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미성년> 단평 : ‘아이’와 ‘어른’의 세계

소소하지만 확실하고, 가볍지만 날카로운 시선의 앙상블

by 성상민

배우 김윤석이 연출에도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때문에 감독과 트러블이 있다는 루머도 여럿 들렸었죠. <미성년>은 배우 김윤석의 첫 연출-각본작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각본은 이보람 작가가 메인으로 김윤석은 공동 집필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시놉시스만 놓고보면 참으로 통속적입니다. 공부 잘하는 이과 고등학생 주리(김혜준)는 우연한 계기로 아버지 대원(김윤석)이 어머니 영주(염정아) 몰래 오리집 사장 미희(김소진)과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보게 됩니다. 헌데 어쩌다 보니 미희의 딸이자 주리와 같은 학교 문과에 다니고, 소위 ‘문제아’로 불리는 윤아(박세진)과 얽히게 되면서 일은 점차 커집니다. 윤아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대원의 불륜을 영주 또한 알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미희는 대원의 아이를 임신한지 오래입니다. 윤아는 자신의 폰으로 ‘낙태 방법’을 찾아보지만, 낙태를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준은 이미 지났습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정말 전형적인 TV 드라마 통속극이죠. 게다가 김윤석이 <타짜>로 스타가 되기 전까지 아침 드라마의 ‘불륜 남편’으로 꾸준하게 나왔던 걸 생각하면, 일종의 셀프 패러디적 요소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서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포커스와 이미지적-서사적 방법론을 변형하며 일반적인 통속과는 조금씩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미성년’이라는 제목처럼, 고등학생 배역인 주리와 윤아는 분명 어떤 점에서는 성급한 면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년’이 낫냐면 그 역시 아닙니다. 윤석은 물론, 김선생(김희원)이나 윤아의 아버지인 박서방(이희준), 미희가 입원한 병원에서 만난 다른 산모의 어머니(염혜란)도 자기 생각만 무심코 밀어붙이고 남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서는 얽매일 요소가 없는 주리와 민주가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작품 속 미성년-성년에 차이가 있다면, 연령에 따라- 처지에 따라 서로 어울리는 ‘사회적-물리적 공간’이 달라질 뿐입니다. 물론 그 공간 역시 균일하지는 않아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주리와 윤아의 집처럼, 그 공간은 ‘계급’으로 분리되고 다시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분리되며 학교 밖에서는 또 다른 ‘위계’들로 끊임없이 분절됩니다. 비록 불미스러운 일로 만나긴 했지만, 이전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면 결코 만날 일이 없을 주리와 영주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조금씩 자신들만의 세계를 열어나갑니다.

동시에 이 변화는 영주-미희로 대표되는 ‘어른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영주는 전형적인 ‘가정주부’고, 미희는 남편이 (아무래도 야반도주로) 사라진 이후 혼자서 윤아도 기르고 집안도 꾸려야 하는 ‘가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허나 사정과 계급은 제각기 달라도 결국 자신들이 주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계속 어딘가에 매여 산다는 지점을 확인할 따름입니다. 그나마 도의에 어긋나도 미희는 대원과의 만남을 통해 잠시나마 일탈을 시도하지만, 정작 일이 터지고 나서는 그조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리와 윤아가 학교라는 공간을 나오면서 유대를 조금씩 형성한다면, 영주와 미희 역시 자신이 속한 ‘가정’이라는 공간를 다시금 바라보는 공통성 아래 조금씩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인 대원은 어떨까요. 사고를 저지른 당사자이니, 역지사지로 자신이 남에게 행했던 일을 그대로 돌려 받는 일만 남았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의 전면에 설 수도 없으며, 일부러 세우지도 않았죠.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대원의 위치는 다른 특별출연급 배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가장’이라는 위치가 매우 허약하고 얇디 얇다는 사실을 드러낼 따름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주리-윤아, 영주-미희가 서로를 만나고 다시 두 그룹이 서로를 인식하며 빚어내는 관계와 충돌의 ‘앙상블’을 통하여 새로운 관계와 존재의식이 생길 수 있음을 넌지시 드러냅니다. 동시에 기존의 굳어진 ‘고정관념’이나 ‘허위의식’이 어떻게 자신의 허약한 정체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제시합니다.

물론 그 제시가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습니다. ‘불륜’이라는 사건이 메인이긴 하지만, 오히려 작품은 마치 실제 현실에서 쉽게 마구 화를 날 수 없는 것처럼 심리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때로는 은유적으로, 다시 때로는 소소하게 드러내며 작중에서 드러나는 일들이 일종의 ‘편린’일 수 있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인물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변화를 맞이할 때는 확실하게 드러내며 이야기의 맥락을 희석시키지도 않습니다. 소품이지만 분명 자극은 있고, 그러나 노골적이지는 않은 방식으로 포인트를 가다듬는 셈이죠.

동시에 작품은 나이라는 요소, 사회적 지위라는 요소, 기타 눈에 드러나지 않은 위계로 각 배우의 설정을 만들어 배우들이 지니는 힘으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서사와 이미지의 긴장은 마치 연극을 연상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영화만이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재치도 돋보입니다.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만, 도리어 그러기에 장르에 대한 이해가 돋보이는 데뷔작이 작가와 배우들의 협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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