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4> 단평 : 변주가 낳는 감동

변주와 자기 성찰적 재해석으로 다시 한 번 인상적인 속편을 만들다

by 성상민

도대체 누가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정식 속편이 나올 거라 생각했을까요. 그 정도로 2010년에 나온 <토이 스토리 3>의 마무리는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1990년대 1편부터 즐긴 어른 관객은 물론, 신규로 진입한 관객들에게도 감동과 흥미를 선사했습니다.


그래서 4편이 나온다는 말에 관심도 많았지만, 걱정도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3편의 결말에 TV용 스핀오프로 덧붙일 수는 있어도, 그 이상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건 사족이라는 생각마저도 들게 했으니까요. 설상가상으로 원래 4편의 연출자이자, 디즈니/픽사의 CCO였던 존 라세터의 성추행 가해 사실이 폭로되며 중간에 하차하는 불상사마저 있었습니다. 이렇게 온갖 불안과 우여곡절을 거치며 9년 만에 나온 신작의 모습은 어떨까요.




기본적으로는 1-3편의 변주입니다. 인형 ‘우디’가 그의 인형 동료들이 우여곡절 끝에 주인 ‘앤디’의 집을 벗어나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이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기본이죠. 4편 역시 똑같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주인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려는 과정을 그립니다. 1편에서는 집 밖에서 휘말리는 소동에 집중하고, 2편에서는 ‘콜렉터’를 풍자했다면, 3편에서는 주인인 앤디가 점차 성장하며 인형과 멀어지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감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4편은 큰 축에서는 3편의 감각을 이어나갑니다. 이미 앤디는 대학생이 되었고, 초반부를 제외하면 앤디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유치원에 갓 입학한 ‘보니’가 새로운 주인이 되지만, 우디의 처지는 3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와중에 우디의 도움으로 보니가 쓰레기통에 있던 포크로 만든 인형 ‘포키’가 새로운 친구로 생명력을 얻고, 홍보에서도 이를 강조하지만 결국 여전히 핵심은 1-3편 내내 주인공에 있던 ‘우디’의 변화입니다.

전편에서도 내내 그랬듯 터전에서 헤어졌다 다시 ‘귀향’하려 애쓰지만 이미 3편에서 악역 캐릭터를 통해 귀향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착은 문제만 낳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4편에서는 이미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와중에서도 ‘주인이 없게 된’ 인형들은 자신들과 함께 할 주인을 원하고, 인기가 없다는 점에서 우디 역시 버려진 인형들과 크게 처지가 다르지는 않습니다.

작품 역시 과거의 스탠스를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스스로 전편들에서 다진 구조를 비틀며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전히 집에 돌아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인형’인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는 것이 중요해지죠. 역설적으로 1편에서는 우디가 버즈 라이트이어에게 ‘자신이 인형임을 깨닫게하는 행위’가 중점이었다면, 이젠 우디 본인도 이를 깨달아야 할 시기가 올 당위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동시에 제작진들은 새롭데 우디와 친구들의 주인이 된 보니 가족을 히스패닉계로 설정하고, (대놓고 ‘키’ 가지고 개그 치는) 조던 필이 <겟 아웃> <어스>로 호러 영화계에서도 이름 알린 코미디 듀엣 ‘키 앤 필’이 자신들을 비유한 인형으로 그대로 나오는 등 제작진은 소위 ‘암묵적인 기준’이 많았던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려면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함을 보입니다.

이러한 자기 인식과 성찰이 있기에 <토이 스토리 4>는 참 흥미롭게도, 이미 나온지 9년이나 지난 전편처럼 1편부터 본 올드 팬에게도- 이번에 새롭게 작품을 접할 팬들에게도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귀향’의 코드를 비튼다는 점에서는 마치 수정주의 서부극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마침 우디 캐릭터는 전형적인 서부 개척시대 보안관과 카우보이를 형상화한 인형이기도 하고요.

만약 후속편이 나올 지라도, 그 후속작은 4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지향을 지니고 나갈 것임을 일찌감치 선언합니다. 과거의 흥행 코드를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최소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대규모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서 끊임없이 자신들은 바뀌고 변화할 것임을 말하는 흥미로운 시도인 셈입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는 디즈니/픽사의 진정한 무서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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