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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Oct 21. 2018

우에다 신이치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단평.

중첩되는 메타-서사에서 ‘장르’라는 얼개를 바라보다

* 일부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영화는 꽤나 많습니다. ‘배우로서의 고민’까지 포함시키면 <선셋대로>나 <이브의 모든 것>도 그런 축에 속했고, 근래 한국에서 나온 <어둔 밤>이나 <국경의 왕>도 이에 속합니다. 허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이를 한 번 더 꼬아서 ‘영화를 찍는 영화를 찍는 것’을 보여줍니다. 액자 속에 또 액자가 있는 이중 메타 영화라고 할까요. 여기에 한 번은 원씬 원컷으로 40분간 이어지는 롱테이크를, 그것도 하나의 단편을 찍어야만 합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는 ‘좀비물’의 얼개를 쓰고 있지만, 일본에서 몇 번 나왔던 ‘영화 그 자체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대한 작품에 더 가깝습니다. 아미르 나데리의 <CUT>이나 소노 시온의 <지옥이 뭐가 나빠>처럼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어도, 등장인물들은 조금만 삐끗하면 큰일이 나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영화를 찍으려 합니다.

작품은 그 영화에 대한 감정과 전개되는 과정을 크게 전반의 ‘극중극’과 후반의 ‘메이킹 필름’으로 드러냅니다. 극중극 <원 컷 오브 더 데드>에서 감독은 좀비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리얼한 연기를 원하며 극한까지 카메라를 계속 돌리고, 다시 극중극을 찍는 작중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판과 생계가 달려있기에 극중극처럼 마구 배우를 몰아붙일 수는 없어도, 결국 감독은 ‘극에 몰입하는 순간 캐릭터에 동화되어 대본도 어기는’ 아내처럼 자신이 만들어가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노도 잠시나마 주체할 수 없게 됩니다.

‘열광’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이를 극중의 감독으로 놓은 상태에서, 극중극은 ‘생방송 롱테이크’라는 설정과 이어지며 극중 현실과 마구 섞이기 시작합니다. 그 속에서 각종 돌발적인 사고들은 물론 감독이나 스태프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까지 투사됩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살펴봐야 할 점은 그 속에서 감독은 전통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이미 깨지는 마당에 장르에 담긴 클리셰까지도 극의 요소로 활용합니다. 생방송 제작 과정의 임기응변 속에서 어떻게든 방송사고를 막기 위해 한편으로는 인위적인 클리셰 활용을, 다른 한편으로는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그 클리셰는 한편으로는 장르적인 서사-인물에 대한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에서 흔하게 쓰이는 촬영적인 기법이 되기도 합니다. 극중 각본에서 의도된 상황은 아무리 롱테이크가 되어도 자연스럽게 인물의 구도와 카메라 워킹을 관습적으로 가져가지만, 중반 이후부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자연스러운 카메라 연출’이 ‘정상성’을 기준으로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페이크 다큐멘터리마냥 카메라는 마구 흔들리고, 줌 인-줌 아웃도 대책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웃기게도 그 망가진 촬영 관습이 극중 제작자의 반응처럼 ‘리얼’하다는 인상을 주고 맙니다. (심지어는 <블레어 위치>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이 흥행에 성공하니, 이게 다시 클리셰가 되었죠.)

극중의 상황을 돌이켜 생각하면, 장르 관습이 의도치 않게 파괴되는 상황은 감독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실패’입니다. 하지만 도리어 그러한 파괴가 이뤄질 때, 앞서 지적했던 전문적인 영화를 배우지 않는 사람이 영화를 찍거나 실제 일상처럼 보이는 시퀀스가 문득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메타의 메타’를 넘어 ‘메타의 메타의 메타’라는 삼중 메타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장르 영화를 만드려는 감독만이 메타의 영역으로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장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정서와 심리까지도 끌어당기는 것이죠.

오랜 시간 동안 다져오며 형성된 ‘장르’라는 얼개를 유지하는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파괴되며 이어지는 시퀀스들을 상정하며 그 안에서 (관객까지 포함된) 영화를 유지하는 주체들의 동상이몽까지 영화의 안으로 진입시키는 것입니다. 롱테이크로 완성된 극중 단편도, 롱테이크 생방송 TV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극중 제작진들의 좌충우돌도 흥미롭지만 ‘장르’라는 틀 자체를 사고하는 구성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속의 다층적인 구조를 ‘장난’을 넘어 ‘성찰’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그야말로 ‘장르(를 말하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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