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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Nov 06. 2018

노규엽 <출국> 단평 : B급 스릴러도 되지 못한 국뽕

화이트리스트 연루 문제를 넘어, 장르의 기본도 갖추지 못하다

대놓고 말할게요. 문화예술계 화이트리스트에 연루된 의혹을 받은 작품입니다. 제작비가 66억인데 이중 절반 이상을 모태펀드 계정으로 받아서 더욱 논란이 되었습니다. 논란으로 개봉이 미뤄지는 사이, 제목도 <사선에서>에서 <출국>이 되었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은 뭔가 좀 억울했던지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오길남 박사의 일을 다룬거지, 윤이상을 다룬 것이 아니다’ ‘차가운 첩보물에 가족을 찾기위해 뜨겁게 움직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변을 남겼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첩보는 첩보인데, 차가운 첩보가 아니거든요.


감독이 언급한대로 영화는 오길남 박사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오길남은 경제학자인데, 독일 유학 시절에 북한에 포섭되어 가족과 월북해 대남 선전 공작원이 되었어요. 하지만 자기만 홀로 북을 나왔습니다. 여기서 오길남은 이 과정에서 윤이상이 획책을 했다 주장하지만 애초애 오길남의 주장도 뭔가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많아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영화는 이 이야기에서 ‘북한에 들어가 공작원이 된 유약한 남성 학자가 북한을 탈출해 가족을 구한다’에 초점을 맞춰 이를 첩보물로 재구성하는 시도를 합니다.

생판 공부만 하던 학자가 공작원 교육을 받으니 바로 막강한 액션을 선보인다는 것이야 영화적 허용으로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 칩시다. 애초에 이 영화의 레퍼런스는 ‘본 시리즈’에 <테이큰> 시리즈가 결합된 형태니까요. 그냥 차라리 남북 사이에서 방황하는 학자 출신 공작원의 이야기로 다뤘으면 수작은 아니더라도 B급 액션 스릴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빈 사이를 메꾸는 이야기가 심각하게 문제입니다. 그냥 ‘대한민국 만만세’에요. 북한 측 인사 모두를 나쁜 놈으로 그리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미국 CIA 같은 존재도 ‘우리를 방해하려는 못된 놈’이 됩니다. 오로지 나 자신과 안기부 요원 정도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인간이 됩니다.

더 심각한 건 메인 악역의 설정입니다. 감독 말대로 이 캐릭터는 윤이상이 아니죠. 대신 윤이상의 이력에 송두율이 받은 의혹을 더하고 여기에 해외 망명 민주화 인사에 대한 온갖 나쁜 이미지는 죄다 섞었습니다. 사실상 극우 인사들이 해외 민주화 운동에 가하는 편견 그대로 악역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더욱 심각하고, 게다가 이 악역을 활용하는 방식도 참 처참해서 뭐라 말도 못하겠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나 ‘본 시리즈’가 이렇게 악역을 낭비하나요?

그냥 대놓고 말해서 액션스타가 되고 싶었던 이범수의 몸부림이 ‘국뽕’과 만나서 대폭발한 작품일 뿐입니다. 화이트리스트에 연루가 안 되었어도 문제고, 연루가 되었으면 더욱 심각한 영화입니다. 그냥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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