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필 <어스> 단평 : 단단한 공포 위에 쌓은 현실

적절하고 분명한 은유, 장르를 놓치지 않은 설계

by 성상민

*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조던 필의 전작 <겟 아웃>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데뷔작이었습니다. 기존 장르의 습속을 한 번 뒤틀고, 그러면서도 호러 장르 특유의 장르 관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다시 그렇게 쌓은 기반 위에 미국의 현실을 제시합니다. <어스> 역시 <겟 아웃>과 비슷한 길을 갑니다. 기본적으로 <어스>가 비꼬는 것은 소위 ‘휴가철 홈 드라마’ 류의 이야기입니다. 가족끼리 휴가를 가고, 그 곳에서 가끔 트러블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시덥지 않은 개그 시퀀스가 터지고, 어찌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화해가 성립하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휴양지이지 해변 ‘산타 크루즈’가 무대니 이보다 더 적절한 무대가 있나요.


하지만 휴가지 별장을 무대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어스>는 영화의 전면으로 또 다른 호러의 장르를 대입하기 시작합니다. 널리 통용되는 명칭은 없지만, 소위 ‘저택 습격물’이라 불리우는 영화죠. 마치 근래 나온 <더 퍼지>나 <노크 : 낯선 자들의 방문>, 또는 하네케의 <퍼니 게임> 같이 영문을 모르는 이들이 갑작스럽게 저택에 쳐들어와 가족들을 습격하는 영화들 말입니다. 낯선 사람들이 집에 친입하는 것도 무서운데, 심지어는 그 존재들의 모습이 자신들의 ‘도플갱어’입니다. 수북히 깔아둔 장르의 컨벤션을 감독은 능숙하게 활용하고, 주인공들이 지닌 개별적인 설정과 복선을 통하여 몰입도가 높은 호러적인 시퀀스를 선사합니다.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관객들을 조여오는 것이죠. 게다가 관객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조차 제한적이니, 관객들은 더욱 몸서리칠 수 밖에 없습니다. 장르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잘 이뤄지는 점이 좋아요.


이렇게 깔아올린 호러의 위에 감독이 제시하는 것은 <겟 아웃>에 이어 다시 한 번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적인 현실과 뒤틀린 실상입니다. 마치 <겟 아웃>에서 브루클린을 떠나 여주인공이 사는 시골 지역으로 가는 순간 흑인을 쉽게 찾아볼 수 없던 것처럼, <어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루피타 뇽, 윈스턴 듀크 등이 맡은 주인공 가족을 제외하면 산타 크루즈에 있는 모든 이들은 다 백인입니다. 물론 <겟 아웃>이 그랬듯 겉으로는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인종 사이에 친근함이 가득하고 격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속내 역시 그럴까요. 물론 사람들의 속내를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연출적인 상상력으로 현실 사회에 넘치는 혐오와 울분, 억울함과 같은 내밀한 감정을 쉽게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어스>의 진정한 공포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친절하고 사이 좋은 사람들 뒤에 ‘이면’이 존재하고 (동시에 그 ‘이면’은 개인 뿐만 아니라 ‘집단’ 자체로도 존재합니다.) 그 이면이 수면 위로 드러나 ‘습격’하는 순간, 어떤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는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겟 아웃>에서도 분명히 묘사하듯, 흑인의 문화와 백인의 문화는 뚜렷한 인종적 역사에 근원하며 차이를 이루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도플갱어들이 차례차례 사라지는 모습들은 정말 노골적으로 미국 흑인에게 가해진 집단적 린치의 광경을 드러내죠. 인종이 다른 상황에서 즐기는 문화도, 인식하는 방향도 모두 달라집니다. 이런 부분들이 스멀스멀 드러나는 지점이 <겟 아웃> 처럼 불편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이는 씁쓸하지만 현실에서 인종별로/문화권별로 주거지역이, 교육구역이, 다시 온갖 사회적 시스템이 분리된 미국-서구 도시 사회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어스>는 <겟 아웃>에 이어 인종 간의 ‘간극’을 드러내는 것에 이어, 계급과 정치의 문제까지 영화 위에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겟 아웃>이 ‘정신적인 습득’을 현실과 호러로 연결하는 매개체로 삼았다면, <어스>는 ‘위-아래/빛-어둠으로 분리’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매개체입니다. 동시에 빨강과 파랑으로 드러나기도 하죠. 미국 정치를 접하다보면 무조건 외우게 되는 그 상징색 말입니다. 이제는 한국도 같은 색이네요. 아래는 위를, 어둠은 빛을 원하고 오랫동안 억압된 상황에서 욕구는 폭력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를 누군가는 ‘민중 저항’이라 부를 수도 있고, 실제로도 ‘민중’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들이 공격하는 방향은 위-아래로 자신들을 나눈 이들을 향하지 않고, ‘악덕’하게 보이는 것들을 향한다는 것이죠. 마차 흑인을 악하게 여기는 과거의 사고나, 지금도 쉽게 ‘우범 인종’으로 취급하는 현실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어스>는 두 개의 축으로 구축된 미국 사회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근래 나온 한국 영화들 마냥 우겨놓는 것도 아니며, 아무런 감수성도 갖추지 못한채 주입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호러 장르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진 변용된 장르 컨벤션 위에 장르적으로도 몰입을 주고, 더 곱씹어 생각하면 더욱 무서워지는 지점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루피타 뇽, 윈스턴 듀크, 엘리자베스 모스를 비롯한 관록 있는 배우들이 결코 쉽지 않은 ‘이중’적이며 ‘상반’된 연기를 통하여 멋드러지게 구현합니다. 그렇게 세심하게 설계한 영화 속에서, 영화 내적인 호러와 외적인 끔찍함이 서로 조우하며 관객을 습격하는 영화가 바로 <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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