는 가족 구성원을 가족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선 감독이 복합적인 감정으로 바라보았다면, 첫 장편 극영화인 <럭키, 아파트>의 두 주인공 또한 아파트를 놓고 서로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올해로 사귄지 9년째를 맞이하는 레즈비언 커플 희서(박가영)과 선우(손수현)은 작품이 시작하자마자 아파트로 인한 갈등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희서가 조금 무리하게 대출을 해서 번듯한 복도식 아파트를 구매했지만, 이 아파트에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변동하면서 희서가 빌린 아파트 대출금도 영향을 받게 된 것도 크지만, 희서의 “아파트를 잘못 샀다”는 푸념처럼 이 아파트는 도저히 둘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닌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우가 이 문제를 매우 민감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 배관 등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취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정작 희서는 크게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아파트 동대표나 관리사무실 사람들도 그다지 냄새를 못 맡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선우는 왜 사람들이 이 악취를 못 느끼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인중개사기도 한 동대표는 시종일관 집값만 신경쓰고 있고요. 악취의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도, 그 비밀과 관련된 근원을 풀기 위한 선우의 행동에 동대표와 대다수의 아파트 거주자들은 집값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당연히 아파트를 놓고 벌어지는 욕망의 파도가 주인공 커플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대출까지 하면서 이 집을 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희서는 악취 문제를 해결하러 다니는 선우에게 언짢음을 느낍니다. 선우의 행동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희서를 압박하는 동대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이기도 하지만, 선우의 행동이 새롭게 입주한 이 아파트에서 괜한 문제를 일으키는건 아닌지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는 밖으로는 꽁꽁 숨기고 있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건 아닐지에 대한 염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희서가 작중에서 어렴풋이 드러내는 대출금에 대한 걱정처럼 아파트 집값이 떨어질 것에 대한 염려가 완전히 없지는 않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반대로 선우는 희서의 반응이 마뜩치가 않습니다. 한 집에 같이 살면서도 악취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희서와 달리 선우는 민감하게 악취를 신경썼던 것처럼, 선우는 아파트 집값이라는 터부에 신경쓰지 않으면서 좌충우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관리사무소와 동대표를 움직여 악취의 정체를 밝혀낸 것도 선우이며, 그 뒤에도 여전히 악취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자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 이곳저곳에 뿌릴 정도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 역시도 선우입니다. 동대표를 비롯한 아파트 입주민은 이러한 선우의 태도를 매우 눈엣가시처럼 여기기 시작하고, 그러한 압박은 처음엔 희서로, 그리고 선우에게로 점차 퍼져나가며 이 둘의 삶도, 그리고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희서와 선우가 처한 상황이나 차이까지도 커플을 점차 뒤흔듭니다. 대형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희서는 매일매일이 생존 경쟁의 연속입니다. 분명 다른 동료들보다 좋은 실적을 거뒀는데도 돌아보면 상사도 동료도 모두 남성뿐인 부서에, 남성 중심의 문화가 가득한 이 산업에서 희서는 제대로 자신의 노력을 평가받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희서의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에요. 동생에게만 겨우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낼 뿐, 가족들에게는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합니다. 선우의 상황도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입니다. 선우도 오빠를 제외하면 가족에게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못하는 건 같지만, 대기업에서 일하는 희서와 달리 선우는 변변한 직장도 없습니다. 스포츠학원 강사로 일했던 것 같은 선우는 발을 다친 것 때문인지 직장에서 잘렸습니다. 생활비를 분담하기 위해 아픈 발을 이끌고 음식배달에도 나서지만 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집안의 경제적 상황도 최악인 것 같고요. 선우는 자신이 희서에게 경제적으로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이 내심 미안하지만, 동시에 희서가 대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선우를 낮게 취급하는 것 같은 복잡한 심정을 느낍니다.



<럭키, 아파트>는 두 주인공, 특히 선우의 복잡한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선우를 괴롭히는 악취의 원인을 밝혀내고, 다시 그 원인에 충격을 받은 선우의 심경이 드러나는 부분은 마치 스릴러가 연상되는 감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묵직한 사운드가 고조되고, 가뜩이나 조도가 밝은 장면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화면의 톤도 더욱 어두어지고, 급기야는 잠시 기과한 느낌을 주는 장면까지도 스쳐 지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모든 순간이 스릴러인 것은 아닙니다. 희서와 선우의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가운데 이 둘의 평온한 삶을 방해하는 요소는 지속적으로 등장하지만, 다시 선우가 악취 뒤에 숨겨진 존재를 찾아내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니기 시작하는 중반 이후로는 강유가람의 전작 <이태원>이나 <우리는 매일매일> 같이, 격동을 거쳐왔지만 경계로 비껴 서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다큐멘터리의 감각이 강해집니다.


비록 장르적인 감각과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 썩 잘 뭉쳐지는 느낌은 아닙니다. 분명 같은 작품이 계속 이어지는데, 어딘가 연출의 연속성이 조금 덜컹이는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반부에서 선우와 희서가 아파트에서 불편함을 겪는 순간순간들은 마치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이 연상될 정도로 직접적으로 불편한 장면을 최소한으로 절제하면서 상황과 맥락이 낳는 불편함을 강조하는 날선 스릴러의 감각이 제법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면, 중반부를 넘어 후반부에 와서는 이러한 시선이 그렇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선우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는 이유로 두 주인공이 아파트에서 여러 갈래로 위협을 받는 모습은 긴장감이 느껴지면서도, 그보다는 혐오가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는 작품 전반부가 악취의 원인을 밝혀내고, 다시 그렇게 밝혀진 끔찍한 원인에서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선우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반부에서는 연민과 불안을 넘어 악취에 숨은 안타까움을 풀기 위해서 나서는 선우와 삶의 고단함에 점차 지쳐가는 희서에 초점을 맞춘 덕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초반부의 스릴러적인 표현도 스릴러의 장르적 문법을 따른다기 보다는, 매사가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반부가 상당히 인상적인 감각으로 현실의 문제를 장르적인 어법으로 드러내는 듯 한 느낌을 주고 있기에, 그러한 감각이 후반부에서 많이 옅어지는 것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감독이 처음 만든 장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를 설계히고, 극중의 공간과 사건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먼서도 초반부에 드러나는 스릴러적인 감각이나 후반부 감정의 고조를 향해 치달을 때의 모습은 감독이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로 비춰왔던, 이윤에 눈이 멀고 정상성/비정상성의 구분 짓기를 쉽게 멈추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이 놓인 위치나 인식차에 따라 ‘냄새를 인식하는가’의 여부를 연결시키는 접근법은, 감히 말해서 봉준호의 <기생충>에서 잠시 언급되는 ‘냄새’에 대한 비유보다 더 유려하다고 적확하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퀴어 영화로서, 때로는 서로에게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다시 때로는 서로 다른 파트너의 성정과 상황에 감정이 요동치는 로맨스의 곡선을 그려내는 감각도 놓치지 않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게 <럭키, 아파트>는 스릴러적인 감각과 다큐멘터리적 드라마의 감각이 완벽하게 유려하지는 않아도, 묘하게 겹쳐지면서 또 다른 서늘함을 불어 넣는 독특한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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