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회사 폐업까지 8일을 남기고
사업가로 10년 살다 보니 세상의 구정물을 꽤 들이마신 거 같다. 목구멍이 칼칼한 게 계속 들이마셨다간 골로 갈 것 같다. 어린 시절 배운 세상은 이 정도까지 개판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쭙잖게 힘을 키우지 못한 상태로 판만 키우다가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돕는 것도 사람 봐가면서 도와야 하고 도울 상황이 되어야 돕는 거지 명줄 내놓고 돕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었다.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았던 것인진 나도 모르겠다. 막연한 자신감인지 이유 없는 정의감인지. 애초에 정의로운 캐릭터도 아닌 놈이 황새 따라 하는 뱁새였지.
내 맘대로 살아보고 있다. 인생에서 이 정도로 자유롭게 살아본 적이 있었나 싶다. 오래간만에 깊은 잠을 잔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깨어나보니 8시간 잔 것이었다. 황당한 일이지. 매일 나눠서 잠을 자다가 몇 주만에 오래 잔 게 고작 8시간은 간신히 채웠다니.
그 누구의 제안도 이제는 별로 기다리지 않고 산다. 사업가로 살면서 기다려달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일을 진행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조금만 기다려달라.
약속 시간의 개념이 없는 이들이 태반이기에 소중한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나대로 즐겁게 살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체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애초에 체면이 그렇게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통 체면이 있는 사람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치부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유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는 지배를 좋아하지도 않고 거대한 성공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내가 원했던 것은 사람들의 미소였다. 학창 시절 내가 꿈꿨던 것은 전교 1등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내가 학교에 갈 때마다 아침에 나를 보는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장난치는 모습을 꿈꿨다. 감사하게도 그 꿈은 잘 이뤄졌다.
반면 사업은 사람을 사람으로 온전히 보기보다는 감정의 일부를 거세한 듯 냉철하고 기계적으로 대할 필요성이 컸다. 마치 작은 키를 가지고 농구 선수로 성공하는 것이 힘든 것과 같이 나라는 사람에게는 구조적으로 해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걸 믿든 말든 보는 사람들 마음이겠지만 직원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노력이 누군가에겐 장난치고 놀기만 좋아하는 대표로 보였을 것 같고, 실없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것을 간절히 찾아다니다 보니 진정으로 원했던 삶의 모습이 더 선명해지는 것만 같다. 나는 100점짜리 인간이 애초에 아니거니와 부족한 게 많지만, 부족한 게 많아도 그 안에 사회에 기여할 유용한 점이 꽤 많은 건 사실이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과 같이 탐구하려는 자세들. 방구석에 처박혀서 학자처럼 공부만 하거나 너무 천재여서 모든 걸 너무 쉽게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잘 모르니까 이것저것 살펴보고, 그러한 모습들을 공감하고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상당한 행복감을 느꼈다.
오늘은 주말이지만 구글에서 사용되는 내부 개발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공개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찾기 힘든 자료를 나는 잘 찾는다. 그리고 이것을 쉬운 언어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언젠가 어떤 이유로 사업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업의 여정을 접어둘 것 같다. 앞으로 딱 2주 정도가 지나면 싱가포르에 설립한 회사도 문을 닫는다. 더 이상 유지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실상 나는 사업가도 아니고 공식적인 수익 채널이라곤 유튜브로 버는 한 달의 20만 원 정도 되는 돈뿐인 백수가 된다. 그때부터 강의를 하며 살아갈지 아니면 전문 방송인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어떤 팀에 개발자나 CTO 등으로 들어갈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내가 관심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감사하게도 나를 믿어주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내가 온전히 나의 길을 찾아 궤도에 오를 때까지 다들 기다려주었다.
이 방황하는 인생에서 내가 성공할 길이 무엇일까?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마음껏 살아보면 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이뤄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예상도 안되지만 멍청한 사업가1로 사는 것보단 더 나은 길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