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6.
현시대에는 연금술사가 없다. 이유는 그 어떤 돌덩이로도 금을 창조할 수 없다는 과학적 진리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래전 연금술사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수를 동원해서라도 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금을 창조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연금술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보낸 수십 년의 시간들이 해답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버려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할까. 아니면 자신이 발견한 슬픈 진리로 인해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가게 될까. 아무도 모르지만 끝에 도달한다는 것은 그 끝에 불편하고도 괴로운 진리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신을 연구하는 신학자가 연구 끝에 신이 없다는 것에 도달했다면. 치료법을 연구하던 의사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을 마주하게 된다면. 지나간 세월을 돌이킬 방법은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많은 것들이 가능해 보이지만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 많은 연금술사들이 금을 창조하기 위해 애썼지만 실패했던 것처럼.
자신의 길 끝에 처연히 놓인 진실의 상자를 열어보는 것. 그 안에 판도라의 상자처럼 세상의 온갖 괴로움과 끔찍한 것들이 담겨있을지. 아니면 오랫동안 찾고 찾았던 보물이 있을지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알 방법이 없다.
아마도 나의 삶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이 꺼려하는 진실에 담대히 도전하는 자는 오랜 시간 끝에 마주한 진실의 실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 진실이 초라하고 형편없어서 실성한 듯 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금기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길이다. 그 위험은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고, 그 결과로 인해 내가 쏟아부었던 수많은 노력이 물거품처럼 일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마치 금을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연금술사가 된 것처럼.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만약 누군가가 답을 찾기 힘든 담대한 도전을 하고 있다면, 그들은 연금술사라 불릴만하다. 많은 이들이 비웃을 것이고,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었는지를 떠들 것이며,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도전자들의 삶에 엄중한 경고를 할 것이다.
그때부터 연금술사는 각오해야 한다. 자신이 택한 길 끝에 마주할 최악의 진실을 보더라도.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자신이 있는지. 그것이 담대한 길을 걷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