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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Oct 29. 2018

존 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단평 : 정석의 변주

잘 쌓아올린 로맨틱 장르 위에, '아시안'을 '문화적'으로 결합하다

<스텝 업> 시리즈로 일약 주목을 받았던 존 추의 작품입니다. 케빈 콴이 쓴 동명의 로맨틱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죠. 주연은 물론 조연 라인을 전부 아시아계 배우로 채용해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사실 표면상으로만 판단하면 오해하기 쉬운 요소가 많습니다. 갑부 집안의 남자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하지만 전문직인) 여성의 신분차 로맨스는 오랫동안 쓰인 소재죠. 게다가 존 추가 근래 참여한 프로젝트인 <젬 온 더 홀로그램>이나 <나우 유 씨 미2>가 썩 훌륭친 않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의 표면적인 요소와 달리 실제 극을 이끄는 요소는 ‘한국 막장 드라마’나 ‘양산형 할리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히려 이 작품에 견줄 작품은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나 <B급 며느리>, 아니면 제인 오스틴이 만든 고전 로맨스 소설들이죠. 먼저 영화는 로맨스 코미디가 선보일 수 있는 요소를 정석적으로 충족합니다. 남녀 두 사람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지만, ‘계급차’와 서로 다른 문화가 이 둘의 사이를 가로 막고, 다시 주변인들이 이 둘의 조언자가 되며, 끝내 행복한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하나의 요소도 허투루 지나가는 대신 충분히 요소들이 관객들에게 접근하고, 로맨틱 코미디의 근간을 이룰 수 있도록 충분하게 다졌어요.

이렇게 세워진 튼튼한 장르 구조 위에 존 추는 ‘문화의 화학적 결합’이라는 메인 디쉬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겉에 드러나는 것은 싱가포르 화교인 ‘닉 영’(헨리 골딩)과 중국계 미국인인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 간의 연애 전선이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더욱 가시화되는 것은 닉 영의 어머니인 ‘엘레노어 영’(양자경)과 닉 영의 남매인 ‘아스트리드 영’(젬마 찬)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드러나는 것은 서구권에서야 쉽게 ‘아시아계’로 퉁쳐지지만 ‘아시아계 미국인’과 ‘아시아인’은 겉모습만 같을 뿐 공유하는 지향은 결코 같지 않다는 부분입니다. 레이첼 추는 경제학 교수라는 설정에 걸맞게 주변 상황을 잘 살피고, 각 개인의 이해득실을 무척이나 신경씁니다. 하지만 엘레노어 영과 아스트리드 영은 그럴 수가 없어요. 이미 자신들이 수백년 간 이어진 가문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놓인 위치가 꽤나 단단한 사회적-문화적 관계들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부유하지만, 종속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죠.



이 문제는 작품의 후반부로 갈 수록 계속 심화되어 ‘아시아계 여성들이 놓인 굴레’라는 문제로 확장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 혼인 생활을 하고 양육-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자신이 사는 계급과 상관 없이 수많은 희생을 당해야 하는 상황들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죠. 마치 <B급 며느리>에서 처음에는 고부 관계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며 단순히 ‘고부’의 문제를 떠나 집단과 사회의 문제를 봐야함을 지적하듯 말입니다. 단순히 레이첼이 엘레노어와 싸운다고 해결될 문제도, 그저 낭만적으로 닉과 도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애초에 문제 자체가 ‘가문’이라는 오래된 공동체에 묶인 여성과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문제에선 자유로웠단 여성 사이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간극의 차원이죠.

존 추는 이 문화적인 간극이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 관습 속에서 어떻게 화학적인 결합을 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자극적인 장면을 최소화 하면서도 갈등을 세심하면서도 간명히 드러내고, 남녀 간의 사랑 문제가 어떻게 ‘집단’과 ‘문화’의 차원으로 이어지는 지를 보이죠. 매우 관습적인 ‘가난하면 착하고, 부유하면 악하다’는 식의 이분법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쉬울 것 같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아시안’이라는 속성을 주체적인 시선과 캐릭터 롤을 부여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로맨스’라는 장르를 무척이나 잘 이해하고, 그 이해의 지평 위에 쉽게 치부되거나 무시되는 ‘소수 집단’의 의식과 심리를 ‘결합’시켜낸 흥미로운 시도인 셈이죠. 외견은 ‘현실’적이지 않아 보여도, 깊게 장르와 문화를 살펴 보기에 매우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저 살아가는 무대나 캐릭터 설정이 ‘현실에서 많이 본 것 같다’고 현실적인 로맨스가 되는 것은 아님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작품 그 자체로 전달하는 것이죠. 한국에서 로맨스 장르 창작을 꿈꾸는 작가들이나 제작자들이 꼭 깊게 들여다 봐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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