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단평 : 통속의 정치극

신체와 권력의 알레고리로 영국의 18세기를 응시하다

by 성상민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필모그래피를 요약하자면 시니컬한 신체의 알레고리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에서 찍었던 <키네타>나 <송곳니>가 꽤나 거친 방식으로 신체를 통해 그리스의 권력 구도를 비유했다면, <더 랍스터>와 <킬링 디어>(성스러운 사슴의 죽음)은 신화에 근간을 둔 알레고리를 통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구도를 짚어냈습니다. <더 페이버릿>은 이러한 시도를 18세기 초 영국 앤 여왕 집권 말기로 옮겨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당대 시대상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부재하지만 (영국 왕실에서 ‘페이버릿’이 뜻하는 의미나 실제 인물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블로그 포스팅이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http://deedsandwords.postype.com/post/3090254​) 그래도 대략적인 시대적 분위기는 유추가 가능합니다. 영국의 ‘왕’이라는 상징은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이미 권력의 핵심은 의회로 넘어가고 있고, 그러나 여전히 ‘왕’이라는 기표를 손에 넣지 않으면 쉽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앤 여왕은 아버지 제임스 2세와 의회의 충돌에서 의회의 편을 든 인물이죠.)


<더 페이버릿>은 서서히 권력의 상징과 실질적 내용이 점차 미끄러지는 상황에서 여왕의 ‘페이버릿’을 주무대로 알레고리를 시도합니다. 노쇠하고 통풍으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는 앤 여왕은 감정 기복이 잦고, 그로 인해 그녀는 직접적인 신체적 자극을 원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라’(레이첼 와이즈)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화술로 앤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사라의 사촌이지만 가문이 몰락하며 하녀가 된 ‘아비게일’(엠마 스톤)은 철저하게 앤의 몸과 마음을 맞춰주면서 신뢰를 얻어갑니다. 그 안에서 영국의 대내-대외적 환경도 점차 요동치고 세 사람의 사적인 관계는 영국의 공적인 흐름으로 서서히 전이되기 시작하죠.

영화는 극중에서 토리-휘그의 정쟁이나 식민지를 놓고 벌어지던 ‘앤 여왕의 전쟁’을 그리지만 그 비중은 결코 높지 않습니다. 대신 여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광대의 여흥이나 성적 유희를 통해 당장의 쾌감에 격렬히 빠져드는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내며 권력구조가 개인-신체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전면으로 드러냅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앤-사라-아비게일 사이의 관계는 ‘사랑’을 놓고 벌어지는 통속적인 갈등의 관계지만 역설적으로 그 사랑은 ‘권력’이 있을 때만 작동합니다. 신체와 자극에 대한 욕망이 ‘왕과 신하’라는 수직적 권력 구도에서 또 다른 권력을 만들고, 이는 곧 영국에서 왕의 존재가 점차 ‘상징’으로 퇴색하는 시기와 맞물리며 복합적인 양상을 만듭니다.

이러한 구도를 담아내는 촬영 역시 광각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인물과 공간을 분리시킵니다. 일반적인 시대극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는 극도의 광각 촬영은 상을 넓게 왜곡시키고, 왜곡된 이미지에서 화려한 궁정의 모습은 결코 개인과 융화되지 않습니다. 권력의 상층부에 있지만 이미 서서히 핵심에서 멀어지는, 그러나 여전히 ‘상징의 표식’을 지닌 이들의 군상은 그렇게 강조됩니다.

‘여왕’이라는 존재를 권력을 지녔지만 역설적으로 권력에서 멀어지는 상황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슷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의도적으로 시대를 어긋나게 짜맞추는 방식으로 모더니즘적 주체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입시켰다면 <더 페이버릿>은 최소한의 역사적 고증을 유지하며 신체와 신체 사이로 벌어지는 관계성에 천착하며 알레고리적 접근을 시도하며 권력을 관조합니다. 마치 <송곳니>를 18세기 영국에 옮겨 세련되게 다시 찍은 느낌 같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란티모스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던 신체-권력의 관계성에, ‘퀴어적 욕망’의 구도를 다시 뒤틀린 권력에 대입하며 당대의 시대상은 물론 권력의 모순을 깊이 있게 은유하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통속을 통속으로 바라보면서도, 통속이 갖는 맥락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추신. 최고 권력자와 그의 측근이 동성애적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는 유하의 <쌍화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더 페이버릿>은 더욱 깊게 파고들며 개인과 구조의 속성을 파헤쳤다면, <쌍화점>은 자극적인 척만 하다 게으르게 접근하며 무너졌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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