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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통찰

파충류의 뇌

왜 인간은 고통 속에서 절망으로 떨어지는가

by 한상훈

완전한 뇌과학 이론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쉬운 이해를 위해 나오는 용어 중 하나가 바로 삼위일체 뇌(Triune Brain) 모델이다. 삼위일체 뇌는 신피질, 변연계, 그리고 R복합체라 부르는 파충류의 뇌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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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피질은 고등 포유류에서만 관찰되는 부분으로 직관과 감수성, 창조적 통찰, 패턴 인식, 이성적 분석, 분석적 사고, 비판적 사고를 돕는다. 변연계는 포유류의 뇌로 감정, 기억, 행동 조절과 관련된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동기, 감정 등이 모두 변연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그렇다면 R복합체, 파충류의 뇌는 어떨까? 이름부터 알 수 있듯 파충류의 뇌는 파충류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이 가진 뇌로 생명체의 근간을 이룬다. 그 근간에는 생존과 직결되는 요소가 가득하다.


공격적 행동, 세력권 방어, 생존을 위한 방어, 정형화된 의식 행위, 계층적 위계질서 등이다. 계층적 위계질서가 왜 생존과 직결될까? 생존의 측면에서 부족의 족장이나 권위가 있는 강력한 존재의 의견에 반기를 드는 것은 현명한 판단은 아니다. 정확히는 죽음을 부르는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파충류의 뇌는 권위에 순종하고, 질서를 따르며, 생존을 위한 행동과 모두 직결된다.


그렇다면 파충류의 뇌만 따르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악어의 뇌와 같은 수준의 뇌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행동을 우선한다.

종교적, 정치적 맹신이 발생한다.

위계 조직에서 무비판적 복종 구조를 따른다.


이것은 생존에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 번쯤 고민해 볼 요인이다. 파충류의 뇌가 직접적으로 삶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은 신피질이 크게 발달한 사람들과 삶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가? 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뇌의 성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 아닌 결과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폭행을 당하고 자란 아이는 과도한 공포와 폭력에 대한 반응으로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또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뇌의 해마가 위축해 기억력, 학습 능력 저하 및 감정 조절 문제도 발생한다. 또한 해마의 손상은 우울증과 PTSD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신피질 중 일부인 전전두엽 피질의 발달도 지연된다. 이곳의 발달이 지연되면 판단력 및 충동 조절 능력이 저하되며, 공감 능력이 손상되고, 도덕적 판단과 미래 계획 능력이 감소한다. 감정적 분노의 폭발과 무책임한 행동, 공격성이 증가되는 패턴도 보인다.


무서운 일이다. 고작 어린 시절 있었던 폭력만으로 뇌 성장 시기에 평범한 인간이면 가질 수 있는 뇌의 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파충류의 뇌와 감정과 연결된 부분들만 살아남고, 고등 사고와 판단, 직관, 이성적 분석 능력은 잃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영구적이지 않아 신경 가소성을 유도하는 장기적 심리치료 및 환경으로 개선될 수 있으나 이미 성장 단계에서 손상된 뇌는 복구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건 슬픈 현실이다.


'왜 저 사람은 감정 조절을 못하고,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따를까?'라는 질문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들은 겉보기엔 건강해 보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서로 다른 뇌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 같은 상황에 놓여도 견딜 수 있는 참을성의 정도가 다르며, 트라우마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며,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와 습관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을 단편적으로 실패자나 무능력자, 한심한 이들이라고 집단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며, 더 나아가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나는 내가 봐도 한심해." 하며 좌절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선택할 수 없는 뇌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겉을 볼 뿐이다. 아무리 내면을 본다고 해도 그 내면은 고작 뇌에서 만들어진 감정, 생각, 추론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이 내면을 이루게 된다. 뇌가 손상되면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한 순간에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며, 강인한 이도 약해지곤 한다. 겉이 건강해 보여도 많은 이들이 여러 삶의 위기 속에서 제대로 성장해야 할 신피질이 성장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고, 또한 삶의 위기에 닥치면서 존재하던 신피질이 줄어드는 상황도 발생한다.


특히 장기적 부채와 가난, 결핍 상황은 이를 악화시킨다. 왜 가난한 이들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을까? 오래된 결핍과 가난 상황은 생존의 위기를 만들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신피질은 줄이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부분만 남기게 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장기 생존에 도움이 안 되지만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놓인 슬픈 현실이자 자화상이다. 사람은 쉽게 판단될 수 없다. 나와 당신의 뇌가 다른 것처럼 길거리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신호를 처리하는 뇌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그들을 쉽게 비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오만함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보이지 않는 축복에 대해선 감사하지 못하는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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