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강변호텔> 단평 : 공간과 환대의 문제

꾸준하게 변하는 홍상수의 작품, 사적과 공적인 공간과 이미지를 잇다

by 성상민

홍상수 <강변호텔> 단평.

<밤의 해변에서 혼자> - <클레어의 카메라>를 기점으로 홍상수는 <북촌방향> 이후 또 다시 변화의 기로를 걸어간다. 계속 미니멀리즘한 카메라 패닝만을 고집한 홍상수의 2010년대 작품은 <풀잎들>에 이르러 더욱 복잡해졌고, 은유의 방식은 더욱 전면으로 드러난다.

<강변호텔>은 <풀잎들>에서 본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던 홍상수가 여전히 변화하는 중임을 드러낸다. 자신의 속마음을 내밀하게 드러나는 화자를 계속 한 명으로 유지했던 것과 달리 작품의 화자는 두 명 (기주봉, 김민희) 으로 늘어났으며, 카메라의 움직임에는 감정이 더욱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서사적으로, 또는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두 집단에 속한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와 맥락을 통해 매우 전면적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부족함을 모른채 낯부끄러운 삶을 살던 이들도, 자신을 겉으로 꺼내기를 두려워하던 이들도 '어떻게든' 살아갔던 전작들과 달리 작품은 시놉시스는 물론 시작 지점에서부터 '죽음'을 말하고, 이러한 선언이 낳은 음습한 이미지는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또한 그 이미지는 작품의 두 화자인 시인 도영환(기주봉)과 젊은 여인 상희(김민희)에게 모두 드리워있다. 하지만 이 '마이너스'의 심리는 호텔 객실의 '안과 밖'이라는 시각의 이미지를 통해, 다시 두 인물이 머무는 호텔에 찾아오는 이들이 만드는 서사적인 심상을 통해 서로 다른 층위로 이어진다. 영환은 자신을 찾아온 두 아들 경수(권해효)와 병수(유준상)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호텔 로비의 카페에서 만날 것을 요구한다. 반면 상희는 자신을 걱정해서 찾아온 아는 언니 연주(송선미)를 선선히 자신의 방으로 부른다.

이러한 두 화자의 상반된 차이는 둘을 찾아온 인물에도 이어진다. 경수와 병수는 영환이 같은 카페의 바로 앞에 있음에도 전혀 알지 못하고, 영환이 이 둘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제야 만남이 시작된다. 동시에 영환을 만나기 전의 대화도, 만나고 난 후의 이야기도 무척이나 삶에 찌들어 있는 이야기의 연속일 뿐 영환이 어떠한 심리를 갖고 있는지는 작품이 끝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전혀 시도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연주와 상희는 처음 보는 순간에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호텔 밖을 산책하고, 저녁을 먹으러 순두부집에 방문한 순간을 제외하면 이들은 말을 아낀 채 한 방에서 서로를 보듬어 안아주고, 한 침대에서 휴식의 순간을 같이 맞이하며 위로와 환대를 이어나간다. 영환은 연주와 상희가 함께 있는 모습을 스스로 파악하여 다가가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 하지만 이미 그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또는, 애시당초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음을 미리 선언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hotel이 본래 hospital과 함께 '환대'를 뜻하는 라틴어 hospitalis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환대의 공간이 되어야 할 '호텔'에서 역설적으로 영환-병수/경수는 호텔 로비에서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세 인물 사이의 환대는 발생하지 않는다. 영환은 '프라이버시'의 공간에 계속 침잠해있길 원하지만 오로지 연주-상희를 만나는 순간에서만 '환대'를 느낀다. 물론 후반부 영환-병수/경수의 대화에서도 드러나듯이, 세 부자 사이의 환대를 없앤 것은 역설적으로 영환의 '자유 의지적' 행동이 원인일 수도 있다.

이와 달리 연주에게는 자신의 사적인 공간이 곧 공적인 환대의 공간이 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영환을 만나 사인을 받으려는 상희를 연주가 먼저 제지할 정도로, 연주는 영환과 달리 타인을 만나는 것에 신중한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사소한 태도와 입장, 이미지의 차이는 결국 막판에 이르러서 쉽게 예상할 수 어려운 파국을 낳는 중대한 계기가 된다. 마치 <풀잎들>에서 김민희가 맡았던 배역인 '아름'이 같은 카페에 있으면서도 전반부까지 어떻게든 개인의 사적 공간에 갇혀 있고, 외부에 멀찍이 떨어져 카페를 방문하는 이들을 평하는 관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던 것을 생각하면 <강변호텔>은 공간의 문제를 더욱 확장시키는 시도인 셈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홍상수의 지난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나 심리를 반영한 작품으로써 <강변호텔>을 말하고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함의는 무수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작품을 말한다면 <강변호텔>은 '또 다른 변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홍상수의 지난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자신이- 또는 자신 주변에서 봤던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이를 꾸준한 리듬과 일정한 톤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고유의 규칙을 쉽게 형성하지 못하는 근래의 한국 영화에서 몇 안 되게 '자신의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점에서는 '세련된 자기 변명'이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변명'조차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근래 한국 영화의 '작품'과 '개인-집단(들)'과 달리 어떤 식으로든 정결한 '항변' 또는 '자기 고백'을 모색하는 행위인 셈이다.

추신. <풀잎들>에서도 함의는 있었지만, <강변호텔>에서 영환과 상희로 대표되는 두 집단의 차이는 '젠더'적인 차원에서 읽어낼 수 있을 여지가 충분하다. 공적으로 열려있는 공간에서 만나지만 끝까지 환대가 일어나지 않는 남자들과 사적-개인적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환대가 이뤄지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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