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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잡담문

2025. 4. 1.

by 한상훈


공원.


저녁을 지나 밤길을 걷다 보면 하늘엔 예쁘게 깎아낸 손톱 같은 달이 떠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원. 가끔 지나가다 보면 마주치는 건 공원을 채우고 있는 몇몇 아이들 또는 노인들. 아이들을 보면 나도 예전엔 아무런 걱정 없이 뛰어놀던 때가 있었는데 하며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뛰어놀았던 날은 언제였을까. 아무런 걱정 없이 미끄럼틀을 타고 흙장난을 했던 건 언제였을까.


아이들이 공원에서 아무 걱정 없이 뛰어노는 것처럼 노인들이 공원에서 한적하게 앉아있는 모습도 보곤 한다. 나는 겪어본 적 없는 경험이겠지. 내가 노년이 될 때쯤이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반백년이 안 되는 세월만으로도 천지가 개벽한 듯 바뀌는 것이 세상인데. 우리의 시간이 모두 지나고 나면 그때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고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광고.


나는 종종 오래된 것에서 쉼을 찾곤 한다. 아무도 안 보는 신문의 질감이 좋다. 광고로 뒤덮인 잡지를 보는 것도 좋다. 종이에서 느껴지는 촉감과 그 안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사용된 단어 하나하나와 사진들. 평범한 시선으로 본다면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익숙해서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을 인식하지 못하곤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상품 하나를 광고하기 위해 기획하고, 촬영하고, 촬영 장소를 잡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각도를 변경해 간다. 촬영에 필요한 한 명 한 명의 직원들과 그 촬영본을 가지고 다시 편집하고 깎아내고. 그것과 어울리는 텍스트를 찾아내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애쓴다. 이 모든 비용의 결과가 흔히 보는 광고다.


수많은 사람들이 애써서 광고하는 것보다 유명한 연예인 한 명을 쓰는 게 더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으니 광고주는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 유명인들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유명인들은 유명세에 맞춰 엄청난 광고 금액을 벌어갈 수 있게 된다. 불공정하게 보이지만 광고를 집행해 보는 입장이 된다면 합리적인 금액이 된다.


다만 이들이 설령 아무리 유명세를 이용해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이 존경받거나 대단한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은 도덕적 오만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대중이 주는 관심과 사랑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연봉을 뛰어넘는 돈을 하루 만에도 벌 수 있다고 해서 대중들보다 위대한 것도 존경받아야 할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광고는 광고일 뿐. 연예인은 연예인일 뿐. 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그동안 받았던 따뜻한 관심은 도리어 칼이 되어 돌아온다.




터널.


터널의 한 가지 특징은 진입할 때는 사방이 어두워지고 눈앞에는 출구 하나만 보인다는 점이다. 터널에 들어간 사람은 터널을 역으로 돌아 나오거나 터널의 반대쪽까지 갈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2개뿐인 것이다. 터널을 부숴 버리거나 터널에서 멈출 수도 없다. 오직 2개의 선택지. 돌아가거나 나아가거나.


인생의 많은 순간은 터널과 터널이 아닌 순간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은 주변이 캄캄하더라도 끝까지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터널의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여기서 멈추면 죽도 밥도 안된다. 터널 밖에 나갈 때까지 자신을 밀어붙이고 나면 터널을 지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보지 못할 새 세상이 눈앞에 있을 것이다.


터널에 갇힌 이들은 터널 밖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터널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미정인 상태의 사람들은 그것 자체로 방황하게 된다. 특별한 선택지가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터널로 향하고, 터널 속에서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며, 터널 밖에선 터널 안으로 들어오길 원한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면서 동시에 안정을 원한다.




조작.


수많은 조작의 방법을 알고 있다 보니 눈에 보이는 허상을 만드는 방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아마 대한민국에 전문가를 데려오라면 그래도 꽤 순위권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전략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러나 이것을 이용해 수익을 얻고 사업을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큰 방지턱이 있는 것 같았다. 큰 방지턱이 그 짓을 못하게 막아주었다. 오히려 정 반대로 살아보자. 조작을 하지 말고 더 날 것의 나를 보여주자.


일종의 사회 실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조작을 통해 얻어낸 관심 vs 조작 없이 얻어낸 관심. 사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안의 도덕의 선은 그렇게까지 선명하지 못하다. 몇 번이라도 정반대 편에 서서 내가 아직까지 배워온 모든 전략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작하는. 프로파간다를 실행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지켜온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 버는 장사꾼이 삼강오륜, 인류애, 도덕과 청렴, 정의 등을 붙잡고 장사하는 게 맞겠냐만은. 나는 장사꾼이 아닌 여행자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여행을 하러 온 여행자처럼. 지구라는 별에 여행온 외계인인 것처럼. 죽고 나면 돌아갈 고향 행성이 있고, 그곳에서는 이곳에서 쌓아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큰 보상이 있는 것처럼.


어쩌면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그렇게라도 하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연약해지고 내가 지켜온 신념을 잃게 된다면 어디까지 반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공기.


지난 며칠간 매일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도 않았고 통증이 쌔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미약한 두통이 생기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약을 먹었겠지만 그렇다고 매일 약을 먹을 수도 없기에 원인을 찾아보았다. 삶의 패턴을 살짝 바꿔보면서. 아니나 다를까 원인은 공기였다. 닫힌 공간에서 환기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있으면 두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그랬다. 공기가 안 좋은 곳에 있으면 숨 쉬는 데는 문제가 없더라도 두통이나 목의 통증으로 발현됐다. 그래서 공기가 안 좋은 국가에 가면 언제나 두통이 생겼다. 생각해 보니 지난 한 주간 공기가 특별히 안 좋기도 했었지.


밖에 나오고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환기를 억지로라도 하면서 증상은 완화됐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공기의 예민함은 두통이라는 선명한 결과로 반환되었다. 순수함수 같이 말이다.




펜듈럼.


세상의 모든 것은 차오르면 비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마치 진자 운동처럼. 한쪽으로 높게 올라간 진자는 그 힘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정전에서 반대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떨어지는 추는 극렬하게 떨어지지만 가장 낮은 점을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급속도로 오르기 시작한다. 펜듈럼은 인간사의 모든 상황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영원히 잘되기 힘들다. 그 어떤 기업도 영원히 상승하기 힘들다. 잘될 때와 안 될 때가 진자 운동처럼 발생한다. 호사다마. 좋은 일이 많아질수록 마도 많아지는 것이 세상의 원리였다.


펜듈럼을 보면서 내 위치를 인지하기는 꽤 어렵다. 세상의 펜듈럼은 나 자신만을 요동치게 하는 게 아니다. 만약 내가 수제버거집을 창업해서 이전부터 영업하고 있다가, 어느 날 대중적으로 수제버거 열풍이 불어 장사가 잘되면 그것은 진자의 한쪽 끝으로 나도 모르게 이끌려 가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열풍은 말 그대로 열풍. 열풍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시간이다. 많아진 손님을 기준으로 장사를 키웠다면 장사가 잘 안 되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게 손실과 비용이 된다. 운명을 스스로 바꾼 적은 없지만 그 운명의 파도에 따라 나 역시 영향을 받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 잘해보기 위해서 한 결단이 도리어 펜듈럼의 추에 따라 누군가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거대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오르는 추를 찾고, 땅이 무섭게 내려가는 추에선 벗어나며 극단에 다다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올라간 만큼 내려간다. 올라갔다면 그것이 영원히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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