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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P의 죽음

2025. 3. 9.

by 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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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었다. 권력 순위로 치면 몇 등쯤 될까. 그날 그는 자살했다.


지난 몇 년을 쭉 보면 알 수 있듯 주변에 이상한 사망이 너무도 많았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죽음이 비일비재했다. 사망 징후가 전혀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이 발생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자살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 여러 형태의 징후가 포착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실제적인 계획을 수립했는지, 계획을 했다면 시도를 해봤는지 등으로 위험도를 판단한다.


109에 전화를 해본 사람들은 별로 없겠지만 나는 해봤다. 109는 자살 방지를 위한 상담 센터다. 전화를 걸면 여느 공기관답게 거지 같은 대기음이 나타나고, 자살하려는 사람보다 더 슬퍼 보이는 목소리의 상담원과 연결된다. 상담원분들은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될 정도다. 자살의 문턱까지 온 사람들을 응대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밝아서도 안되고, 너무 저조해도 안되고, 너무 극단적이어서도 안 되는.


자살에는 순서가 있기 때문에 상담원 분들은 질문을 통해 조심스럽게 현재 진행도를 판단한다. 그리고 정말 위험한 경우에는 사람들이 파견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살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고 단계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런데 권력 순위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사람들이 자살이 일어나고, 징후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살이 아닌 타살이 일어났다는 점이고 타살임에도 행동으로 자살을 유도했다면 더욱 위험한 배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권력자의 약점을 누군가가 쥐고 협박을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권력자는 하루아침에 벌벌 떨면서 '자살해야겠다!' 이렇게 판단할까? 자신은 권력자다. 즉 있던 사건도 없던 사건으로 만들 수 있고, 자신을 수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외압을 넣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권력자는 혼자 힘만으로 권력이 생긴 게 아니다. 특정 권력자가 권력을 얻어야 도움을 얻는 수많은 스폰서가 뒤에 있기에 권력자의 권력이 위태로워지면 스폰서의 도움을 받아 위협을 제거한다. 그것이 권력자가 무소불위의 권력 위에 있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강력한 권력자가 하루아침에 전화 한 통, 문자 한 두 개로 자살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상식적이지 않다. 위협에 의한 자살. 즉 타살이고, 타살의 과정에서 무기로 쓰인 정보가 있었을 것이며 그 정보의 위력 또는 그 위협을 가한 인물과의 대상의 관계를 살펴봤을 때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인물이어야만 죽음을 택하게 된다. 그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깽판이라도 치고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회유를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협박 한 번 받았다고 죽는가. 협박 대상자와 협상을 시도하건 대척하건 하는 것이 방법이다. 그런 시도도 안 하고 "그냥 제가 죽을게요." 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어떻게 쉽게 일어나는가.


그렇기에 이 죽음은 멈췄던 내 삶의 궁금증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맨 뒤에 있길래 전화 한 번으로 말 한마디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가진 인물을 자살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 어떤 구조로 그들의 권력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며 거래했던 인물은 누구인가. 그렇게 나는 그저 그 새끼 면상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사람들을 앞에 세워두고 가장 뒤에 숨어 모든 것을 지시하던 놈의 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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