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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거위를 죽여라

2025. 7. 23.

by 한상훈

네오플 노조의 시위를 보면서 나는 내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들을 떠올렸다. 평균 야근 시간 42분. 넥슨 전체 평균 야근 시간 30분. 내 회사는 어땠을까? 단언컨대 평균 야근 시간 30분도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10분도 안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눈에는 내가 무척이나 나쁜 놈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회사가 위기여도 티를 내지 않고 오히려 직원들과 웃으며 지내려고 애썼다. 농담도 하고. 개발을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일원화하긴 어려웠다. 개발을 가르쳐주는 것을 오히려 시큰둥하게 여기는 직원들도 있었고, 누구는 가르치고 누구는 가르치지 않으면 그것 가지고 또 불만을 제기하는 직원은 생기게 된다. 작은 회사 살려보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애초부터 나는 사람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배가 부르면 간식을 요구하고, 간식도 먹고 나면, 이제는 잘 시간이라며 잠을 청하는 게 사람의 심리였다.


그렇게 거위의 배는 찢어져 죽어버렸다. 한국에서 비전을 품고 사업을 하던 나의 영혼은 3년 정도 되는 짧은 기간 동안 현실이라는 칼에 반으로 잘려버렸다. 나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멍청이는 아니다. 사람은 본성이 있다. 그 본성을 거스르는 방식으로는 기업을 제대로 이끌 수 없었다. 평등한 조직? 수평적 조직? 야근을 하지 않는 기업 문화? 우리 직원들 중에 내가 지었던 짐의 크기를 대충이라도 짐작하는 직원은 몇 명이었을까?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욕을 먹고, 실력이 아닌 직원의 잠재력을 믿고 채용했던 것을 기억하는 직원은 몇 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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