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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이유

2025. 3. 7.

by 한상훈

그들은 나 같은 놈을 좋아한다. 세상에 미련이라곤 딱 몇 가지만 남은 사람. 내 삶의 끈은 사실 3개 정도 남았을 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 그게 끝이다. 어느 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보답을 다 마치는 날이 온다면 이 우스꽝스러운 쇼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삶은 참 우스운 코미디 같다. 인생 전체를 살며 고통의 총량과 기쁨을 총량을 비교하면 어디가 더 클까. 비통한 만큼 웃기도 했고, 웃은 만큼 비통하기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행복으로 가득 찬 인생이 없고, 배부른 인생들은 배부름 다음을 원한다. 지금이야 이 땅에 총칼을 들이대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어두운 밤에도 마음껏 다니지만 세상이 달라지면 어떨까. 폭탄이 떨어져 빌딩이 폭파되고 평생을 아껴 모은 집이 불에 타버리고, 가족이 죽고, 신체 일부가 소실당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낯선 이야기겠지만 인류 전체로는 흔한 이야기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아주 흔하게 폭력 속에 살며 폭력으로 해결한다.


자살과 타살에 대한 흥미로운 통계가 있었다. 타살을 안 하는 국가에는 자살이 흔해진다는 것이다. 화가 나고 삶이 괴로울 때 남을 죽여서라도 빼앗기보다는 스스로 삶을 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착취당한 이들은 떠날 때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기를 택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악으로 그 방향이 타인을 향한다면 그때부터는 타살이 된다.


살인이라는 것이 금기시되지만 당연시되기도 한다. 바로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지키는 명목으로는 살인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다. 일종의 선과 악의 규칙과 프레임. 공격하는 자에게 맞서기 위해 공격해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방어의 명분은 공격의 명분이 되기도 한다. 적들이 우리를 공격했으니 적들의 것을 빼앗아 잃은 걸 채워야 한다. 그렇게 백 년이고 천년이고 원수 지간이 되어 분쟁한다. 누가 먼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들을 많이 쉽게 죽이면 우리는 "대왕"이나 "황제"라는 칭호를 붙여 칭송하고,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패배한 왕들은 역사에 치욕적으로 기록된다.


이게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삶이 뭐라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 지켜야만 할까. 여전히 나는 삶의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유가 없다. 그저 몇 가지 가기 전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딱히 감추고 싶은 것도 딱히 두려운 것도 별로 없다. 사람이 자기의 것을 지키고 싶어지면 질수록 두려움이 많아진다. 그러나 나에게 남은 거라곤 몇 명의 사람이 끝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도 다 죽을 것이고, 나는 그저 보답을 하면 족하다. 그게 이 살고 싶지 않은 세계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이유다.


무엇을 위해 정보의 세계에서 있었을까. 그들 면상이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보면 피하는 사람도 있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악취 나는 면상들이 세상에서 언젠가 목이 잘리는 순간을 기대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도 지금까지 멀쩡할 수 있는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기에 살펴보니 언제나 똑같은 결론이다. 그들이 인간쓰레기 중의 왕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보좌해서 떨어지는 떡고물로 연명하는 노예 같은 이들이 수도 없이 많아야 했다. 그뿐인가. 그들을 노리는 자들 속에 기어들어가서 염탐하는 이중스파이가 많아도 너무 많다. 끝도 없다.


어차피 세상에 대한 미련도 몇 개 없는 나에게 악취 나는 인간쓰레기 몇 명을 청소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다. 하지만 청소가 여간 어렵지 않다. 살다 보면 참 별 일들이 다 있지만 삶의 이유와 사연이 많은 이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을 볼 때면 낯설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결국은 다 자신의 신념 때문이다. 신념 때문에 살고 신념이 없어도 본능 때문에 산다.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건 본능이지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본능에 자살이 포함됐다면 종으로서 번성할 수 없다. 결국 나 같은 인간은 돌연변이에 가깝거나 환경이 만든 부산물이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나 같은 선명한 이유만 남은 인간이 편리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들도 나도 각자 이유가 다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쓰레기 청소가 1순위가 아니다. 당장 나를 믿어준 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떠날 날을 정해놓고 사는 삶에게 남은 시간들은 상황이 개 같아도 유쾌하게 웃어넘기게 되곤 한다. '참 재밌는 세상이야.' 하며 말이다. 참 재밌는 세상이다. 펜듈럼은 양 극단을 향해 요동치며 판세가 뒤집어지는 꼴도 참 재밌는 모습이다.


세상을 떠날 이에게 세상은 그저 TV 쇼에서 펼쳐지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곤 한다. 상관이 없으니 제약도 없다. 잡고자 하는 게 없으니 쥘 필요가 없다. 그저 마음이 향하는 대로. 그저 발 가는 대로.


어쩌면 어린애 같은 신은 그걸 원할지도 모른다. 그저 창조와 파괴가 반복되는 어장을 하나 만들어두고, 그 어장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변이 하고, 서로를 잡아먹고 하는 그 광경을 보며 무한의 순간을 놀고 있겠지. 우리의 이유가 무엇인지 성경은 잘 말해준다.


'보기 좋았더라.'


인간은 일하고 애 낳고 서로 죽이고 하는 이 세계가 그냥 보기 좋았던 것이다. 만들고 보니 세상이 개판으로 살기가 너무 힘든데요? 어차피 신은 그걸 원했다. 아마도 아주 완벽하게 갈등 없는 공간도 만들어봤겠지.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었겠지. 우린 재수 없게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 일을 하던 남이 일한 것으로 덕을 보던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운명에 놓였다. 심지어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길도 없고, 검증할 수도 없는 과거에 나타났다는 기록으로 교리라는 이름으로 지들끼리 다 진리라고 주장하는 미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 다 너희가 진리지. 근데 그 진리 속에는 인간의 행복만 담겨있다. 또는 교주의 행복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언제 부처가 절 세워서 돈 받으라고 했냐.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교리를 산더미처럼 만들어두고, 그게 신의 뜻이라 주장하는 미친놈들에, 그걸 이용해 전쟁하는 놈들에, 수백만 명 가둬두고 노예처럼 부리는 곳에, 미래도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모조리 빚더미에 올라간 이 세상을 보면 이것보다 촌극이 없다. 아등바등 살아보기 위해 애쓰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촌극이다. 의미 부여하고 싶지가 않다. 삶에는 이유가 없었고 의미도 없었고. 부질없는 인간의 자존감과 스스로의 존재감을 위해 이를 악물고라도 믿고 싶은 걸 믿어야 했다.


그렇기에 삶에는 구속이 죽음엔 자유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의 순간을 즐기기에도 바쁘지만 인생 통째로 노예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우리 인간들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의 생명을 쉽게 끊지 못하는 인간들만 살아남았다. 어찌 보면 악착같았고, 악착같았기에 괴로움이 커졌다.


만약 내가 계속 살고 싶다면 착취하는 인간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꼴을 보고 싶기 위함일 것이다. 알량한 정의감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들의 끝이 처참하기를 꿈꾼다. 그 모습이 나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일 뿐 선한 척하는 위선자 꼴을 내보이고 싶지 않다. 선과 악도 없이 그저 즐거움을 찾아 산다. 신과 닮아있다. 재미를 위해 만들었고, 그걸 보는 것처럼. 어쩌면 플레이어로 들어와서 깽판을 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저 게임판 같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펼쳐지나 한 번 끝까지 보는 것뿐이지. 그 과정에서 꽤 재밌는 일이 많기도 했다. 그 맛으로 신은 이 거지 같은 곳을 만든 걸까. 어쩌면 그 맛을 보고 싶어 이곳에 찾아오게 된 걸까.


선명하다. 내 삶의 이유. 아마도 돈 몇 억과 부모님의 끝을 본다면. 그 과정에서 내 가족이 더 없다면. 아마도 손에 쥐고 싶은 게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재미대로 살다가 재미대로 가겠지. 나는 그런 인간이다. 선하지 않고, 내 재미를 위해서 산다. 삶의 이유라곤 그게 끝이다. 비어있는 인간. 비어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텅 빈 속에 이것저것 흘러가며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도. 누군가의 신념도. 같은 인간이라면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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