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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미행을 미행하기

2025. 3. 16.

by 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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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을 미행하는 건 이해만 한다면 초등학생도 할 만큼 쉽다.


먼저 미행당하고 있다는 상황이 확인되면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일정한 루틴은 행동 패턴을 미행자에게 학습시켜 미행 과정에서 방심을 유발한다. 가령 당신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회사를 하고 한 주에 한 번은 꼭 들리는 마트가 있고, 주에 몇 번은 헬스장을 간다고 해보자. 당신을 미행하는 건 미행 초보도 할 수 있을 만큼 뻔하고 쉬워서 잠이 올 정도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측하지도 못하거니와 그럴 일도 없기에 여기서 끝나지만 미행을 역으로 이용할 사람들은 여기서 트릭을 준다. 바로 기존 루틴과 다른 루틴을 새로운 루틴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는 마트가 집 앞 5분 거리 마트에서 15분 거리 마트로 옮겼다고 해보자. 미행을 하는 사람은 그저 그곳으로 바꿨네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15분 거리로 변경하면서 그 동선에 차량이 따라붙기 힘든 빌라 주택가나 협소한 일방통행 동선을 만든다. 이 동선은 미행자가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해당 빌라 내에 모니터링을 하는 팀을 배치해 어느 정도 거리에서 미행이 따라붙는지 모니터링할 수 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미행을 붙는 사람을 이미 감시 중인 곳으로 유도하고 역으로 그 동선을 모두 모니터링할 수 있는 팀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이건 딱히 어려운 방법이 아니다. 당장 당신의 친구나 가족이나 또는 친구의 회사 인근을 지나가는 형태로 추적이 붙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해당 위치를 지나갈 때 친구에게 "너희 사무실 밖에 내가 지나갈 때 혹시 누가 따라붙는지 봐달라"라고 하고 체크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팀플레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한적한 주택가 골목이 가장 유리하다. 보통 미행하는 경우에는 불륜 증거를 수집하거나 또는 특정인의 범죄 사실을 추적하기 위함이 많다. 또는 반대로 스토킹이나 해코지를 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의구심을 품을 수 있는 주택가에 걸어서 가는 행동을 노출시키고, 이미 준비된 세트에서 미행자를 감시하고 있다면 누가 추적하고 있는지 추적 사실과 패턴을 역으로 파악하기 쉽다.






미행자를 역으로 미행하는 방법은 그 외에도 다양하다. 그러나 핵심은 어떤 플레이든 단독 행동을 하지 말고 제삼자와 함께 해야 한다. 미행을 하는 입장에서는 미행만 하는 게 일인 경우가 꽤 많다. 그렇다 보니 대상이 감시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발생하면 꽤 곤란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역으로 감시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바로 압도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다.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아 미행자가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계속 확인하지 않고선 놓치는 곳, 가령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이나 광화문 앞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때 미행자는 군중 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집중해서 미행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팀원이 애써줘야 한다. 주변에 이동하지 않고 대상자와 함께 이동을 하는 인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보통 미행자는 잠깐잠깐 움직이거나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 2인 1조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에 1명 또는 2명이 공통된 움직임을 보이는지를 체크하는데 중점을 두면 된다.






세 번째 방법은 접근 불가 지역을 활용하는 것이다. 가령 일반인은 접근 불가능한 회사 건물이 대표적이다. 나만 접근 가능한 회사 건물이 있고 그 건물이 상당히 크다면 동선을 끊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가령 판교에는 거대하고 폐쇄적인 회사 사옥이 상당히 많다. 이곳에 차량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 미행을 하게 된다면 차량만을 포커싱하게 되지만 그게 아니라 도보로 이동하고 건물 내부에서 어디로 나갈지 모르게 한다면 미행이 붙기에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회사 건물을 예로 들었지만 그 외에도 대학교와 같이 일반인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외부로 나가는 동선이 다양한 것도 상당히 유리하다. 가령 서울대는 거대한 캠퍼스 크기를 자랑한다. 버스로 서울대에 진입해서 서울대 내에서 이동을 한다면 미행자가 같은 버스에 타고 도보로 따라붙지 않는 한 추적은 매우 어렵다. 추적이 어렵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가까이 붙는다는 것은 역으로 미행하기에도 용이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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