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3.
다들 그렇게 산다. 적당히 거래하면서 말이다.
적당히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산다. 사생활도 그렇고 개인정보도 그렇고. 모조리 다 털어가도 그것이 실제로 어떤 문제로 이어지는지 보이지 않으니 관심이 없는 것이다. 피해본 기억이 없으니 피해자들끼리 합세해 투쟁을 할 일도 없다. 그저 조용히 다 빼내는 것과 같다. 조용히 자신의 모든 것들을 공개당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산다. 다 그렇게 산다. 거래한 적은 없지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렇게 다 빼내간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별로 신념을 가진 인물들도 없다. 내가 왜 그 조직을 싫어하는지 아는가. 가장 신념이 있어야 하는 조직에 신념을 상실한 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종교인을 싫어할까. 신을 섬겨야 할 자리에는 인간을 숭배하고 조종하기 위한 계략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을 섬기려 했다면 그 자리에 남아있었으면 안 됐고, 그들이 진정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살았다면 그랬으면 안 됐다.
언제나 악마는 대의명분을 세워 추종자들을 보호한다. 도덕의 방패가 거대할수록 그 뒤에 숨겨진 건 오물뿐이다. 도덕의 방패를 치워내면 가장 추악한 이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때로는 이 모든 세계가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그것은 지구의 입장에서 치유일까.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엇일까.
태초에 선과 악이 있었을까. 인간은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데 선과 악을 따지지 않는다. 그것을 자연의 섭리라 말한다. 반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강한 국가가 힘으로 약한 국가를 굴복시키고 노예 삼고,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취했던 일들은 선인가 악인가? 힘이 약한 국가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국민 모두를 속이고 그들 사이에 숨은 스파이를 감시하려고 국민 전체를 감시, 감청한다면 그것은 선인가 악인가? 국가를 살리기 위해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독재를 한다면 그것은 선인가 악인가?
많은 순간에 도덕이라는 건 상황과 조건과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기준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더욱 우스운 것은 똑같은 죄라도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간은 선과 악의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저 사람이 하면 악, 저 사람이 하면 선. 내 가족을 위해선 선. 내가 미워하는 이들을 위해선 악.
적당한 거래는 사실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적당히 무지하게 살고, 적당히 귀를 닫고, 적당히 하고 싶은 말은 줄이고, 적당히 타협하며 현재 위치에 만족하고 사는 모든 과정에서 발생한다. 적당한 거래. 적당히 만족스럽고 기분도 나쁘지 않은 수준. 그렇게 적당한 밸런스를 맞추며 살아가다 보면 아마도 기준선이 바뀌는 날이 오게 된다. 더 많은 것을 상대방이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빼앗기는 날이 오면. 그때는 더 불쾌해지면서 거래의 규칙을 바꾼 이들에 대해 분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분노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수십 년째 적당한 거래만 하는 법만 배워온 껍데기만 남은 어른인데. 목소리를 내는 법을 까먹어 욕을 할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었는데.
사람은 왜 강해져야 하는가? 세상은 강자가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대로 거래의 방식을 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이 정한 환율을 따라가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 외환이 빠져나가 비상등이 켜지는 것과 같다. 국가가 세금을 높여 민초들의 원성이 하늘에 자자하던 과거나 지금이나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가. 세상을 화평케 하고 백성을 풍요롭게 만든 왕은 역사에서 손에 꼽고, 나머지 왕들은 기억조차 못되거나 아무런 업적도 거론되지 않고, 무능하고 몰락한 왕으로 묘사되는 왕이 한 둘인가.
세상은 강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이를 지킬 방도도 없고, 때로는 내가 원하는 대로 거래의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 비통한 일이지만 부잣집 아들내미는 마약을 해도 부모 덕분에 빠져나와도 가난뱅이 자식은 그럴 일이 없다. 비통한 일이지만 과속을 하고 교통사고를 내고 다녀도 돈이 넉넉한 이들은 거액의 합의금으로, 넉넉한 벌금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반면 자신을 지킬 힘이 없으면 옥살이를 해야 한다. 똑같은 잘못도 누군가에겐 며칠이면, 아니 통장에 흠집도 안나는 푼돈으로 법을 넘어 다니고, 누구는 법 앞에 무릎 꿇고 빌빌 기어야 한다.
적당한 거래를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거래를 해야 한다. 내가 빼앗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이 나에게 부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반대로 내 상황에서 어떤 거래를 할 수 있는가. 세상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가. 적당한 거래가 아닌 완전한 거래. 완전한 주도권을 가진 플레이어로 거래해야 한다. 남이 나에게 주는 성적표를 받고 스스로가 몇 점짜리 인간이라 평가할 필요가 없다. 주도적 거래를 하며 내가 나의 가격을 정하고, 내가 가진 무기를 광이 나도록 반짝반짝 닦아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광이 나는 아름답고 섬세한 작품들을 보며 멈춰 서서, 감탄하고, 사고 싶게 만들어야 그것이 장사인 것처럼. 세상을 살아감에 주도권도 동일하다. 적당한 거래와 적당한 목소리와 적당한 울분 속에서. 싸우는 법을 까먹은 거세된 소처럼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치욕스러운 일이다.
스스로를 거세한 소처럼 대하지 말라. 분노해야 하고 싸워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위해서. 싸움을 해본 적 없는 이들이 어떻게 싸움에서 여유가 생길까.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적당한 거래는 하지 않기를 바라며. 적당한 타협으로 초라한 이로 전락하지 말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