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1.
오늘은 집에서 가장 오랫동안 청소되지 않은 곳을 청소했다. 밥을 차려먹고나서부터 시작한 작업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날 수 있었다. 청소한 곳 중 한 곳은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찬장이었다. 이런저런 얼룩이 있기도 하고, 여러 끈적한 오염물이 있어서 건드리기 싫었던 곳이다. 언제 생긴 건지도 모르겠지만 더러움이 있다 보니 오히려 방치해 두었다가 요즘 청소를 하면서 모조리 다 치운 것이다.
더러웠던 찬장과 그 안에 기름때가 있던 물건들도 식초, 베이킹소다, 구연산 등을 통해 광나도록 씻어내니 세제만으로는 들리지 않는 뽀드득 소리가 나는 수준이었다. 치우는 김에 냉장고 뒷 편도 청소를 하게 됐다. 냉장고 뒤편은 냉장고를 움직여야 하니 아주 가끔, 거의 1년에 한 번 정도 치운 것 같은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많이 더럽진 않았지만 냉장고 뒷 공간까지 모조리 치우고 나니 사실상 집에 치울 게 하나도 남지 않는 상태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청소를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꽤 넓은 고향집 이곳저곳을 하나하나 다 고치시고 완벽에 가깝게 정돈하시는 분이다. 시골이다 보니 쥐가 들어오거나 벌레가 생기기도 하고, 텃밭도 있으니 흙이나 야생동물이 만든 오물이 생기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집은 깨끗하다. 집이 깨끗한 이유는 아버지가 집의 특정 부분이 더럽다고, 보기 싫다고 관리를 안 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러운 부분이 생길지라도 모조리 깨끗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깨끗했던 것이다. 즉 아버지는 집을 완전히 소유한 사람이었다. 완전히 관리하고 있기에, 완전히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집의 그 어떤 부분도 더러움이 쌓이지 않고 깨끗한 것이다.
반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집에서 살면서도 집의 일정 부분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더러움은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갔던 것 같다. 한 번은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피폐해졌던 시절에 아무것도 치우지 않고 꽤 오랜 시간 보낸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더럽게 집을 둔 시절일 것이다.
당시 나는 나를 통제하지도 못했고,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도 통제하지 못했고, 내가 머무는 공간조차도 통제하지 못했다. 내 정신 상태가 온전히 내가 거주하는 곳에 나타났다. 겉으로 보면 그럭저럭 살아갈 만은 하지만 정작 속 사정은 엉망진창인 상태.
질서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지 않을 순 있어도 그 끝은 무척이나 평온하다. 깨끗한 공간에서, 먼지 하나 없는 곳에서 편안한 잠에 드는 것은 누군가에겐 호텔에서나 누리는 호사가 될 수 있지만, 공간을 완전히 관리하는 이에겐 매일매일 누릴 수 있는 호사이기도 하다.
고통 후에 주어지는 평온함과 자유로움은 길게 느껴지는 행복감에 가깝다. 반면 아주 쉽게 얻어지는 자극을 통한 쾌감은 반대로 길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고통을 끌고 온다.
불교에서의 가르침과 같았다. 의식적으로 행한 질서를 위한 고통.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자유를 주었다. 반면 의식적으로 쾌감만을 얻기 위해 했던 것들은 빚을 지는 것과 같았다. 쉽게 얻은 쾌감에 대해 원금과 이자를 더한 쾌감을 빼앗긴다. 삶의 즐거움도, 삶을 이겨낼 힘도, 마음의 여유도 쥐어짜 낸 것 같이 말이다.
이렇게 청소를 하고, 하루하루 음식을 해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지난 수주 간 이어온 다음 목표에 대한 계획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은 급하게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먼 길을 가야 한다면, 건강하게, 진득하게, 끈기 있게, 내가 가장 좋은 모습으로 그 길을 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이 아닌 단단한 기반을 쌓는 일. 질서를 위한 고통. 질서로 인해 얻어진 즐거움. 이번엔 아직까지와 달리 천천히, 무겁게 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의 고통은 썩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