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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NULL

2025. 3. 16.

by 한상훈
Protection · Massive Attack · Tracey Thorn


내 첫 번째 회사는 루아흐였다.

바람이라는 이름의 성령과 신을 뜻하는 단어다.


두 번째 회사는 에어데스크였다.

가벼움을 뜻하는 에어와 데스크톱처럼 웹을 쓰게 하겠다는 의미로 만든 제품 이름이었다.


세 번째 회사는 플렉스웹이었다.

모든 뷰포트에 대하여 반응형 디자인이 포함된 제품을 만들겠다는 게 이유였다.


네 번째 회사는 현재 운영 중인 널이다.

NULL은 컴퓨터 용어로 데이터가 비어있는 상태를 뜻한다. 정의되지 않은 undefined와 다르게 없다는 상태를 명시적으로 사용할 때 사용한다. 비어있는 상태. 0과 1로 이뤄진 세계에서 0을 뜻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등록된 이름은 NULL로 해도 됐지만 기업이기에 NULL ENTERPRISE로 짓게 됐다. 유한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PTE. LTD. 도 포함되어 최종적으로 NULL ENTERPRISE PTE. LTD. 가 된 셈이다.


작년 5월쯤 널을 창업하고 이제 1년이 거의 채워져 간다. 그동안 널에서 진행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널 파이낸스. 널 파이낸스는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수십 개의 탈중앙 거래소의 최적화 거래 경로를 제안해 대량 거래 시에는 가격의 미끄러짐인 슬리피지를 최소화하고, 지원되지 않는 토큰 스왑도 찾아내서 처리해 준다.


이를 덱스 어그리게이터(DEX Aggregator)라 부르며 널 파이낸스는 그렇게 출발했다.



크립토 제품을 만들면서 나는 자본주의의 심각한 결함을 계속 생각하게 됐다. 부는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 가난한 자에게서 부한 자로. 유동성이 크게 풀릴수록 빈부격차는 급물살을 탄다. 모든 자본은 이제 더 큰 자본으로 흐르고 그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평가자산이 형성된다. 평가자산은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레버리지를 창조한다. 창조된 레버리지는 회수되기 힘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유동성을 창출한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유동성은 경제가 나아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결과적으로 붕괴한다.


어찌 보면 지난 수십 년의 금융은 창조와 파괴가 반복된 흔한 파괴적 혁신이었다 말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비판하는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는 윤리적 측면에서 탄생된 게 아닌 우리가 만든 시스템의 부산물이라 보는 게 더 적합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바꿔야 하는 것은 개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적 잣대가 아닌 시스템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해 작년 8월부터 2달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부의 방향성이 역전될 수 있는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침몰해 가는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물론 내가 뭐라고 이런 거시 경제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냐 반문할 수 있으나 나는 사업 가면서 엔지니어이기에 기술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PoL(Proof of Location)을 바탕으로 지구의 모든 지역에서 동등한 부의 분배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동시에 이 과정에서 Node validator 역할을 인공위성의 GPS 시스템이 아닌 인스턴스 간의 핑 레이턴시를 적용할 방법을 고민했다.


물론 그 방법은 나 혼자서만 고민했고 찾아낸 답이 아니다. EigenLayer의 산하에 팀과 연락해 PoL 연구팀과 블록체인 팀들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의 차이는 존재했다. 그들은 인공위성에 비의존적인 위치 검증 시스템을 통한 보상 구조에 관심이 많았으나 나는 그것은 수단일 뿐 목표는 위치 기반 보상 자체에 있었다.


금융이라는 고도로 발단된 시장에서 판세를 바꿔버릴 도전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마치 비트코인을 창조하는 것 같은 일이었다.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러한 미래를 봤을까? 2009년에 시작된 비트코인의 세계가 2025년에는 당연하게도 1억이 넘는 금액에 거래되고 국가의 전략 자산 논의가 될 것을 예측했을까. 금융 시스템에서 생기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세계의 패권과 직결되는 통화 시스템의 문제를 관통하게 될 줄이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작년 8월에서 11월까지 석 달간 그 일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그레이게이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엔드 투 엔드 그룹 암호화 프로토콜을 적용한 메시징과 콘텐츠 플랫폼 개발이었다. 사실상 대놓고 다크 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나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에 대해 심각한 염증을 느끼고 산다. 사실상 허상과 다름없는 데이터 더미에 사람들을 웃고 운다. 웃고 울기만 하는가. 화내고 짜증 내고. 선동되고. 인생을 파괴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의도가 담긴 허상의 여론의 실체는 상당히 거대하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소통할 때도 누구인지 측정도 안 되는 댓글 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 실체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게이트는 특성상 모든 표현이 보호되고 자기 자신을 비롯해 소통하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콘텐츠가 노출되지 않는다는 극단적 특성으로 범죄로 악용하기엔 궁극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범죄로만 쓰일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범죄 도구는 표현을 보호해 주는 목적 때문에 쓰이는 게 아니다. 만약 그 용도라면 굳이 더 좋은 암호화 수준을 자랑하는 툴을 제쳐두고 텔레그램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범죄에서도 B2C에 속하는 일반 대중과 연결되는 제품의 경우 대중성을 따라 선택이 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레이게이트는 누구를 위함일까. 대중성이 완전히 배제된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서비스면서 표현의 자유만을 지키기 위함이고, 동시에 콘텐츠도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은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허용 가능한 것은 문서나 기타 형태의 파일만 가능하다. 즉 대다수의 성인 콘텐츠 공유 등에는 사용하기에 매우 부적합하며, 오로지 언론의 탄압을 받는 이들이 정부의 눈을 피해 자료를 빼낼 수 있을뿐더러 절대로 공격받지 않는 안전 가옥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레이게이트. 즉 회색 문이라는 서비스는 검은 문으로 쓰기 위함도 하얀 문으로 쓰기 위함도 아니다. 자유를 위해 쓰일 수 있는 문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하얗게 할 수도 없고, 완전히 검게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회색 문이다.

내 제품과 철학은 선명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자유로운 세상이다. 어떤 이들은 크립토라는 무기를 가지고 쓰레기 같은 짓만 하는데 인생을 허비한다. 그들의 도덕, 윤리관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인간은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강력한 도구를 바탕으로 그것이 검게 사용된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아예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내 제품은 그러하다. 널 파이낸스도 그렇고 그레이게이트도 그렇다. 나는 권위에서 자유로운 제품을 만들고 싶다.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이 개개인에게 내려앉을 때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폭력이 너무 당연하게 실행되니 개인은 그것을 폭력으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폭력엔 결과가 남는다. 상처가 남는다. 부패한 정부엔 착취당하는 국민이라는 증거가 남는다. 사상의 검열엔 모두가 하나의 생각만을 하는 전체주의의 흔적이 남는다.


그러나 이 싸움을 하는 와중에 중국은 참으로 쉽지 않은 상대였다. 직간접적으로 모든 암호화폐 생태계는 중국이라는 큰 손 아래에 있는 것만 같다. 중국의 자본가들은 중국 정부의 수혜를 받아 부를 얻었지만 정작 정부에 눈에서 벗어난 부를 만들기 위해 암호화폐에 힘을 쓴다. 정보의 탄압과 자유가 거세된 곳에서 자유를 향한 꽃이 피어나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타락한 이들이 빚어낸 꽃이다. 이것 참 모순 아닌가.


나 역시 중국과의 아주 큰 거래가 지난 1년간 2번 있었다. 그러나 모두 거절했다. 거절할 때마다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나 역시 돈이 필요하고 이 딴 게 뭐가 중요한가 싶을 정도로 모든 걸 다 내던져 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속 브레이크 하나가 언제나 걸렸다. 지금 포기할 거라면 뭐 하러 지금까지 지켜온 건가. 내 안에 가장 소중한 것을 내다 버릴 만큼의 제안은 아니었었다. 나는 그다지 착한 인간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좆같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의 밑에 들어가기엔 가오가 떨어져서 그렇겐 못했다.


누군가에겐 인생에 의미가 뭐가 중요하냐. 돈이 곧 의미 아닌가. 할 수 있다. 난 그 의견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냥 나라는 사람은 그 규칙을 따르기엔 공허한 사람이다. 내 회사 이름처럼 나는 명시적으로 비어있는 인간이기에 이 원칙을 배반하려면 이 거대하게 비어있는 마음을 다 채울 만큼 매력적이어야 할 것 같다. 그게 얼마일까. 나도 모르겠다. 얼마면 내가 손바닥 뒤집듯 내 신념을 바꾸게 될지.


그렇게 나는 충분한 돈만 준다면 신념을 바꾸겠지만 한 편으로 나는 오만한 사람이라 내 고집을 꺾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오만한 놈이라 인간들을 착취하는 국가 위에 서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놔두지 않는 국가 답지도 않은 국가들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그 시중을 드느니 그냥 지금이라도 빌딩에서 떨어져 핏덩이로 남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에라이 좆같은 세상 이렇게 가도 되겠죠 하나님?' 할 만큼 했다고 당당하게 죽을 것 같다. 더 뭘 어떻게 하겠는가.


범죄자 새끼들 꼭대기에 있는 놈의 면상을 보고 싶어 시작한 일도 그렇다. 나는 한 명만 보면 족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줄줄이 사탕으로 다 엮여 있는지. 고구마 줄기인가. 살면서 정화조를 열어본 적은 없지만 정화조 속이 그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들을 싹 다 몰아 지옥 구덩이에 넣는다면 비슷한 모양이긴 할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내 믿음대로 신념대로 살았다. 쪽팔리지도 않고 어느 날 칼에 찔려 죽던 방사능 무기에 공격을 당하든. 아니면 그동안 만났던 범죄자들이 나에게 알려준 수만 가지 살인 방법과 공권력 개입 방법으로 죽던 삶의 중심이 비어있다. 비어있어서 그걸 채우고 싶다. 무엇으로? 세상에 가장 강하다는 인간쓰레기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서 바보를 만들어버리고 싶다. 신처럼 군림하는 악당들의 천박한 면면들이 다 밝혀진다면 그것 참 우스운 일이 아닐까. 그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패를 까보고 싶다. 도대체 얼마나 숨겨둔 건지.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이 그런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면 내 삶은 아무런 문제 없이 그 목적을 이룰 것 같다. 내 뒤엔 천군과 천사가 함께하며 신처럼 군림하던 자들의 추락을 이끌어내겠지. 그게 아니라 내가 따르는 신도 없고 내 인생도 희망 없이 추락한다면 내 모든 꿈은 망상이 되어 똑같이 추락할 것이다. 사람들이 기억이나 해주겠는가. 나는 글을 많이 쓰지만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리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타인에 크게 관심이 없다. 뭐 하러 타인의 기록을 보기 위해 애쓸까. 그건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함이다. 재미건 감동이건. 또는 동기부여건. 아니면 스토킹이건.


뭐든 상관없기에 나는 글을 써도 그게 실제로 읽힐 것이라는 기대도 안 한다. 그러나 언젠가 내 글을 아주 꼼꼼히 읽어줄 이가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떠나고 나면 나를 사랑해 준 이들은 꼼꼼히 봐주겠지. 그게 단 한 명이어도 상관없다. 내가 떠나고 나면 이 모든 비어있던 삶의 순간들은 빈 모습이 아닌 채워진 상태로 바뀌어 있겠지.


인생은 스스로가 채워질 수는 없다. 내가 무언가를 했다고 해서 채워지고 내가 뭔가를 안 했다고 해서 비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은 타인이 있기에 의미가 생기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면 그 찬란한 부와 명예도 허상이다. 나의 비어있음을 채우는 것은 내가 남긴 사람들이 나에게 담아준 사랑만큼일 것이다.


내가 창조한 제품과 내가 택한 길이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다면. 내가 떠나고 났을 때 그들이 나를 추모해 주면서 나는 채워질 것이다. 인생은 그 자체로 공허하다. 삶의 의미는 부질없는 것을 잡으려 애씀에 있지 않다. 신성한 목적을 따라 살아갈 때. 인간은 신이 내려준 찬란한 빛이 그 뒤를 따르고. 아무리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사람을 살리는 이들에게는 거대한 빛이 따른다.


이 세상은 공허하다. 삶도 공허하다. 유일하게 남는 것은 우리가 남긴 사람들뿐이다.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의 기억과 고마움. 그것뿐이다. 죽을 때 가져갈 것은 살려낸 사람들의 명부 뿐이다. 영원한 곳에 가져갈 곳은 이 세상에 남겼던 사랑의 흔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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