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9.
보통 사람들이 한 주를 시작하는 오늘이 나에겐 쉬는 날이다. 쉬는 날에는 특별한 것들을 하기보다는 먼 계획을 세운다. 계획형 인간은 아니지만 먼 미래에 러프한 스케치를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스케치북의 색은 순간순간 손에 쥐어진 크레파스로 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종종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것을 꿈꾸냐 묻곤 한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어떤 것을 원하는가 같은 추상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질문들. 내 꿈은 오랫동안 선명하지 않았다. 꿈을 이룬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기대했던 모습도, 기대했던 향기도, 기대했던 기쁨도 찾을 수 없었다. 꿈은 이뤄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었기에 실체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동경하나, 실체를 손에 쥐고 나서는 꿈의 실체에 대해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헛된 것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하며.
내가 바라는 삶은 조금씩 선명해져가고 있지만 대부분은 아주 뻔한 것들이다. 죄짓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 근심 드리지 않으며 살고 싶다. 내 인생은 부모님께는 불효에 가까운 불완전한 순간들로 가득했으나, 결과적으로 내 마음속 오랫동안 앙금처럼 가라앉은 원망과 미움의 감정을 모두 쓸고 지나가게 해 주었다. 더 이상 밉지도 원망할 것도 없이. 이유 없이 사랑해 주고 믿어준 것으로 모든 것이 치유된 셈이다.
내 영혼은 치유됐으나 세상에 대한 괴로움은 여전히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동에 물음을 가지던 나날도 있었으나,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바다에서 볼 수 있는 파도와 다르지 않다 생각하게 되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인간은 바다의 물길을 바꾸기엔 힘들다. 해류를 통제하느니 해류를 활용해 항해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인간의 본성 또한 거스를 수 없는 해류와 같아서 인간을 바꾸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을 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본성을 현명하게 활용해 그들이 가진 좋은 모습과 본성이 더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바라는 길은 하나. 침묵하던 자가 소리를 내어 자유를 말할 수 있게 되는 날. 배우지 못했던 이들이 글을 깨달아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날. 부당하게 묶인 자들의 사슬이 끊어지는 날. 자유가 도래하는 날. 나는 그날을 꿈꾼다.
새장에 갇힌 새가 어찌 하늘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들판을 뛰놀던 아이가 하루 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야 한다고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나는 그날을 꿈꾸고 그날이 오기 위한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때로는 적이라 천명하며 적대시했던 나날도 있으나, 이제는 그 또한 인간이라는 본성, 사회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 또한 본성을 거스를 수 없었던 인간이기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인간적이고 나약한 선택을 한 셈이다. 가장 생존 확률은 높이고 도덕적 가책을 꾹 눌러 담으며. 가책을 느끼지 않아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에 더욱더 담대하게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영혼의 살을 태워버린 것과 같다. 마치 피부가 극심하게 상하면 제대로 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 느낌을 안다. 수술을 하고 나서 내 살을 만져봐도 만져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기타를 오래 쳐도 그렇다. 손 끝이 아파야 하는데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혼의 고통 또한 그러했다. 영혼의 고통은 살아있는 영혼이나 느낄 수 있는 고통일 뿐. 이미 시체와 다름없는 이들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영혼이 칼에 찔리던 불에 태워지든.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기에 자신을 부정하는 길을 살아간다. 그들의 지옥이 어디에 있을까. 이미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신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내 몸과 같이. 결국 나는 나를 구하러 가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넓은 의미의 이기심. 너도 나고 나도 너고. 자유로운 순간의 찬란함을 느껴보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의 삶에도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을 돕기 위해 전력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들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것 같았으나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고, 나 역시 이름 모를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내가 가진 것을 내어 그들을 살리러 간다. 나의 쉼과 사명. 먼 길을 가기에 영혼의 물이 필요했다. 고요한 시간 속에서 눈물에 담긴 흔적들을 마시며 내 영혼의 갈증이 갈음되었다. 그 안에 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