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여정

자원봉사

2025. 6. 5.

by 한상훈

무척이나 건설적인 하루를 보내고 나니 언제나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뚝 끊어진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일반적인 우울증 환자와 나와의 차이가 있다면 나는 "왜 이딴 세상에서 계속 숨 쉬며 살아야 하지?"라는 본연의 회의감이 큰 것 같다. 끊임없이 삶을 지속할 땔감을 넣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저주받은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를 하거나 자극을 찾거나. 죽어가는 생명의 숨을 유지시켜 줄 무언가가 없이는 안될 것 같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저것 몰입해서 배운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깨진 항아리에 물을 들이붓는 것 같은 공허함 속에 살고 있다.


지긋지긋한 마음을 씻으러 늦은 밤 산책을 하고, 언제나처럼 맥도널드에 들려 간단히 식사를 했다. 인터넷에서 글을 보던 중 와닿았던 것은 보육원 봉사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들을 아주아주 좋아해왔고 지금도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다. 내가 오랫동안 몸 담았던 교회에서도 아이들과 있던 시간이 가장 즐거웠기에 보육원 봉사를 찾아보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봉사도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놀기 위한 이기심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찾아보니 보육원 봉사는 꾸준히 해야 하고 여러 사전 절차도 필요했다. 다른 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꾸준히가 문제였다. 최소 6개월 이상은 방문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당장 내 인생이 꾸준히 무언가를 할 만큼 정해진 상태가 아니기에 급하게 결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봉사를 찾아보다 보니 모든 게 자원봉사 시간과 연결된다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자원봉사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내 공허한 삶에 조금이나마 의미를 찾기 위해 봉사를 하고 싶은 것뿐인데, 나 같은 이들을 위한 곳은 조금 더 신경을 써야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인생에서 건설적이고 행복하고 긍정적인 감정이 꼭 인생을 윤택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아무런 값을 따지지 않고 희생하기도 하고, 타인의 슬픔을 나의 슬픔처럼 느끼고, 함께 애통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순간이 더욱 값진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내가 오늘 하루 보낸 건설적인 시간은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바란 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는지도 모른다.


10년 전 나는 신에게 기도를 할 때 사업을 딱 10년 동안 해보고 성공 근처에도 못 가보고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그런 놈으로 남는다면, 그때는 직장에 들어가든 NGO에 들어가든, 아니면 저 사막 어딘가에 선교사로 가서 살든 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10년 동안 한 번도 어깨 한번 못 피고 살아간 인생이 아닌 어깨를 충분히 펴고도 남을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어깨피고 다닐 시절을 돌이켜봐도 지금이나 그때나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아무리 건설적인, 훌륭한,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도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런 것에서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내가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이 필요했다. 나에겐 슬픔이 필요했다. 슬픈 자들과 보내는 시간이 필요했고, 세상의 그늘 어딘가에서 통증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봐야만 했다. 아무도 시킨 적 없지만 그래선지 오랫동안 해외 저널리즘을 보며 여러 나라의 전쟁과 끔찍한 현재 상황들을 보곤 했다. 한국에서 꾸준히 알자지라 방송을 보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피로 새긴 역사적 상처들로 가득 찬 땅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젊은이들과 노인들, 심지어 아이들이 떨어진 유탄에 팔다리가 날아가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는 일이 일상처럼 일어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엄밀히는 일방적인 독백이었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게 내가 인지하고 있는 제대로 된 현실 감각이었으니 말이다.


봉사도 좋고, 구제도 좋았으나 정말로 바란 것은 뿌리를 어떻게 뽑아 단 한 곳이라도 평화가 깃들게 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단 한 곳이라도 말이다.


복된 소식은 선교사들의 피로 전파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이 쟁취한 자유 역시 피로 쓰였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세상엔 깨진 항아리처럼 아무리 많은 피가 스며들어도 도통 평화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얼룩진 역사와 아픔이 남아있을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나 지구는 아무리 멀어봐야 2만 Km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보낸 건설적 하루는 그저 인간 한상훈의 주어진 일에 대한 평탄한 하루였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닌 공허한 하루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척이나 인생을 선명하게 살고 있다. 가끔은 연애도 꿈꾸고, 가끔은 지루한 일상에 웃음을 찾기도 하지만 나는 저 멀리 사막에 꼭 가보고 싶다. 그곳에 나를 필요로 하는 집단이 있을지, 기관이 있을지. 내가 평생을 머물 텐트가 있을지. 평화의 땅에서 따뜻한 방에서 살아가는 삶은 행복이 아닌 무료와 권태만 주는 것만 같다. 눈을 흐릿하게 뜨게 하고 그 어떤 생명도 구할 수 없는 안락하고 권태로운 삶 말이다.


내가 받은 저주에 대해서 이제야 선명히 이해해 가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한국어를 쓰고 한국어로 기록을 남기지만 몇 년후에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기록하고 싶다. 나 같은 공허하고 텅 빈 인생이 가야 할 곳은 안락한 소파가 아닌 게 확실했다. 내가 되고 싶은 가장 멋진 나의 모습도 선명히 정해져 가는 것 같다. 폭탄이 떨어지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 내 맘대로 살고 싶다. 신의 뜻이 어떠하든 몇 명이고 살려내보고 싶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면 어린 시절 자신에게도 쪽팔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예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