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주체적 기록을 강조하는 아카이브의 어떤 틈새와 공백들
개관 이후 두 달여가 지나서야 불광 서울혁신파크에 개원한 서울기록원을 방문할 수 있었다. 물론 아카이브 수집-보존 기관의 특성상 일반인이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아직 진행 중인 개관 특별전 ‘기억의 힘’ 정도를 둘러볼 수 있었다.
‘기억의 힘’은 크게 네 갈래로 나뉘어 있다. 딱히 정해진 관람 순서는 없지만, 굳이 나누자면 세 개의 카테고리- 또는 두 개의 대분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위안부’, ‘서울의 아파트 단지’, ‘그간의 서울시 아카이브’의 측면으로, 후자로서는 ‘서울시 차원의 아카이브’와 ‘민간 차원의 자체적 아카이브’로.
기본적으로는 서울기록원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세워졌으며, 국가기록원 같은 중앙 정부의 아카이브 기관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강조하는 성격을 전시는 지니고 있다. 위안부 기록물을 전시하는 파트에서, ‘2015년 위안부 협상을 마치고 공식적인 기록물 수집 사업을 중단한 이후 서울기록원이 뒤를 이었다’를 강조하는 설명에서는 중앙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서울시의 서울기록원이 함을 드러내며 기관의 당위성과 차별성을 심는다.
목동 신시가지 아카이브 - 둔촌/개포/과천주공아파트 시민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맥락 역시, 하나는 서울시가 도시계획을 함에 있어 일찌감치 차근차근 아카이브를 보관했었음을 (그러나 한동안 다시 방치되었다 이제 다시 발굴했음을) 드러내고 다시 한 측면으로는 시민의 아카이브 기록을 보존함을 강조하는 맥락을 지닌다.
아카이브의 중요함을 깊게 인식하는 사람으로서, 철저한 수집과 보관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아카이브의 기록-보관만큼 이를 재가공하여 드러내어 시민-사회단체에 상시적인 접근이 일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서울기록원의 전시관 도입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서울기록원의 개관 전시는 최소한 도시계획 측면에서는 양날의 칼을 지닌다. 목동 신도시 개발 자료를 보여주면서, 전시에 게시된 문구는 이 시도가 ‘투기와 이해관계를 배제한’ 방법으로 전개되었으며 신도시 입주에 대한 관심 저조와 철거민 문제 해결도 원만하게 전개되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최소한 전시 내부에서 단 하나의 패널로 그친 ‘원거주민의 저항’ 부분과도 정면 충돌한다. 정말로 목동 신도시 개발은 원만하게 해결되었는가? 원거주민의 문제 제기는 그저 신도시 개발 계획을 지체하게 만들어 ‘대책’을 낳게 하는 대상에 그쳤는가.
이러한 모순은 바로 옆의 재건축을 앞두며 사라진 둔촌-개포-과천의 주공아파트 아카이브하고도 부딪친다. 사라진 아파트를 기억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인 기록화와 측량-수집으로 자료에 의미를 부여한 과정은 나오지만, 그 아파트들이 ‘사라지는 맥락’은 삭제되어 있다. 왜, 어떤 이유로, 어떤 경제-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사라지고 원거주민/실거주민의 주거가 보장되기 어려운 재건축이 이뤄지는지는 이 전시만으로는 맥락을 알 수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다시 서울시가 서울기록원으로 삽입한 ‘시민 주체적 아카이브’의 힘이다. 그 아카이브가 어떤 과정과 구조적 맥락으로 생성되었는지가 부재한 아카이브는 과연 어떠한 결론과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 서울역사박물관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대형 건축-철거-산업 이벤트가 가진 다양한 측면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점차 축소되었지만, 작년 88 서울 올림픽 전시에는 공식 아카이브를 넘어 쉽게 기록되지 못했던 맥락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이보다는 많았다.
이는 마치 2010년대 중후반 이후로 가속화되는 ‘아카이브 기반 미술 전시’하고도 맥락을 같이 한다. 기념해야 (또는 하도록) 하는 당위성이 부여된 시대와 대상의 자료를 모으고 가끔씩은 재현하거나 재배치를 한다. 그리고 그 모아진 유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큐레이터의 손과 입을 통해 현장의 설명문으로, 음성가이드로, 다시 도록으로 이전한다. 하지만 대개의 아카이브 전시는 당위성 이상으로, 왜 그것들이 그때 그들-그 장소에서 태어났는지는 묻지 못한다.
그나마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성찰과 답변을 내려는 시도는 최근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렸던 ‘웹-레트로’ 전이었고, 그 시도 자체의 편집증적 욕망과 사적인 맥락 구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된 Sasa[44]의 ‘엉망’ 전이었다. 서울시의 근래 맥락으로 한정짓자면, 단연 산업화랑의 ‘박원순 개인전’이 아카이브의 현재적-공간적-주체적 맥락을 매우 가까이 드러냈다. 서울기록원 각 구성원이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들인 공력에 대한 감사와는 별개로, 이 ‘비고’ ‘끊긴’ 틈새의 맥락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서울기록원이 국가기록원과 진배없는 기관이 되는 것은 매한가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