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를 잘 이해한 자가 선보일 수 있는 클리셰의 파괴
장재현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한국 상업 영화에서 ‘오컬트’를 잘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히 ‘사이비 종교’가 등장한다고 자연스레 오컬트가 되는 건 아니죠. 종교적 표현과 심상에 대한 이해와 종교적인 초자연 현상이 ‘인간 세계’에 현현하고 작동하며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 표현될 때 오컬트는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용주의 <불신지옥>이 그간 한국에서 나왔던 영화 중에서는 좀 더 오컬트에 가까운 작품이었지만, 냉정히 말하면 분위기 형성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특정 장르를 추구하는 영화는 나오지만, 장르적 컨벤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품들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장재현은 독특한 면모가 있는 감독입니다. 단편 <버스>에서 캐릭터의 심리적인 양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역량을 보였다면, <12번째 보조 사제>는 이 감각을 ‘엑소시즘’에 결합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단편을 바탕으로 장편에 확장시킨 <검은 사제들>은 꽤나 오소독스한 스타일로 천주교-엑소시즘 기반의 완결된 오컬트극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바하>는 전작에서 드러낸 오컬트의 감각을 종교적으로는 물론, 표현적으로도 확장하는 시도입니다. <사바하>에서도 오컬트의 베이스는 ‘크리스트교’이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불교 (특히 밀교 계열) 에 근간한 종교적 요소들이 이 위에 다시 더해집니다. 게다가 잘 보고 있으면 서구권 창작물에서 흔하게 나올 법한 장르 컨벤션 요소들이 극에 계속 등장합니다. 이제는 미국 소프 오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사악한 쌍둥이’라거나 ‘경이로운 티베트 불교’같은 소재나, 종교적 신념을 기반으로 한 살인, 특히 크라이스트-안티크라이스트의 대립 구도 등등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불교적 세계관이 혼합된 모호함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초중반의 흐름은 다소 막막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로 이어질 것만 같은 두 개 (또는 세 개)의 축이 나오지만, 이 축은 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종교적으로 불경한 이미지나 사악한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표출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의 행동은 꽤나 경건합니다. (오히려 이단 추적 전문 ‘박목사’로 나오는 이정재의 이미지가 무척이나 속물적으로 그려지죠.) 새로운 설정이 끊임없이 쏟아지지만, ‘사천왕’ 같은 불교적 요소에 대해 ‘해안스님’(진선규)의 설명이 중반에 등장하는 것을 빼면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중반을 넘기 시작하면 확실해 보였던 선과 악의 구도가 점점 모호해지기 시작합니다. 경계선이 매우 흐릿해지는 시기에서 서로 별개로 보였던 축들은 한 지점에서 조우하고, 그 곳에서 클라이맥스가 발생합니다. (사실 만났다고 말하기엔, 여전히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잘 모릅니다.)
<검은 사제들>이 한국 관객에게도 <엑소시스트>로 익숙한 가톨릭의 구마 의식을 바탕에 까며 일직선으로 오컬트적인 요소을 흘려갔다면, <사바하>는 의도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을 상정하면서 오컬트를 드러냅니다. 당연히 ‘오컬트 영화’니 초자연적인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오컬트적인 요소을 기반에 둔 이미지가 위에 흘러도 영화의 전개는 이러한 요소까지도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종교적 설정이 차츰 영화 내부에 쌓일 수록,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흐름인지는 관객은 물론 영화 속 등장인물도 알 수 없게 흐릅니다.
그러기에 영화는 오컬트적인 관습을 그득히 담아 표현하면서도 그 외부를 계속 응시하고, 결국 절정에 이르러서는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제시한 요소를 꼬아내며 뒤집어내는 행로를 택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믿음’ 그 자체의 모순과 불확실함을 그렸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셈입니다. 결국 ‘오컬트’가 초자연적 현상이 거짓이 아니라 실제로 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영화 내부의 서사와 이미지, 맥락을 토대로 구현하는 장르임을 생각하면 장재현은 장르의 성립 요소 자체를 핵심 축으로 활용하며 오컬트에 충실하면서도 또 다른 길을 걸어가려 한 시도이죠.
물론 이러한 시도가 쉬운 것은 아니고, <사바하>도 초중반의 빌드업에서는 분위기의 충돌과 설정의 나열을 잘 조율하지 못해 삐끗거리는 지점이 상당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그간 제작된 오컬트 작품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지점을 ‘당연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당연하지 않을’ 이면의 요소를 모두 함께 바라보려는 시도는 상당히 흥미롭고, 흥미로운 미스터리 스릴러를 보는 듯한 여운을 남깁니다. 진지하게 오컬트를 파고드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참신한 클리셰 파괴의 오컬트가 나왔네요.
추신. <사바하>가 장르 외적인 요소에서 균질하게 유지하려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캐릭터의 행동이 의도적인 감정 자극을 최대한 절제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한국 상업 영화 특유의 울분과 고함이 드러나는 장면이 정말 적습니다.
추신2. 한동안 작품 활동을 쉬다,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문숙이 짧지만 인상적인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사바하> 후속을 위해 남겨둔 팻말 같기도 하고, 기이하면서도 경건한 모순을 어떤 순간에서는 유지태보다도 더욱 잘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