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듯 보수적이고, 도발적인 듯 주춤한다
원래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Perfetti Sconosciuti)가 원작입니다. 워낙 동명의 영화가 많아서 헷갈리기 쉬운데, 한국에서는 작년 이탈리아영화제를 통해서만 상영된 파올로 제노베제의 코미디 드라마 영화에요. 워낙 이탈리아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 스페인에서는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리메이크에서 시작해 스웨덴, 터키, 카타르, 미국에도 판권이 팔렸어요. (심지어는 인도에서도 무단 리메이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리메이크가 제작되어 이제 공개되었습니다.
영화를 말하기 전에, 한국은 제작과정이 좀 독특합니다. 메인 투자-배급은 롯데인데, 공동 투자로는 CJ ENM이 이름을 올렸어요. 게다가 공동 제작에는 JTBC 산하의 드라마 제작사 ‘드라마하우스’가 참여했습니다. (리더필름 사운드도 JTBC 로고송의 딱 그 사운드입니다.) 정작 JTBC와 같은 계열에 메가박스 플러스엠이 있는 걸 생각하면 영화 투자-제작-배급-상영의 수직 계열화 체제를 마련한 3사가 공동으로 만들고 배급했다 봐도 과언이 아닌 작품인 것이죠. 연출자도 드라마 <다모> <패션 70’s> <베토벤 바이러스>로 일세를 풍미했지만, 그 이후로는 <더 킹 투하츠>나 영화 <역린>으로 쓴맛을 본 이재규가 맡았습니다. 각본도 이재규처럼 방송(SNL 코리아, 빅 포레스트)과 영화(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킹콩을 들다, 미나문방구, 우리는 형제입니다, 바람바람바람)를 모두 경험한 배세영 작가가 맡았습니다. 방송 제작 인력과 영화 제작 인력이 여러모로 섞인 프로젝트였던 셈이죠.
영화의 플롯 자체는 단순합니다. 같은 마을에서 자라난 네 남자의 3.5 커플 (왜 3.5냐면, 한 커플은 부득의한 사정으로 혼자만 왔거든요.) 이 집들이 모임으로 한 자리에 모입니다. 실없는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누군가 ‘휴대폰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저녁 시간 동안 오는 모든 통화와 문자를 공유하는’ 게임을 제안한 겁니다. 모두가 하늘 아래 두려울 게 없다면 매우 시시하게 끝났겠지만 그게 쉽나요. 설마하니 지금 올 줄 몰랐던 돌발스러운 연락들에서 7명의 비밀이 모조리 드러나고, 그 해프닝 사이에서 커플 관계는 물론 네 남자의 친구 관계도 위기를 맞습니다. 그 비밀은 때로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투자 실수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무척이나 심각한 성적인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화목할 것처럼, 언제까지고 함께 할 것처럼 보였던 모든 관계가 위기에 직면합니다.
<완벽한 타인>은 이 복잡하게 꼬인 관계를 제한된 공간 안에 전개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마치 <대학살의 신>이나 <더 파티> 처럼 연극 같은 영화를 만든거죠. 예전에도 코미디 영화에 주로 참여하고 SNL 코리아 작가였던 사람이 각본을 맡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개그의 합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7명의 주인공이 쉴새 없이 대사를 핑퐁처럼 주고 받는 게 재미있고요. 완급을 조절하며 군중극과 2인극 사이를 오가는 솜씨도 나쁘지 않고요. 전통적인 가족-부부-연인 관계에 ‘도발’하는 것 같은 순간까지는 그럭저럭 볼 만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딱 ‘그 선’에 머무르고 말아요. 도발적인 것 같긴 한데, 사실 잘 따져보면 관성이 강합니다. 계속 파국 직전의 부부와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통적인 상의 위기를 말하는 듯 싶다가도, 이를 매 시퀀스마다 정리하는 방식은 전형적이고 보수적인 부부-연애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겁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말이 이렇게 어울리는 작품도 없어요. 애시당초 결말부의 반전까지 함께 생각하면, 결국 이 작품이 파격과 파국을 보여줬던 것은 ‘보수적인 젠더와 성역할 관념’을 은근슬쩍 정당화시키는 용도로 써먹기 위해 사용하는 겁니다.
물론 ‘모두가 비밀은 있다’는 이야기가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정리하는 방식이 문제인 거죠. 애초에 원작의 주된 플롯이 원래부터 그랬으니 이재규나 배세영의 책임이라 따지기는 어렵지만, 각색의 과정에서 넣은 개그들이 이를 증폭시키는 건 있습니다. 냉정히 말해서 이 작품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원작의 색채에서 기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판 연출진이 작품에 뭔가 특별하게 관여를 한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말 원작의 스토리라인이나 세부 설정을 거의 그대로 따라갔어요.
그나마 한국 리메이크의 특색이 드러나는 부분은 역설적으로 ‘연출의 질감’입니다. 제작사나 연출진이 방송을 만들 던 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2시간 짜리 특집 단막극을 보는 듯한 연출과 편집을 선사합니다. 심지어는 극중에 PPL을 삽입하는 방식까지 묘하게 방송 드라마의 ‘협찬’을 보는 느낌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제작에서 시작된 묘한 ‘반반’의 기미가 연출과 스토리에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7명의 배우가 보이는 연기력은 나쁘지 않지만, 연출과 서사와 어우러지며 이 역시 묘하게 ‘반반’입니다. 어찌보면 <대학살의 신>이나 <더 파티>처럼 엑셀을 끝까지 밟지 못하고 적당히 브레이크를 밟은 ‘안전한 느낌’의 플롯이 가장 큰 원인 같기도 하고요. ‘안전한 일탈’이라는 점에서 흥행은 용이하겠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도 요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