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점은 있어도, 절충에는 성공하다
단편 <명환이 셀카> <간만에 나온 종각이>로 로맨스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이상근의 첫 장편 데뷔작입니다. 그런데 무려 장르가 ‘재난 생존물’이죠. 게다가 제작사가 <군함도>에서 그만 체면을 구겼던 류승완과 강혜정의 외유내강에, 공동제작사는 <여교사>와 <군함도>로 외유내강과 함께 한 필름케이입니다. (<사바하>도 여기가 공동 제작이었죠.) 또한 이미 한국에서는 흥행 여부와 상관 없이 재난-생존물이 나오는 것도 드물고, 평가도 좋지 않았었습니다. <해운대>가 대표적이고, <7광구>나 <타워>도 그랬죠.
<엑시트> 역시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포스터만 봐도 뭔가 웃기려 작정할 것 같고, 시작한지 30분 간은 요새 유행하는 청년 실업에 전형적인 대가족 이야기에, 전 여친 이야기에 또 소위 전형적인 ‘개저씨’까지 주르륵 판을 깔아줍니다. 정말 뻔한 이야기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냉정히 말해서 초반 스토리는 진부한 요소가 강한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건의 발단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영화는 싹 분위기를 바꿉니다. 영화 속의 재난은 여러모로 마치 일본의 사린 가스 테러나 ‘외로운 늑대’(lone wolf)가 저지른 각종 무차별적 테러 등 여러 실제 사건에서 따온 구석이 많고, 일부러 과장된 효과를 주지 않아도 발단-확산 장면 자체만으로도 꽤나 몰입감을 줍니다. 재난이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있는 곳을 덮치며 영화는 코믹한 요소는 최대한으로 줄이고, 주인공들이 지닌 액션과 맥락의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려 나섭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한국 영화가 습관적으로 반복한 코미디 컨벤션이나 신파적인 장면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게 해도, 최대한 영화는 그 장면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지금 닥친 재난에만 초점을 주며 기울이려 애씁니다.
배우들에 대한 역할 배분도 좋습니다. 과반수의 장면은 조정석이 중심이고 몇몇 시퀀스는 조정석의 코믹한 면모에 의존하는 지점이 느껴지긴 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순간에는 이 요소를 통제합니다. 툭히 임윤아에 대한 디렉션이나 배역 부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수동적인 캐릭터 롤이 아니라 꽤나 비중 높은 액션 씬을 배치하면서 여/남 두 주인공의 관계가 일방적이거나 위계적이지 않음을 강조하고, 동시에 둘 사이의 관계가 로맨스적 측면이 있어도 파트너십에 기초하고 있음을 영화는 드러내는 것에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습니다. (동시에 <공조>나 JK필름이 임윤아를 비롯해 여성 배우의 활용을 얼마나 실패했는지를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수작이라고 볼 수 없지만, 최소한 한국 상업 영화로써는 드디어 ‘납득할 만한’ 재난 생존물이 탄생했습니다. 장르 컨벤션의 이해를 잘 하고 만든 구석이 돋보이죠. 일부 한국 영화 특유의 군더더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도, 어떤 의미로는 최대한 절충하고 타협하는 것에는 성공한 겁니다. 동시에 제작자 류승완의 주특기인 코믹 활극을 새롭게 구축했다는 인상도 들게 합니다. 그렇게 <엑시트>는 작지만 고민해 볼만한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추신1. <엑시트>의 제작비가 130억원으로 공표되었는데, 이젠 더이상 한국 영화에서 적절한 자본이 뒷받침 되는 한 130억은 대형 제작비는 아니게 되는 듯해요. 야외 장면 상당수는 확실히 상암 일대에 몰아 찍은 티가 많이 나고, CG를 한국 영화 평균 이상으로 많이 활용했더군요. <기생충>과 <엑시트>가 비슷한 제작비임을 생각하면, 한국 영화의 제작 규모 역사를 새삼 생각해보게 되고.
추신2. 주제가로 2007년 KBS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의 주제가로 쓰였던 이승환의 <슈퍼 히어로>를 영화에 맞춰 새롭게 편곡한 버젼이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