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9.
독재 정부가 들어서자 본격적인 삼권 붕괴가 진행됐다. 아주 오랫동안 설계된 법안들과 시행 절차였기에 권력 교체와 더불어 즉각적인 입법 과정을 밟는다.
보통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민주주의는 효율성으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견제 세력이 없는 모든 조직은 역사적으로 부패했고 그랬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지만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모든 권력을 가지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며 때로는 무조건 반대를 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견제 과정에서 다당제 국가도 결국 양당제로 바뀌게 되고 양당제로 바뀌더라도 이름만 바꿔가며 새로운 탄생과 종말을 맞는다. 쇄신이라는 말이 바뀐 몸체는 없고 썩은 기록을 감추기 위해 간판을 바꿔 끼는 절차를 밟을 뿐이다.
권력을 삼분할하여 나눈 것도 마찬가지다. 각 권력은 서로를 감시하거나 때로는 방해하여 독주를 막는다. 이러한 비효율과 낭비가 누군가에겐 지독히 없애고 싶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 본질이 그렇다. 만약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마음으로 일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 투표 백날 천날 해봤다 전원 찬성이 나오는 몇몇 국가만이 그럴 수 있다. 재밌게도 그걸 그 누구도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는데 그들에게 있어선 그게 민주주의다.
삼권 분립이 붕괴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교도적 관점으로 엘리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들은 엘리트도 아니고 대단한 지성인도 아니며 국가에 헌신한 이들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착취의 고리를 만들어 편하게 인생을 보내려는 권력의 기생충들일뿐이다:
만약 그들이 국가에 기여하여 국가를 발전시켰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하고 응원하고 그런 인물을 존경하여 더 많은 이들이 그들의 업적을 기릴 것이다. 반면 그들이 모티브로 삼은 썩은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들을 보면 그 누구도 그들을 존경하지도 않고 그들의 국민들은 그 나라에서 도망치기 위해 전재산을 버릴 각오까지 한다.
이 나라 역시 위험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된 견제를 하지 못하는 무능한 이들 덕분이다. 세 개의 힘의 균형을 국민이 나누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을 믿을 수 없다. 가장 부패한 조직은 어떠한 감사도 감시도 받지 않는 초법적 기구뿐이다.
한국에 희망이 없는 것은 한국이 절대적으로 못 살만한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싸움이 이뤄져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는 무능함과 힘을 가진 이들이 깨어서 싸우기보다는 시대에 편승하여 개인의 이익만을 누리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가 발전했던 것은 자신보다 나라를 아꼈던 이들의 희생 덕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희생의 수혜를 본 희생하지 않은 이들이 너무 많은 힘과 부를 가져갔다.
분산된 권력을 상실하고 제왕적 권력으로. 견제 세력이 없는 모든 사회는 부패했음에도 부패의 길로. 미디어에 나온 것들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무지함으로. 지식인의 책임을 버리고 소시민으로 살기로. 그 모든 과정을 자발적으로 밟았으니 국가에 어른이 없고 회초리를 들 아버지가 없다. 이 나라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