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쇼트>의 시도를 다시 한 번 변용하는 아담 맥케이의 움직임
아담 맥케이에게 <빅 쇼트>는 여러모로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맥케이는 <앵커맨>이나 <텔라데가 나이트> 같은 (블랙 코미디나 레트로 요소가 섞인) 코미디에 능한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빅 쇼트>는 작품에 서린 블랙 코미디의 요소를 더욱 넓게 확장시켜, 시대나 인물 전반으로도 적용시킬 수 있음을 드러낸 증명이었죠. <바이스>는 <빅 쇼트>의 기법을 다시 한 번 활용하며, <빅 쇼트>보다 많이 이전- 또는 바로 직전의 시기를 응시하는 작품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빅 쇼트>의 ‘프리퀄’과도 같습니다.
영화는 제목의 ‘바이스’(vice)가 의미하는 것처럼, 역대 미국 부통령 중에서 가장 악명높고 권한이 강력하기로 유명했던 딕 체니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작품입니다. 동시에 딕 체니가 부통령으로 있던 시기는 곧 조지 W. 부시의 집권기니, 매우 당연하게도 부시는 물론 럼즈펠드도 같이 보게 됩니다. 작품의 전반적인 구성은 <빅 쇼트>의 전략을 큰 틀에서 이어갑니다. 적극적인 나레이션과 푸티지 콜라쥬의 활용, 특정 인물들을 중심적으로 접근하면서 해당 시기를 풀어내는 방법론.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냉소적인 태도까지 <빅 쇼트>를 그대로 가져갑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빅 쇼트>와는 다른 부분들도 눈에 보이죠. 가장 큰 차이는 작품의 전개 양상이 ‘연극적’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올리버 스톤의 <닉슨>이나 조지 W. 부시를 다룬 <W.>처럼, <바이스>의 딕 체니와 부시 역시 희비극의 주인공과 같은 위치에 서있습니다. 아예 직접적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패러디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물론, 대다수의 시퀀스는 두 인물들 사이의 발화로 이뤄져 있습니다.
정치-경제적으로 막강했던 권력자의 이야기를 미시적으로 살펴보는 흐름에 아담 맥케이는 ‘전기물’의 패러디까지 넣어가면서 딕 체니의 권력욕과 부시의 무능이 어디에 근간하는지를 매우 뚜렷하게 바라보려 시도합니다. 이 구성은 다시 <빅 쇼트>에서 간략하게 드러났던, 몇몇 인물들의 특정한 선택이 작게는 ‘리크 게이트’를 비롯한 부시 정권의 무수한 비리들, 크게는 이라크 전쟁-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그리고 오바마-트럼프 당선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이는 ‘나비효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심지어는, 딕 체니 자신의 가족들에게 까지도.)
그리고 그 ‘나비효과’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콜라쥬를 통해서 혼란스러운 일들의 연속에서도 ‘특정한 방향’으로 계속 미국이 치닫고 있음을 미쟝센-몽타주를 통해서 드러냅니다. (심지어는 그 와중에 <시민 케인>에 대한 오마주까지 삽입합니다.) 이렇게 장장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딕 체니가 정치계에 발을 들인 순간 전체를 조망하려는 아담 맥케이의 기획은 얼핏 보기에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딕 체니를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열연은 물론, 조지 W. 부시를 맡은 샘 록웰, 딕 체니의 부인 린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가 꽤나 세밀하게 아담 맥케이가 요구한 ‘희비극적’ 인물의 심리를 잘 표현해주고도 있고요. (특히 샘 록웰은 비중은 적지만, <W.>의 조쉬 브롤린 못지 않은 신체-심리 연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빅 쇼트>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나왔던 비판처럼, 단순히 딕 체니와 조지 W. 부시의 심리적인 기질 때문에 미국이 혼란에 휘말렸냐고 볼 수 있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미시적 행위자를 거시적 책임자로 규정시키는 태도야 할리우드의 오래된 전통이며 아담 맥케이도 이를 스스로 알았던지 부시 전에도 공화당 전반이 미국의 기득권과 결탁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씬을 여러 차례 넣는다거나, 힐러리나 민주당이 이라크 전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고, 막판의 쿠키에서도 재차 셀프 디스를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들 또한 결국 책임자를 체니-부시에서 공화당 전체로, 아니면 미국의 거대 양당으로 옮기며 미시적 분석을 하는 대상을 ‘크게’ 키웠을 뿐 결국 여전히 문제의 책임을 특정한 누군가(들)에게만 전가하려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이스>는 마이클 무어의 신작 <화씨 11/9>와도 비슷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무어가 <화씨 11/9>에서 트럼프를 낳은 것은 결국 오바마-민주당의 책임이 있음을 말하지만, 자본이 맹위를 떨치는 미국의 구조를 말하는 점에서는 어물쩡거렸듯 <바이스>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나 또 역설적인 것은, ‘상업영화 시장’으로 분류되는 곳에서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며 특정한 인물과 시대를 ‘관조’할 수 있는 곳 역시 미국이라는 점 아닐까요. <빅 쇼트> 이후로 한국에서 이를 벤치마킹한 <국가부도의 날>이 원본에 있던 치밀한 상황 분석도, 모두를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시각은 모두 사라지고 ‘성공한 소수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과 노골적인 ‘리버럴 만세’만 남은 채 귀결이 나고 말았습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대상을 응시하는 행위와 실천 역시 결코 쉽지 않고, ‘자본’과 여러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 되어야 함을 <바이스>는 의도치 않게 증명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