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면서도 미묘한 리메이크, 자스민 캐릭터가 생기를 주다
19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모르지는 않겠죠. ‘알라딘’과 ‘지니’를 누구나 알 대명사로 만들고 A Whole New World는 지금도 유명한 명곡입니다. 근래 디즈니의 자사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알라딘>이 빠질 순 없죠.
문제라면 디즈니의 셀프 실사 리메이크가 흥행은 되고 그럭저럭 평타는 쳤어도 어딘가 미묘한 구석이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물론 존 파브로의 <정글북> 같이 꽤나 노력했던 작품도 있긴 했지만, 평작 또는 범작의 연속이었습니다.
게다가 <알라딘> 애니메이션에서 지니 역할을 맡았던 로빈 윌리엄스가 안타깝게 사망하고, 연출을 맡은 가이 리치 역시 요 근래 작품이 잘 풀린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죠.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이젠 20년 전 작품이 되었죠. 바로 직전 연출작이었던 <킹 아서>가 처참하게 망하고, <맨 프롬 엉클>도 평이 영 미묘한 상황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미녀와 야수>의 빌 콘돈이나 <신데렐라>의 케네스 브래너 등 디즈니 실사화 감독은 요 근래 커리어가 안 풀리는게 전통이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지니’역을 맡은 윌 스미스 조차 2010년대 이후로는 평이 좋은 작품이 별로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미묘한 상황들 사이에서 제작된 <알라딘>은 어땠을까요. 먼저 아쉬운 부분부터 말해보자면, 스케일이 미묘하게 작습니다. A Whole New World의 연출이나 마지막 자파의 공격을 보여줄 때, 어딘가 제한된 공간에서 커보이도록 노력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원본격이 된 애니메이션이 자유분방하고 넓은 공간감을 연출하면서 막혀 있던 장소에서 해방하는 느낌을 줬다면, 이번 리메이크에서 이런 느낌은 잘 안 느껴집니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연출을 해도 어느 선을 잘 못 넘어가는 느낌이죠. 계속 답답한 감각이 조금씩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이미지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스토리로도 이어집니다. 서브 플롯이 많이 가지치기되며, 알라딘과 자스민, 그리고 이들의 주변 인물 (자파, 술탄, 지니, 달리아) 에 집중하려 하는데 중요 조연인 지니나 자파를 제외하면 모두 기능적 존재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이왕 영화에서 ‘달리아’라는 오리지널 캐릭터를 넣었으면 좀 더 써먹었을 구성이 많았는데, 쉽게 지니의 연인으로 설정하는 이상을 넘지 못하는 건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닝타임이 짧지는 않다보니, 스토리의 밀도가 옅은 감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간과할 수 없지만 <알라딘>은 동시에 디즈니의 근래 실사 리메이크가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그리고 유려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점도 함께 존재합니다. 가장 큰 점은 역시나 ‘자스민’ 캐릭터의 변화 또는 발전이 아닐까요.
1992년작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스민 캐릭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꽤나 파격적인 공주 역할이었습니다. 궁궐 밖을 스스로 나오고 싶어하고, 활기차고 발랄한 공주 캐릭터가 정말 많지 않았죠. 나오미 스콧이 연기한 2019년 실사판에서는 이 캐릭터성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비중을 실어주며 변화를 줍니다. 자파가 왕국을 차지하기 위한 음모에 좀 더 적극적으로 맞서기 위해 개입하거나, 누군가의 ‘왕비’가 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주체’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이에 맞춰 오리지널 스코어의 비중도 자스민의 것이 더 늘어났습니다.)
자스민의 변화한 캐릭터성에 맞춰 알라딘 캐릭터에도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고아에 좀도둑 출신이라 거침이 없다는 설정은 차이가 없어도, ‘지니가 바꿀 수 있는 건 겉모습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것과 함께하며 지니가 준 능력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지점이 증가합니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를 종합하면 애니메이션판에서도 분명한 메세지는 있었지만 ‘지위나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이번 실사판에서는 더 증폭하여 강조하는 셈입니다. 이건 심지어는 자파나 술탄 캐릭터에서도 똑같이 감지되는 흐름입니다. 본래 <유령 신부> <프랑켄위니> 같은 팀 버튼의 작품에 주로 참여한 존 오거스트가 각본으로 참여해서 인지는 몰라도, ‘다양한 인간’이라는 점에 주안점을 둔게 느껴지죠.
동시에 우려하던 것과 달리 윌 스미스의 지니 연기나 이를 이미지적으로 표현하는 연출이 꽤나 재치있는 것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심지언 이번 연출에선 다른 캐릭터들이 상대적으로 도구화된 것과 달리, 오히려 지니 역할에 더 폭을 넓게 줘서 상대적으로 깊이를 주게 되는 모습까지 감지됩니다. 여기에 가이 리치 특유의 액션 시퀀스 연출까지 더해지며, 아쉬운 점이 있어도 제 목소리는 낼 수 있는 리메이크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자스민’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위치나 맥락 설정이 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만든 점도 결코 무시해선 안 될 것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2010년대 이후 디즈니의 방향성이나 존 오거스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정말 미묘했을 실사 리메이크가 되었을 수도 있었던거죠. 어떤 의미에선 디즈니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새로운 페미니즘의 물결을 어떻게 해석하시는지를 보이는 지표이자, 동시에 2010년대 이후 계속 된 실사 리메이크가 서있는 위태함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인 것입니다. 흥행에는 성공했어도, 과제는 남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