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서비스에 집중하다 모두 놓치다
온라인 시사회로 감상했습니다. 애시당초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팬서비스 성격’이 강하다지만, 이번 <감청의 권>은 냉정히 말해서 도가 지나쳤습니다. 3.5명의 남주인공과 2명의 여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성애-동성애 커플링을 대놓고 연출하는 시퀀스들은 무척 많습니다. 팬들이 꿈꿨던 장면들을 최대한 재현하려 했달까요.
문제는 이 장면들을 이어내고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이전 코난 극장판 <진홍의 연가>의 각본에 참여했던 인기 미스터리 소설가 오쿠라 다카히로가 다시 각본을 맡았지만,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진홍의 연가> 이상으로 트릭은 엉망이며 장면간의 연결 또한 조각나 있습니다. 아무리 팬서비스에 충실한 극장판이라도 최소한 장면과 장면이 긴밀한 맥락을 가져야 하지만 신경을 과연 쓰긴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팬들이 상상하던 장면을 실제 공식 매체에서 재현하는 이상으로, 동인지가 아닌 이상 왜 이 캐릭터가 지금 이 장면에서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는 설명이 되어야 할 게 아닙니까? 하지만 영화는 애시당초 작품을 이어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듯 모든 시퀀스가 따로 놉니다. 이런 상황에서 갈 수록 스케일이 커지는 테러와 재난 액션, 그리고 점점 코난 극장판이 (마치 일본 서스펜스 특선 드라마마냥) 가는 방향대로 관광지와 일본 전통 문화 홍보의 성격을 가지려 하지만, 이 조차도 스토리에 융합되지 않습니다.
물론 코난의 오랜 팬들에게, 극장판에서 보기 쉽지 않았던 시퀀스 (예를 들어 괴도 키드와 코난이 한 침대에서…) 를 보는 장면이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화면으로 그 장면들을 보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긴 어렵습니다. 전작 <제로의 집행인>이 이상할 정도로 심한 국수주의적 전개로 <절해의 탐정>과 함께 비판을 받았지만 그래도 전작은 확실한 흐름이 존재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팬서비스’를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지만, 그로 인해 결국 팬서비스 조차도 죽었습니다. 차라리 큰 TV로 클립영상을 보는게 효과적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