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5.
나는 애초에 그렇게 감추는 게 없이 살아왔으나 살다 보니 감추려 하지 않아도 굳이 말하지 않게 되는 게 늘어가긴 했다. 대부분의 감춰진 내용은 내가 감추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딱히 감출 것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없다.
어렸을 때는 종종 쪽팔린 일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지나고 나니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고 나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다. 바보도 아니고 똑같은 멍청한 짓을 반복하면 안 되지.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개선하면 된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건 되도록 잊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그 모습도 결국 나였으니까 말이다.
부모가 된다면 아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고들 한다. 자신의 단점들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닮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사람이라면 그 단점은 단점대로 인정하고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내 길도 선명하게 공개하는 편이다. 나는 내 목표를 딱히 감추지도 않고 그저 선명하게 준비해나가고 있다. 내가 믿는 좋은 제품에 대한 생각들이 설계에 담기고 그걸 구현하기 위한 기반을 조금씩 쌓는다. 벽돌 쌓는 것과 비슷하다. 벽돌 한 장 한 장 천천히 쌓는 것이다.
벽돌이라는 표현도 좋지만 더 좋아하는 표현은 모퉁잇돌이라 부르고 싶다. 큰 건물을 짓고자 한다면 큰 건물의 모퉁이에 해당하는 곳을 표시해두어야 할 것이다. 짓게 되면 모퉁이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큰 건물을 질지는 모퉁잇돌에 위치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정한 나의 삶의 범위. 내가 살고자 하는 삶과 목표의 범위를 정하는데 꽤 오랜 여정이 걸리는 것만 같다. 최근에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5개의 제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고, 5개의 제품을 비롯해 10년이라는 긴 시간 후에 하고 싶은 일을 정해보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딱히 감추지도 않고, 이야기하며 의견을 듣곤 한다. 이유는 선명하다. 책사가 많으면 계획이 성공한다. 잠언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사들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목표와 계획에 대해 선포하기보다는 의논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1명의 책사의 도움을 받는 것과 3명의 책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다르다. 책사의 수준도 차이가 있다. 어떤 책 사는 지혜롭고, 현명하지만 어떤 책 사는 현명하지도 않고 어리석다. 그러나 수많은 의견들을 통해 완성되는 것은 견고한 계획이다. 일종의 테스트 과정인 셈이다. 코드를 테스트하는 좋은 테스팅 시나리오는 개발자가 의도한 시나리오만 테스트해서는 안된다. 실제 사용자는 개발자의 의도와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테스팅 시나리오는 때로는 황당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엉뚱한 책사의 조언을 듣는 것도 유효한 면이 있다. 정반대의 의견이나 무덤덤한 의견이나. 언제나 내 의견을 듣기 좋아하는 이들과만 일을 하고 그들만 가까이한다면 나는 분명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 내가 야심 차게 생각한 것들을 무던하게 들어주는 이들도 있어야 하고, 화를 내는 이들도 있어야 하며, 좋아하고 들떠하는 이들도 있어야 한다.
다섯 개의 제품과 더불어 살고 싶은 여러 모습들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최근 나는 이런 꿈을 꾼다. 큰 위성을 하나 사고 싶었다. 위성을 통해 세계의 여러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위성을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마주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호를 통한 정보 수집. 소프트웨어를 통한 정보 수집. 그 과정에서 연결되는 정부와 권세의 관계들. 그 안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숨겨진 비밀을 보고 싶은 욕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호기심을 제거하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비밀을 알고 싶다. 비밀을 알고 싶고 동시에 보호해주고 싶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비밀을 헐값에 파는지 알게 됐으니 그들이 앞으론 헐값에 팔지 못하도록 보호해주고 싶다. 그러면 꽤나 뿌듯한 인생이 아닐까. 하며. 꿈을 꿔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