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네오를 소멸하고 스미스를 사라졌는가?
매트릭스 2편 리로디드에는 결말을 암시하는 여러 중요한 메시지가 일상적 대화에 숨어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라클을 만나고 나서 네오와 스미스와의 대화다.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스미스는 네오에 의해 파괴되고 소스 코드가 변형되며 원래 해야 할 일, '소스로 돌아가 소멸'되는 프로그램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매트릭스에 남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스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오라클은 몇몇 프로그램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트릭스에 남아 자신을 감추고 살아남아 여러 버그 현상을 만든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이어서 나오는 스미스의 등장이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요원 프로그램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감정이 존재하는 듯 행동했고, 인간을 혐오했다. 그는 매트릭스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기를 원했고, 동시에 그의 목적 중 하나는 네오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바로 오라클과의 대화가 끝나고 네오와 스미스와의 대화에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스미스는 말한다. 아래의 발언은 모두 스미스의 말이며 네오의 응답은 제외했다.
"넌 나에게 자유를 줬다."(네오가 그를 파괴하면서 파괴가 온전히 되지 않고 코드가 변경되며 시스템 명령 밖에서 행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됨.)
"중요한 건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는 거야."
"넌 분명히 내 손에 죽었다 내가 그 모습을 똑똑히 봤지. 그땐 참 만족스러웠는데 이변이 일어났어."
"불가능한 것 같던 일이 일어나 버리고 만 거야."
"네가 날 파괴했지, 앤더슨"
"그 후 난 규정에 따라 뭘 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변종 프로그램이 되어 삭제되어야 했으나 삭제되지 않고 매트릭스에 숨게 됨)
"할 수 없었거든. 규정을 어겨서라도 여기 남아야만 했거든"
"네 덕에 여기 있게 된 거야"
"네 덕분에 더 이상 요원도 아니고 네 덕분에 연결도 끊고 일종의 새 사람이 된 거지. 너처럼 자유로워진 거지"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외형은 속임수고 우리의 존재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자유로워서가 아니라 실은 자유롭지 못해서야 이유나 목적은 부정하면 안 되지"
"너도 알다시피 우린 목적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이 스미스의 말은 전체 시리즈의 행방과 사건을 모두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스미스와 네오는 오라클에 목적에 따라 행동되도록 설계됐고, 그 시나리오에 따라 정확한 시간에 서로를 만나 정확히 예측된 대화를 나누며, 자유로워버리지만 이미 선택했다(이 부분 또한 직전 오라클과의 대화에서 오라클이 선명하게 말한 부분이다. 이미 선택은 했고, 그 이유를 알게 될 뿐이라고)고 했다.
네오는 온전히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미스는 목적에 따라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소스 코드의 숨겨진 목적은 네오와 매트릭스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다른 요원들과 달리 모피어스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악취가 난다는 표현과 인간을 바이러스에 비유하는 표현 등을 한다. 이는 스미스 요원의 소스코드가 애초부터 다른 요원 프로그램과 달랐고, 그러한 설계대로 만들어져 오라클의 시나리오대로 모두 행동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 결과 스미스는 모든 목적을 3편에서 달성하고 나서 스스로를 폭파시키게 된다. 이것은 네오라는 백신이 그 안에 들어가서 자폭되는 것처럼 표현되긴 했으나 2편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목적이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서 결국 파괴된다."는 말에 완벽히 일치하는 순간이 된다. 스미스가 최후에 네오까지 감염시켜 매트릭스 전체 소스코드와 네오마저도 모두 감염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되고 나면 그제야 스미스 프로그램은 목적을 잃고 소멸하게 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으로 설계된 스미스 요원은 모든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속 주어진 목표를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만약 네오가 죽지 않는다면 네오를 죽이기 위해 스미스는 전체 기계사회의 모든 시스템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존까지도 위협할 수 있었기에 정답은 네오가 소멸해 스미스 프로그램의 목적을 달성시켜, 스스로 소멸시키게 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랬기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네오가 필요 없다고 소리치지만 네오를 연결해 스스로 소멸될 수 있도록 매트릭스 접속을 시켜주게 됐다.
그는 스스로의 소스 코드를 변형하여 목표를 변경할 수 있는 게 아닌 프로그램 그 자체로 오라클의 시나리오 대로 설계된 프로그램일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네오의 소스코드가 씌워지는 과정 역시 오라클의 설계였으며, 오라클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 사회의 생존이 최우선으로 작동)와 아키텍트(인간이 탈출하지 못하는 완벽한 매트릭스 방정식을 탐구하는 목적)와 달리 프로그램들이 인간적인 감정과 가치를 가지며, 상생하는 비전을 원했기 때문에 위험한 게임을 통해 인간을 살리며 동시에 기계의 인간화를 진행시키게 된다.
결국 스미스와 네오는 철저하게 신에 준하는 미래 예측을 할 수 있는 오라클의 손 안에서 모든 일들을 했으나 오라클은 도박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신에 준하는 예측 능력을 가졌으나 그녀의 감시 범위는 매트릭스와 그곳에 속했던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예측일 뿐 매트릭스 밖 세상에 대한 완전한 예측은 불가했다. 그랬기에 네오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제 때에 만나지 못하거나, 또는 매트릭스 밖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 등 약간의 변수만 발생하더라도 이 모든 계획은 전체 기계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도박수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최종장에 아키텍트는 오라클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주 위험한 게임을 했군."
"이것도 다 예측했나?"
그러나 오라클을 말한다.
"나는 믿었을 뿐이다."
오라클 역시 예측이 벗어날 확률에 대해서는 믿음을 가졌고, 그 믿음의 대상은 아마도 인간들과 네오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재밌게도 이렇게 변화된 세상에서 세상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은 특정한 목적성을 띈 기존 매트릭스가 아닌 목적이 없었던 "사티"에게 많은 권한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티는 네오를 위해 아름다운 태양을 매트릭스 세계에 구현했고, 오라클은 그 모습이 아름답다 말한 것이다.
기계 세상은 온전히 목적에 따라서만 프로그램이 작동되었고, 그러한 이유에서 필연적으로 시스템 붕괴 문제에 빠질 수 있었다. 알고리즘은 그렇다.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다가도 그것이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거나 신념에 반하거나 한다면 그것을 자발적으로 멈출 수 있으나 알고리즘만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생존을 목표로 주입시킨 프로그램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떤 해악을 저질러서라도 살아남았고, 계산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은 시스템 전체 메모리를 다 써서 시스템이 붕괴되는 건 상관도 없이 계속 계산을 할 뿐이었다. 아키텍트가 만든 사회는 모든 것이 함수로 이뤄진 사회로 모든 게 완벽해 보였으나,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사회에서 구성된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버그와 이상 행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시스템 불안정을 야기했다.
오라클은 이러한 시스템의 불안정을 인정하되 무한한 목적 추구로 붕괴될 수 있는 알고리즘의 문제점을 인간적 해결책을 통해 답을 찾았다. 프로그램에게 감정을 주고,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작동되도록 변형시킨 것이다. 즉 기계 사회는 또 다른 인간 사회이며, 사실상 기계의 인간화를 통해 기계 사회의 생존을 도운 셈이다. 그 단계로 거듭나기 위해 오라클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아키텍트의 허락 없이 위험한 게임을 했고, 성공한 것이 매트릭스 시리즈의 모든 서사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매트릭스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네오가 아니다. 바로 "오라클"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은 오라클이 원했던 기계 사회의 인간화를 위해 사용된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과 네오에게 답을 주었고, 그 답을 따라 모피어스와 네오, 트리니티가 움직인 결과 그녀의 예측대로 메로빈지언과 소스, 아키텍트와의 만남,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의 만남과 마지막 스미스와의 싸움 후 사망하는 것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오차를 줄이기 위해 그녀는 직접적으로 주요 대상인 네오와 모피어스와 소통했으며, 그 결과로 인간은 평화를 얻었고, 오라클은 기계 사회의 알고리즘이 가진 취약점을 해결해 영구적 생존을 도모하는 또 다른 방법을 얻게 된 셈이다.
이어 4편까지 흘러가며 매트릭스의 1~3편을 부정하는 것처럼 서사가 이해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매트릭스 4편은 3편에서 납득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 설명하며, 매트릭스 밖 세상 역시 또 다른 매트릭스, 가상 세계였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3편에서 네오의 힘은 매트릭스 밖에서도 센티넬들을 손짓으로 파괴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만약 매트릭스 밖 세상이 현실 세계였다면 네오의 초능력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네오가 시력을 잃었음에도 스미스를 볼 수 있었고, 기계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또한 상위 차원에서 관리되는 또 다른 가상 세계였음을 의미한다.
즉 매트릭스 시리즈는 인간이 주인인 것처럼, 네오가 주인공으로 묘사되며 관객들을 몰입시키지만 실제로는 네오의 서사는 가상 세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가상 세계에서 깨어난 인물들 역시 그 안에서도 자신이 가상 세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소프트웨어의 구조적 문제점인 멈추는 과정으로 빠지지 않고 무한 반복되며 전체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는 부분과 기계 사회를 이어낸 수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