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작업을 반추하며, 다시 이를 ‘영화’로 직조하다.
2019년에 타계한, 누벨바그 그룹의 몇 안 되는 여성 감독이었던 아녜스 바르다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았던 것일까. 그의 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는 제목 그대로 바르다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회고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작품을 말하기 전에,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는 최소한 한국 관객에게는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안내서’라는 가치가 더해진다. 영화제나 특별전을 제외하면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국가에서, 그의 작품이 어떤 경로를 걸었고 어떠한 경향성을 계속 견지하려 했는지를 정리하고 드러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는 그녀가 손수 영상으로 정리한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 작가 전집/도록)이라는 차원에서 세계에 접근하는 하나의 관문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전집적 특성’을 최대한 발휘한 형태로서, 자신의 작품을 집대성한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회고 역시 영화적으로 드러낸 하나의 시도가 되었다. 아녜스 바르다 본인이 스스로 밝히듯, 그의 작업은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이다. 픽션을 만들어도, 자신이 찍고 있는 지역과 공간,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제거하는 대신 오히려 그대로 작품에 노출시키며 자신이 만든 서사가 어떤 맥락과 관계에 놓여있는지를 숨기지 않는다. 역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도, 적극적인 연출과 구성을 통하여 ‘자연주의’나 ‘현장주의’를 넘어 다큐멘터리가 담지할 수 있는 요소을 극대화시켰다.
동시에 한국에 개봉한 전작이었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또는- ‘얼굴들, 장소들’)에서 ‘모뉴먼트’로 극대화된 ‘고정된 사진 이미지’(still photgraph)와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image)의 연결을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전개하려는 과정이자 결과가 바르다의 작업이 지니는 하나의 속성이었다. 작중에 언급되는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의 주된 코드처럼, 무빙 이미지는 결국 고정된 이미지가 만드는 프레임의 연속이다.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바르다의 사진/전시 작업은, 2000년대 이후 영화계의 화두가 된 ‘포스트-시네마’ 담론처럼 영화를 곧 극장이나 필름에 고정시키는 대신 스크린과 장소의 확장을 통해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또는 구현할 수 있는) 접근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도였다.
동시에 바르다는, <쿵푸 마스터>에서 ‘게임’을 영화의 소재로 사용하거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통해 신진 작가를 자신과 동등한 파트너로 여기며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자신의 작업적 목표를 명확히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대화와 배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자세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 감독 본인이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태도를 통해서도 드러낸다. 대극장 앞에서 감독용 간의 의자에 앉으며 시작한 이야기는 감독 본인의 독백과도 같은 내레이션은 이어져도 장소는 결코 고정되지 않는다. 그 장소는 때로는 극장이었다가, 4:3 스크린의 과거- 또는 고정된 현재-이다가, 다시 어느 순간에는 미공개 커트로 이어지며 성찰적인 태도가 지금 갑자기 생기지 않았음을 보이는 동시에 이미지를 고정시키면서도 맥락적으로는 결코 폐쇄적이지 않은 그의 행보를 연상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때로는 즉흥적으로, 때로는 생각만큼 풀리지 않은 자신의 작업을 씁쓸하게 바라보면서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하는 기술적-사회적 흐름을 자신의 맥락 안에서 재해석하는 그의 지난 작업들은 ‘영화’(시네마)를 둘러싼 환경과 인식이 변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접근과 숙고가 필요한지 하는지 드러내는 하나의 창구가 되었다.
그렇게 아녜스 바르다는 자신의 유작을 통하여, 자신이 장 뤽 고다르나 알랭 레네와 같은 누벨바그 그룹과는 또 다른, 시대의 흐름을 냉철하게 응시하며, 자기 자신의 발걸음마저도 그렇게 응시하며 다시 영화로 구현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극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계속 지우거나 흐릿하게 만들며, 감독 본인의 시선과 존재와 생각을 애써 감추지 않았던 창작자가 마지막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굵직한 마침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