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여정

12년

2025. 6. 8.

by 한상훈
Good Night · Falvin

한참을 이야기했다. 슬리퍼를 신고 배회하며 이리저리 허둥댔다. 마음이 원하는 것. 딱히 없었다. 그저 공허하고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친구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릴지도 모르지.


공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며. 신의 관점은 인간의 관점과 많이 다르다. 이야기를 하던 중 알게 됐다. 내가 바라고 멋지다고 느끼는 길이 하나 있었다는 걸. 그는 그 길을 응원해 주었다. 한참 동안이나 그 기쁨이 잔잔히 전해져 왔다.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음에도 마치 이뤄진 것 같았다.


비슷하진 않지만 그런 기분을 어린 시절 겪었다. 대학생 시절 평택역 앞에서 서울로 올라가던 길에 똑같은 감정이었을까. 그때 그는 미래를 보여주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이것이 이뤄진 미래였는지. 나는 그 실체를 보지 못했으나 그 나이가 되고 나니 선선히 마주하게 되었다. 약속은 천천히 꾸준하게. 정해진 길을 향해 나아갔던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일들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곤 한다. 아마 믿지 않을지 모른다. 나도 종종 믿기지 않으니 말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소용돌이였는지 도무지 헤아릴 방법이 없다. 거룩한 신의 뜻이라 말할 수밖에 없지 않으려나.


그는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미리 본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는 날들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믿기 힘든 것들에 집중해보곤 한다. 사람들이 전혀 관심 없어하는 과거의 지혜들과 날 것의 사실들. 아픈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시들어가는 들풀 같이. 마른땅에서 말라가는 이들의 곁에 신이 머물고 있었다. 신이 보고 있는 세상은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가 없도다.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먼 길을 떠나 이곳에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 도래한다면. 그날에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을 떠나는 것일까. 정든 땅을 떠나 부름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거대한 파도 속에 나를 내던져 뜻하는 바를 추구한다. 걸어야 할 길은 무엇일까. 그의 목소리에는 부정하기 힘든 지혜의 울림이 영혼 깊은 곳까지 메아리쳐 퍼지는 것 같았다.


12년이라는 시간. 12년 전의 시간과. 12년 후의 시간. 그 분기점 어딘가에서 똑같은 순간을 마주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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