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 영화의 재편기, 실험과 좌충우돌의 어떤 키치적 결과물
이래저래 컬트적인 한국 영화를 말할 때, <미지왕>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1990년대 이후 임권택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태흥영화사는 여러모로 한국 영화의 재편기 당시 갈림길에 놓이던 회사였습니다. 기획영화 붐을 타고 전문 프로듀서가 대우, SKC 등과 연합해 새판짜기를 노리고 있던 동시에 합동영화, 세기상사, 화천공사 등 이전부터 한국 영화계에서 토착 자본으로 관습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던 곳도 있습니다.
태흥영화사는 냉정하게 말하면 후자에 속하는 회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코리안 뉴웨이브’를 직간접적으로 함께하며, 이명세 <개그맨>, 장선우 <경마장 가는 길> 등 기존 영화사들에 비하면 비교적 참신한 작품을 만들며 씨네21을 비롯하여 당시로써는 새롭게 영화계에 진입한 이들에게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태흥영화의 이태원 대표가 탈세 혐의로 구속될 때 씨네21 기자 몇몇이 석방 탄원에 참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영화 평은 갈리지만, 2004년 조승우 주연, 임권택 연출로 한국에서는 참 보기드문 ‘영화 제작자의 전기 영화’ <하류인생>으로 이태원 대표의 삶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미지왕>은 어떤 의미에선 기획영화가 점점 자리를 넓히던 중 기존 토착 영화사들이 자신이 원래하던 방식대로 신인 감독을 적극적으로 밀며, 새로운 감성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도였다 봐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마치 태흥영화에서 제작한 <개그맨>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명세처럼 말입니다. 한가지 독특한게 있다면, 김용태 감독은 <미지왕> 이전에도 결코 평범치는 않은 길을 걸어왔던 것이겠죠. 김용태 감독은 박찬욱과 동기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박찬욱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의 각본을 집필하고, 마틴 스콜세지와 스파이크 리, 하길종으로 유명한 뉴욕대 영화연출과 석사 과정을 다녔던 유학파 감독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뮤직비디오 연출도 했었다는 군요.
1980년대나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존재 자체가 한국에서는 결코 익숙치 않았던 ‘뮤직비디오’의 연출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며, 동시에 마치 하길종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미국에서 영화를 배우며 한국보다 다양하게 영화 자료를 접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미지왕>은 감독의 씨네필적인 감각을 마구 드러내면서도, 끊임없이 영화의 클리셰를 뒤집고 뒤섞고 흩뿌려 놓으며 자신만의 코미디를 추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스토리가 애시당초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영화는 소위 정상적인 스토리라인을 잡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저히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가 감독의 영화에 대한 매니아적인 감각과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어지고, 이를 어떠한 이미지와 심리가 전개되며 흐르냐는 것입니다.
영화나 1990년 당대 한국-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여러모로 더욱 즐기기 쉽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소마이 신지, ZAZ 사단의 <에어플레인> 시리즈,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 앤디 카우프만이나 존 벨루시가 나오던 당대의 SNL, 주성치나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특유의 코미디와 액션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같은 B급 영화, 그리고 여전히 갈팡질팡 하던 ‘방화’와 이박사의 ‘뽕짝 메들리’까지. 이 모든 것들이 약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숨막힐 틈 없이 전개됩니다.
영화는 진지해 보이는 시퀀스를 단 하나도 그냥 놓아두지 않으며 계속 탈선과 이탈을 꿈꾸고, 진지해 보이는 장면은 지속적으로 비트는 작업을 통해 소위 ‘정상적’인 전개를 거부합니다. 매 시퀀스는 결코 다음 시퀀스로 쉽게 이어지지 않으며, 쉽게 이어지지 않을 요소들을 마구 덧붙입니다. 동시에 ‘경찰’이나 ‘대학 교수’, 아니면 ‘반공주의’ 같은 사상을 비틀면서 이들을 가볍게 조롱하고 ‘씹어’ 댑니다. 이 모든 과정은 참으로 유쾌하며 가볍고, 이미 모든 서사는 파괴된 상황에서 즐거운 폭주를 이어나가는 것으로 서사를 대체합니다.
어떤 의미로 이 작품은 1990년대 중후반 폭발적으로 표현되던 신촌이나 홍대, 또는 대학 기반으로 뿜어져 나오던 키치와 B급을 추구하는 시도에 기반을 하고 있습니다. 크라잉넛이나 황신혜밴드 같은 ‘인디밴드’를 자청하는 밴드들이 속출하고, 미술 영역에서는 한창 김정화나 안상수, 이불 등이 자신의 작업을 하던 시기. 만화에서는 ‘화끈’이나 ‘히스테리’, ‘MIX’와 같은 인디-대안-언더그라운드-지하를 외치던 때. <미지왕>은 그 시기 기회를 잡아, 프로듀서의 통제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하나의 시도였습니다.
비록 그 시도는 앞서 언급했던 당대의 인디 문화에 비교하면 처참하게 실패했다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태흥영화는 단성사와 강남 씨티극장(현 메가박스 씨티)를 중심으로 영화를 개봉했지만, 서울 관객은 간신히 1만명을 넘기며 침몰했습니다. 개봉 당시 비디오로 나온 것을 빼면 이후 DVD나 블루레이는 커녕 VOD도 하나 없죠. 누군가 비디오 립을 뜬 영상이 돌아다닐 뿐입니다. 그저 최근에 주연인 조상기가 <야인시대> ‘상하이 조’로 화제가 되며 좀 더 주목을 받고, 2019년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되며 옛날보다는 좀 더 실체가 알려졌을 따름이죠. (사실 개봉 당시에도 KINO가 뽑은 1997년 한국 영화 베스트 10에서 4위에 오르긴 했습니다.)
이후 김용태 감독은 다시는 영화에 손을 대지 못한 채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교수로 일하다 2012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 사이 김용태 감독이 각본으로 함께한 박찬욱은 한국 영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감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한국 영화의 다채로운 시도는 독립영화 영역에서도 쉽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준지 오랩니다. 쉽게 특정 영화에 쏠리는 현상은 강화되었고, 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블럭이 협소한 상황에서 영화의 폭도 함께 줄어 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얼굴들>의 이강현, <밤의 문이 열린다>의 유은정, <우리들>의 윤가은, <벌새>의 김보라 등이 극영화에서 고군분투하지만, 개인의 분투를 넘을 수 있는지는 아직 답하기 어렵습니다.
아쉽게 부천에서 못 보고 팟캐스트 녹음차 <미지왕>을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한국 영화가 소위 ‘코리안 뉴웨이브’로 흘러간 방향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대기업 자본과 함께 하며 기획영화를 추구했던 이들은 주먹구구로 제작된 한국 영화의 시스템을 개혁하려 노력했지만, 향유와 문화가 바탕이 되지 못했던 움직임은 결국 다시 역풍으로 되돌아고 1990년대의 소위 ‘문화 실험’은 일부를 제외하면 쉽게 포섭되거나 퇴색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영화에서는 다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은 물론, 당대 한국 영화의 재편기에서 극한까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 작품의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1990년대 한국이 놓여있던 그 자체와도 같습니다. 마치 1990년대의 속살을 꿰뚫는 정윤석의 <논픽션 다이어리>나 김보라의 <벌새>가 바라보는 20여년 전 과거에, <미지왕>은 마냥 아름답지 않지만 미지의 기대와 불안감이 공존하던 1990년대 중반의 어떤 초상이자 결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