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7.
오늘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녹음기를 켰다. 꿈이 매우 기괴했기 때문이다.
꿈에선 오랜 친구가 살인은 저지르고 토막 난 시체를 주황색 방수포 같은 것에 담아서 가져왔다. 딱 봐도 맨 정신이 아닌 것 같은 얼굴로 그것을 보여주고 나서 시골집에 있는 하수도에 시체를 버렸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조각난 시체가 좁은 하수관으로 떠내려가면 분명 막힐 것이 분명했고, 아마도 시체에 대해 금방 경찰들이 찾아낼만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시체를 그렇게 유기하고 나서 우리 집에 있는 CCTV들의 위치를 사진 찍었다. 매우 당혹스러웠다.
친구는 그렇게 시체를 버리고 우리 집을 떠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고민됐다. 이 시체가 시골 부모님 집에서 발견된다면 부모님은 온갖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악취나 뼈, 살덩이들이 하수관을 따라 제대로 나갈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구가 CCTV를 찍어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혹여나 CCTV에 자신이 찍혀있었다면, 부모님이 이 사실을 경찰에 말한다면 부모님에게도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친구 혼자 밥을 먹던 식당 밖으로 나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이것은 아무리 친구라도 고발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그러고 나서 꿈에서 깨어났다.
당연하게도 나는 이상한 꿈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요즘 한창 바쁜 일상을 보내는 친구는 별 일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그는 꿈은 반대로 이뤄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라 안 좋은 꿈이 곧 길몽이 되어 올 거라 생각하는 편이다. 실제로 최근에 그는 정상인의 시선에서는 안 좋은 꿈같은 걸 꾸고 좋은 환경으로 옮겨 근무를 시작했었다.
내가 꿈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니 그는 길몽이라며 좋은 일이 오려나보다 했다. 나도 그러길 바랐다. 토막 난 시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물체겠지만, 반대로 해석해 본다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 대표의 부탁으로 한 고객사 미팅에 같이 참여해서 논의를 진행했다. 그러고 나서 몇 년째 함께 동고동락한 동생이 속한 회사의 대표와 한참이나 미팅을 했다.
날이 더워 땀이 나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어다녔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렇게까지 지치지 않고 강의 준비를 한참이나 진행했다. 요즘 내가 준비하는 아직까지 해온 모든 강의와는 결이 다른 느낌을 받고 있다. 강의 주제도 온전히 내가 주도적으로 정하고, 강의의 콘셉트이나 방식도 내가 정했다. 보통의 강의를 준비할 때는 강의 요청자(강의 기획자)의 요구에 따라 일정 시간 내에 정해진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파생되는 개념이나 깊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다.
반면 이번 강의만큼은 결이 다르게 아주 깊게 나아가도 무방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의도했던 내용을 모두 완료하고 나서도 거기에 나오는 단어, 표현 방식, 용법 등을 다루다 보면 점점 더 깊은 지식에 접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개념들은 마인드맵처럼 연관성을 가지고 펼쳐져 나간다. 계속 펼쳐져 나가면서 서로의 참조 관계가 나타난다. 나는 이러한 참조 관계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지식이야 말로 견고한 지식이 되어 오랫동안 사람 안에 생존한다 생각한다.
그렇게 방사형으로 펼쳐져간 지식을 다루다보면서 학생의 입장에서 할만한 질문을 다시 해보고, 그것에 대한 답을 다시 준비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원래 짧게 끝날만한 파트도 전혀 짧게 끝날 수 없는 방대한 분량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고민 중이다. 지식을 쭉 펼쳐 아주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가고 있는 이 과정이 무척이나 즐겁고 한 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도 있지만, 이것을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곤 한다. 오늘만 해도 내가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 강의 일정을 정하기 전인 1달 정도 전이었다면 아마 나는 일을 수락하고 제대로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지고 완성해야 한다. 그게 어떤 일이든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성경에서 좋아하는 구절은 바로 이것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보았는가? 그는 왕을 섬길 자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것을 최선을 다해 충성으로 대하는 자는 결과적으로 가장 높은 왕(신)을 위해 일하게 된다는 잠언이다. 현재의 위치가 상관이 없고, 현재의 일이 하찮게 보이던 대단해 보이던 상관이 없다.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온 힘으로 충성하면 그 모습을 보는 모든 이들이 헌신하는 이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요셉이 노예로 추락했지만 노예 중에 가장 뛰어나게 일해 노예들의 장이 되었고, 감옥에 누명을 쓰고 들어갔지만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해 그 안에서도 평판을 얻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왕 앞에 서서 총리가 된 것처럼 말이다.
해야 할 것은 너무도 선명했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이 그저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라 믿고 있다. 스스로 정한 마스터 강의라는 이름처럼 애쓰고 싶다.
나는 "지혜는 시원한 물과 같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무슨 뜻인가. 지혜를 찾은 자는 갈증 속에 시원한 물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시원하고,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갈증에서 벗어난 것처럼 기쁘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든 배우고 싶으나 배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있고, 어떤 일이든 배우고 싶어도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있다. 지혜의 목마름이 있는 이들이다.
내가 지혜롭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혜에 대한 갈망이 나를 지혜의 샘으로 인도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이 지혜를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을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계속 찾아다니다 보니 결국 찾았다. 문을 두드리다 보니 문이 열렸다. 구하다 보니 얻었다.
내가 느꼈던 지혜의 시원함을 나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받는 이들도 느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계속할 업인지, 업이 아닌 스쳐가는 순간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떤 길이든 상관없이 주어진 일에 충성한다. 나는 왕을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