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기생충> 단평 : 변화한 공간과 틈새의 모습

‘봉합’을 벗어나, ‘폭발’을 시도하지만.

by 성상민



* 스포일러 있음.




봉준호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또는 단편 <백색인>과 <지리멸렬>도) 부터 지금까지 봉준호의 작품은 장르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이어지는 코드가 있습니다. ‘공간’과 ‘틈새’라고 할까요. 밤과 낮, 지하와 지상처럼 확연하게 분리되는 공간이 있고 어떤 위치에 서있느냐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양식이 무척이나 달라집니다. 게다가 이 분리된 공간은 일반적인 계기로는 서로를 오갈 수가 없어요. 이 공간이 우연한 계기나 사건으로 ‘틈새’가 있음이 밝혀지고, 그러면서 봉준호의 작품은 본격적인 전개에 돌입합니다.

<기생충>은 이런 전개를 ‘저택’으로 옮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송강호-장혜진-최우식-박소담의 집은 한 눈에 보기에도 ‘가난’하고 ‘빈곤’합니다. 반지하에, 벌레가 마구 집안에 돌아다니고, 형광등을 켜놓아도 도무지 집안이 밝지 않습니다. 게다가 예고편에도 나오지만 무료 와이파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운명이죠. 그에 비해 이선균-조여정-현승민-정현준의 집은 한 눈에 보기에도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넓은 전용 주차장에 늘푸른 잔디가 항상 구비되어 있고, 적당한 채광에 벌레 하나 없는 곳. 너무나도 풍요로우며 여유로운 환경입니다. 두 공간은 가끔 신문 기사로 간접적인 접촉이 이뤄지는 걸 빼면 결코 만날 일도, 서로를 알 일도 없습니다.

홍보에서도 언급하듯 서로 다른 이 두 공간이 ‘우연히’ 이어지는 것이 작품의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물론 시작은 ‘우연’해도, 그 이후 ‘가난한 이들’의 선택은 ‘필연’적입니다. 우악하고, 억척스럽죠. 자신들의 상대적으로 풍족한 삶을 위하여 거짓말을 서슴치 않고,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몰아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일단 자신을 정말 먹여주고 ‘살려줄’ 존재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마치 제목의 ‘기생충’대로 모체에 어떤 식으로든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 안에서 ‘인정’이나 ‘배려’는 없습니다. 여러모로 봉준호는 자신의 전작 <괴물>이나 <마더>에서 간접적으로 표출한 ‘가난’의 속성과 표상을 ‘끔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준으로 상징하고, 구현합니다. 최규석이 만화 <울기엔 좀 애매한>에서 드러냈듯, 이제 더 이상 가난의 표상은 누더기 옷이나 거미줄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가난은 체화되어, 신체로 그리고 문화로 드러날 뿐입니다.

허나 작품은 ‘부자’를 보여주고 다시 아무도 몰랐던 상층과 하층의 ‘틈새’를 문자 그대로 보여줄 때 살짝은 미묘할 수도 있을 상황에 놓입니다. 아무리 봐도 이선균-조여정의 행동은 영어를 써주고, 교양있는 ‘것 같은’ 모습을 빼면 (특히 현승민-정현준은) 별로 송강호-장혜진의 가정과 큰 차이가 없어 보여요. 공간의 격차를 드러내는 만큼, 집단의 격차가 애매하게 드러납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긴 합니다. 최소한 비슷한 연결을 시도했던 임상수의 <하녀>(2010)나 <돈의 맛>의 얼척없는 묘사보단 훨씬 낫지만요.

하지만 그 ‘미묘함’을 고려해도 <기생충>의 묘사는 노력한 흔적이 많이 묻어나긴 합니다. 냉정히 말해서 한국의 상층 계급은 사회의 격동 속에서 오래 유지한 사람 자체가 없고, 이선균의 배역은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설정처럼 IT로 부를 얻은 것이 느껴집니다. 조여정이 연기한 어떤 ‘순수함’처럼 그 둘 역시 우연히 부를 얻어 그에 어울리는 공간과 사물을 마련했지만, 그리고 자신이 놓인 위치에 맞는 ‘여유’와 ‘태도’를 선보이려 하지만 쌓여있는 기반의 문화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남들과 다를 수 있을까요. ‘냄새’는 잘 맡을지 몰라도, 결국 먹는 건 갈비찜에 ‘짜파구리’죠. 이 지점의 미묘함이 영화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결정적으로 갈릴 수 있는 지점은 ‘틈새’가 공개되어 밝혀지는 순간이죠. 자신들의 성공을 위해 가차없이 없앤 ‘조연’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들의 계급적 생존 방식을 그대로 형상화한 공간이 드러날 때 어떤 의미로는 ‘전면전’을 선언한 것입니다. 송강호가 맡은 배역 ‘기택’의 가족이 관계망과 언변, 온갖 수작으로 이선균이 맡은 배역 ‘박사장’에 기생하려 했다면 저택이 지어지는 순간부터 가정부였던 ‘문광’(이정은)과 그의 남편 ‘근세’는 정말 공간으로 기생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생존 방식을 안 상황에서 치열한 계급 내 아귀다툼이 발생하고, 그 다툼이 결국 공간을 벗어나 계급 ‘간’을 향할 때 작품은 클라이맥스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정윤석의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2014)가 떠오릅니다. 찬란한 1990년대 뒤 어둠과 균열을 조망한 작품은, 1990년대의 한 축에 ‘지존파 살인사건’이 있음을 말합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린 남성-청년들은 부자를 죽여 10억을 모으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본거지는 전라남도 영광군이라는- 부자들의 활동거처와 너무나도 동떨어진 공간이었죠. 사람은 죽였지만 단 한 명도 부자를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실제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순간을 다시 재현하는 한편, 동시에 우연한 순간과 필연적인 구조의 조합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대신 재현합니다.

그 모습은 봉준호가 그간 분리된 공간 틈새에 벌어진 사건을 선보였던 방식과는 꽤나 결이 다릅니다. 온갖 충돌과 혼란이 발생하지만, 일단 어떤 식으로든 봉합이 됩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균열은 수면 아래로 묻힙니다. 그러나 <기생충>은 이제 더 이상 균열을 메우는 대신, 아예 균열 자체를 확장시키고 폭발하는 길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틈새의 존재를 ‘인정’하자는 선언까지 접어들어요. 마치 <괴물>이 배두나의 불화살로 틈새를 닫고, <설국열차>가 환각 작용이 있는 폭발물질로 어떻게든 균열을 없앴다면 이젠 그 균열 자체를 놓아두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무척이나 상징적이고, 동시에 어떤 이들에게는 호불호를 무척이나 줄 수 있는 요소입니다. 무척이나 스피디하고 서스펜스가 담기며 전개되는 양상이 시각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충격이 상당합니다. (그런 의미로 이 작품이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게 정말 신기합니다.) 동시에 왜 칸이 이 작품에 황금종려상을 줬는지도 알겠어요. 근래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얻은 <디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그리고 <어느 가족>과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이래저래 겹쳐지는 지점이 상당합니다. 충격적이고, 계급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투과하고, 애써 봉합하지 않는. 그 흐름을 봉준호는 자신이 즐겨 쓰던 방식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허나 그 ‘폭발’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상으로, 작품의 내적인 완성이나 이 작품을 볼 관객에게 전달될 흐름까지도 적절히 이어지는지는 또 다른 숙제죠. 봉준호의 세심하며, 광각 촬영과 공간을 활용하는 연출은 수준급입니다. 일종의 ‘계급 간 갈등’을 메인 키워드로, ‘공간의 분리’를 곧 ‘저택 서스펜스’로 이어내는 솜씨도 좋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리플리> - 또는 <태양은 가득히> - 같은 작품에 헌사하는 오마주도 있달까요.) 정재일이 맡은 음악 역시, 그간 나왔던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는 무척이나 높은 수준으로 적재적소에 리듬의 고조를 배열하고, 유려하게 불협화음의 배치를 해냅니다.

그러나 폭발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폭력적 장면이 ‘닫히는’ 효과 대신 ‘열고 찢는’ 식으로 방향성은 바뀌었지만, 그 이후를 메꾸는 방식은 이래저래 연출 역시도 갈피를 잃은 듯한 느낌마저도 들어요. 그 덕분에 황금종려상은 받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변신이나 그 흐름이 결국 관객은 물론 작품을 깊게 보는 이들에게는 여러 숙제를 던집니다. (동시에 이런 작품을, 결국 봉준호의 오랜 파트너인 CJ ENM이 투자/배급한 것도. 이건 어느 나라나 다 똑같이 안 자유롭지만.) 올해 나왔던 한국 영화 중엔 단연 최고지만, 이 작품이 던지는 의미가 과연 얼마나 파급을 미치고 꿰뚫을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상수를 비롯한 유수의 감독들이 계속 이상만 높고 휘청거렸던 현대의 가난과 계급에 대한 묘사를 높은 완성도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사실 역시 분명합니다. 어떤 의미론 한국의 ‘빈곤’에 대한 차가운 기호화 작업인 셈입니다.



추신. 정말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선균이 맡은 '박사장'의 '냄새'에 대한 태도는 여러모로 근래 쏘카-타다 대표이자,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공동창립자였던 이재웅이 떠오르더군요. 한번도 박사장이 IT 관련 뭘 하는지를 안 보여주지만, 태도가 이어지는 모습을 생각하면. 또한 이들이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쉽게 자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그 후과를 드러내는 지점은 마치 '플랫폼 노동'에 대한 아포리아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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