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와 이미지를 통한 상상으로, ‘한국 밖 한국 영화’를 탐사하다
영화평론가 혹은 영화감독 김소영은 2014년 <김 알렉스의 식당 : 안산-타슈겐트>, 그리고 <눈의 마음 :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을 통해 ‘망명 3부작’의 제작을 시작했다. (다만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어도 ‘디아스포라 연작’이라는 말이 좀 더 김소영의 2014년 이후 작품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수식이 아닌가 싶다. <눈의 마음>, <고려 아리랑>, 그리고 <붉은 청춘>으로 대표된 3개의 큰 줄기가 있지만 다시 그 변방이나 옆에서 디아스포라를 기록한 작품들이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다.)
<굿바이 마이 러브 NK : 붉은 청춘>은 본래 2017년 <굿바이 마이 러브, NK>라는 이름으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이자, ‘디아스포라 연작’의 한 종착지이다. 2년의 세월을 거쳐 영화에는 부제가 생겼지만, 부제만 바뀐 것은 아니다. 작품을 구성하는 밀도나 작품을 감싸안는 이미지와 전달법 역시 모두 변화하였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김 알렉스의 식당>/<눈의 마음>을 거쳐 <고려 아리랑>을 지나며 <붉은 청춘>에 닿으면서 점차 구체화되는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한국 밖 한국 영화’를 발견하고 탐사하며 숙고하는 접근의 흐름이다.
‘굿바이 마이 러브 NK(North Korea)’라는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영화가 응시하는 대상은 자신들을 스스로 ‘모스크바 8진(10진)’이라 칭한 망명객들이다. 6.25 전쟁 중 참전으로, 또는 조선영화제작소를 지킨 공훈으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 이들은,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과 8월 종파사건을 거치면서 소련 유학생 사회 내에서 공개적으로 김일성을 비판했다. 그리고 집단적으로 소련 망명을 선언하며 그들의 삶은 무척이나 큰 격동을 맞이하게 되었다.
영화는 이 8인(10인) 중 유일한 생존자인 촬영감독 김종훈, <붉은 청춘> 촬영 중 별세한 영화감독 최국인, 그리고 최국인보다 더 일찍 세상을 떠난 한대용(한진)의 미망인 ‘지나이다 이바노브나’를 중심으로 이들의 역사를 탐색하여 쌓아 올린다. 남한에서 ‘북한’이 금기의 대상이었다면, ‘고려인’을 비롯한 중앙아시아는 몰인식의 영역이었다. 한국 내부에서 ‘모스크바 8진’을 비롯한 ‘한국 밖 한국의 영화 행동’에 대한 인식과 자료가 전무한 가운데, 김소영은 <고려 아리랑>에 이어 다시금 역사의 구술지를 기록하고 담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김소영은 자신의 근래 주목하는 주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모스크바 8진’은 6.25 전쟁에 대한 공훈을 인정받아 소련 유학을 갈 정도였으니 모든 문제에 침묵하거나 순응했다면 북한 사회에서 능히 ‘엘리트’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모든 위험의 촉발과 권리의 포기를 무릅쓰고 체제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며, 자신의 고국 ‘북한’에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망명객’이자 ‘디아스포라’가 되고 말았다.
마치 ‘고려인’이나 ‘재일 한국인’(자이니치)를 비롯한 전세계의 디아스포라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이들 역시 지속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평생 ‘경계’에 머물러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 자신들이 본래 지녔던 언어-문화-습속을 어떤 식으로든 상기하고 되새기려 하지만- 사회 내부에서 크고 작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압박’ 속에서 이들은 좌절을 반복한다. 동시에 이러한 정서는 이들이 추구했던 ‘공산주의’로서, 그리고 이들이 소련에 간 결정적인 연관 요소이자 평생을 함께 배우고 함께한 ‘영화’로서 맥락이 생성되거나 새로운 해석이 가해진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이 영화를 접할 상당수의 관객은 영화 속에 나오는 공산주의-사회주의적인 이념은 물론 소련-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유랑 아닌 유랑을 지속해야 했던 이들의 정서를 ‘상상’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에 도래했다는 지점이다.
감독은 이 간극을 이미 2018년에 공개한 단편 <SFdrome : 주세죽>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레이어’의 겹침을 통한 ‘시각적 상상’으로 넘기를 시도한다.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투명 유리의 파사드 또는 스크린에는 이제는 실존할 수 없는 모스크바 8진의 모습이 비춰진다. 전작에서 통상적인 몽타주로 푸티지를 삽입했던 김소영의 작품은 적극적으로 ‘겹쳐짐’을 강조하는 편집과 앙상블로 발화한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진실성’의 고정관념에 기초한다면 <붉은 청춘>의 몇몇 장면은 ‘트릭’과도 같다. 절대 한 공간-시간-장면이 될 수 없을 시퀀스가 몽타주로 하나가 된다. 그러나 극중에서 최국인 감독이 말하듯, (레닌을 인용하여 말한) “영화는 문화 중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자 ‘상상’과 ‘역사’로 빚어지는 문화의 결과물이다. 다이렉트 시네마-시네마 베리테가 대두하기 이전에도 다큐멘터리는 ‘편집’과 ‘재구성’으로 완성되는 작품이었고, 현장성을 강조한 이후에도 최종적으로 공개되는 영화는 감독과 제작진의 ‘선택적 재구성’의 앙상블을 통해 완성된다.
이미 모든 인식과 역사가 간극 투성이인 상황에서 감독은 이를 과감히 뛰어넘을 것을 서사로는 물론 이미지적으로도 선언한다. 동시에 <김 알렉스의 식당>/<눈의 마음>을 통해 영화를 찍을 당시의 ‘현상’과 사적 에세이의 감각으로 시작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점차 역사를 발굴하고, 잊혀졌던 일대기를 탐사하면서 분명 존재했으나 ‘인지 자체가 되지 않았던’ 시공간을 바라볼 것임을 앞으로 바라볼 것임을 말하는 움직임이다.
한편으로 영화는 직접적으로 냉전 이후 형성된 남-북한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나, 어떤 의미로는 ‘디아스포라’로써 ‘통일’의 문제를 가장 가깝고 적확한 방식으로 말하는, 그리고 ‘영화’를 매개하며 (또는 ‘영화’를 향해 매개하며) 몰인식을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붉은 청춘>은 그러한 사유등을 떠오르고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고민하는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해, 관객으로 하여금 사유를 이끌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