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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통찰

노점상은 왜 언제나 가난할까?

왜 언제나 시간이 없을까?

by 한상훈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한 지인이 생각났다. 전혀 저축을 하지 않고 버는 족족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다 써버리는 분에 대한 생각이었다. 저축이 없으니 여유 자산은 전혀 없었고, 여유 자산이 없다는 것은 언제나 위기가 닥쳐오면 대응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즉 취약한 상태로 자신을 노출하는 셈이다.


또한 이 분 같은 경우엔 갚을 수 있는 소액의 빚도 갚지 않고 이자를 지불한다. 빚을 현명하게 자산을 증식시키는 방향으로 쓰는 게 아닌 그저 지금 갚기 싫어서 뒤로 미루며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예시는 비단 내 지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통계적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은 한 달 안에 여유 자금 2000달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충격적인 사실이 아닌가. 고작 2000달러다. 대한민국보다 높은 개인 총생산과 평균 임금이 있는 국가에서도 한화로 치면 280만 원 정도가 되는 금액인데 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 인구의 대부분은 매달 버는 돈의 대부분을 빚과 이자를 상환하는데 계속 쓰고 있기 때문에 여유 자금이 필요할 때는 또 빌리는 방법 말고는 대응이 불가하다.


그뿐 아니라 인도의 노점상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충격적이다. 인도의 노점상들은 1000루피(약 15,857원)의 빚을 매일 진다. 이 돈으로 한참을 걸어가 물건을 사 오고, 그것을 1100루피에 판매한다. 수익은 100루피(약 1,585원)이다. 그런데 이들이 빌리는 일 대출의 이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간급 되는 노점상들이 거래하는 대출은 하루 이율이 5%나 된다. 즉 수익의 50%인 50루피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하루 수익은 50루피이며, 그들이 대출에서 해방돼서 장사를 하는 시점은 1000루피만 저축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하루 수익의 10%인 5루피만 저축한다면 200일이면 빚 없이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순수익은 50루피에서 100루피로 상승한다. 그러나 200일 동안 5루피를 아끼는 선택지가 이들에게 있었을까? 놀랍게도 이들은 5루피를 아끼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축을 하지 못하고 매번 빚을 지는 선택을 했다.


연구팀은 이들에게 1000루피를 무상으로 주어 빚에서 해방되게 해 주었다. 그러면 이제 빚 없이 물건을 구매해 노점에서 1100루피에 판매해 이윤을 남기게 되어 장기적으로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존의 이윤인 50루피에서 100루피로 늘어난 것에 맞춰 오히려 소비를 늘렸고, 결과적으로 다시 빚을 지는 상황에 놓였다.


결과에 따르면 결핍 상황에 놓인 사람이 결핍에서 해방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여러 가지 사유로 다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며, 또한 자신이 놓인 근본적 문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관측됐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200일 동안 수익의 10%를 절약해야만 얻을 수 있는 행운을 탕진하는 데 사용했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이와 유사한 행동은 비단 돈의 결핍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소득 수준이 극단적으로 낮은 이들에게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소득 수준이 훨씬 높은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삶을 사는 이들은 무척이나 많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미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인구가 신용카드와 매달 들어오는 수익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건설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한다.


결핍이 야기한 더 많은 지출도 심각한 문제다. 결핍에 노출된 사람은 유흥이나 쾌락에 지출하는 비용을 극단적으로 높여 결핍에서 탈출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견디는데 초점을 둔다. 이를 비율로 계산하면 이러한 사람들이 유흥과 쾌락에 돈을 쓰는 비율은 전체 수익의 약 10%를 초과하는 수준까지 설정된다. 부자들이 쾌락에 쓰는 비용을 생각하면 그들은 더 쓰는 것 같지만, 그들은 전체 수익의 10%나 되는 돈보다 한참 아래의 비용을 지출하는 반면,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들일수록 담배, 술, 기타 유흥 등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쌓아둔 자금이 전혀 없기 때문에 투자를 통한 수동적 소득 및 저축을 통한 이자 또한 발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중요한 자본을 통한 수익 구조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 놓인다.


비슷한 결핍 시나리오는 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시간을 원하지만 정작 시간이 생기면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낭비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한정된 자원인 시간을 앞선 인도의 노점상들처럼 사용해 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간을 대출하고, 대출의 이자를 지불하며 살게 된다.


시간을 대출하고 이자를 지불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람에게는 시기가 있어서 특정 시기, 골든 타임을 놓치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곱절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적절한 수준의 운동과 식습관은 시간을 크게 낭비하지 않는 건강한 습관이지만 이것을 완전히 배제하면 차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더 많은 비용 또는 시간과 에너지를 지출해야 한다. 음식을 먹은 후 이를 닦는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들어가지 않지만 이것을 치료하거나 치료 타임도 놓쳐 임플란트 또는 틀니로 대체되어야 한다면 시간과 더불어 비용, 그리고 고통까지 발생한다.


시간의 풍요는 잠깐 생기는 돈의 풍요와 완전히 동일해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에서 얼마의 비용을 지불할지가 예상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남는 시간을 낭비에 집중하고, 전체 여유 시간의 대다수를 쾌락에 쏟고 있다면 앞선 유흥과 쾌락에 돈을 쓰는 비율이 10% 이상인 집단의 소득이 최하위로 형성된 것처럼 마찬가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에게 주어진 풍요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지키는 자에게는 더 쉽게 풍요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며, 결핍은 더 많은 결핍을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돈과 시간, 감정과 에너지. 자원을 결핍 상태로 노출시킨다면 판단은 흐려지며, 미래를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인도의 노점상들이 뻔히 빚을 져서 수익의 절반을 빼앗기는 삶을 살면서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벗어날 수 있는 굴레에 자신을 내려두고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굴레를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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