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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Oct 22. 2018

백재호, 이희섭 <대관람차> 단평 : ‘죽음’ 앞에서

<그들이 죽었다>의 방황과 혼란이 음악과 일상과 만나며

많은 독립영화의 촬영감독을 맡은 이희섭과 독립영화에서 배우로 활동을 하다 <그들이 죽었다>로 장편 감독 데뷔를 한 백재호의 공동연출작입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주연 강두와 지대한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를 일본 배우와 일본어 스크립터로 채운 영화는 기본적으로는 ‘음악영화’를 지향하지만, 더 파고 들어가면 <그들이 죽었다>에 대한 화답에 가깝습니다. 백재호의 전작 <그들이 죽었다>는 소위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 주로 나오던 ‘청춘영화’에 속하는 영화지만 ‘영화 제작’과 ‘죽음’을 연결하며 느릿느릿하면서도, 좌충우돌하는 독특한 질감의 작품이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도무지 쉽게 예측할 수도, 비관적인 작품의 색채가 많은 호불호를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죽음’ 자체에 대한 성찰로 미래를 고민하게 만들었죠.

<대관람차>는 <그들이 죽었다>와 달리 이미 ‘죽음’이 도래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2014년 4.16 세월호 참사에서 주인공들의 소중한 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인공들은 짐짓 평온한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도 그들의 죽음을 쉽게 인정하긴 어렵습니다. 마치 주인공 ‘우주’(강두)가 선박 사고로 실종된 ‘대정’(지대한)의 환영을 발견하고, 또 다른 주인공 ‘하루나’의 아버지가 음악에서 멀리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영화는 이 막막한 상황을 ‘음악’으로서 해답을 찾기를 시도하지만, 단순히 ‘음악’이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대관람차>에서 음악은 주인공들이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를 정한 ‘결정의 증거’로써 쓰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환상을 색안경처럼 쓰고 있던 사람들이 이윽고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서 드러내며 다시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죠.

그런 점에서 <대관람차>는 ‘죽음’에 대한 고민 앞에서 쉽게 갈피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들의 방황을 그린 <그들이 죽었다>에 대한 감독 본인의 대답이 됩니다. 동시에 ‘세월호’나 ‘후쿠시마’와 같은 인재가 겹친 재난을 풀어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됩니다. 4.16 미디어위원회의 다큐멘터리가 고발과 추적, 남은 이들의 움직임을 통해 세월호의 아픔을 말하고, 신동석의 <살아남은 아이>나 <봄이 가도>가 비극적 상징의 투사를 통해 슬픔의 감정을 말했다면 <대관람차>는 감정을 절제하고, 남은 사람들이 어떠한 일상과 우연의 만남을 통해 이후를 모색하는지를 ‘음악’과 함께 제시하는 것입니다. 마치 흔들리더라도, 다시 순환하는 ‘대관람차’의 움직임처럼 말이죠.

물론 어떤 이들은 아직 4.16과 후쿠시마가 낳은 상흔을 ‘일상의 어법’으로 푸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들이 막판에 이르러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너무 이르지 않냐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죽었다>의 번민이 <대관람차>의 일상들로 이어지는 것은 감독은 물론, 삶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방식의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인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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