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즐거움

by 한상훈

요즘은 이상하리만치 즐거운 꿈을 자주 꾸는 것 같다. 그렇게 즐거운 꿈 속에서 유영하다 깨어날 때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다음엔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 하며. 하지만 꿈은 이내 큰 항아리에 물감을 떨어뜨리듯 선명한 듯 하지만 금세 흐릿해지고,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뻗으면 그대로 휘휘 섞여 사라진다.


아름다운 꿈속을 누비다 깨어난 곳은 현실. 현실은 보통 일상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큰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다. 꿈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현실은 아주 천천히, 고요하게 이뤄진다. 의도하든 하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은 아침부터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시간대로 일정을 보내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서야 집에 도착해 쉼을 누린다. 그마저도 해야 할 집안일들과 소일거리, 자기 관리를 생각해 본다면 참 빠듯하고 규칙적인 삶이다.


생각해 보면 꿈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기억하기 쉽지 않았다. 가령 꿈에서 일어나서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천천히 커피 한 잔을 한다와 같은 일련의 일상적 사건들은 거의 드물고, 언제나 독특한 사건의 파편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를 빠르게 경험하도록 한다. 어차피 눈을 뜨면 사라질 것이지만 왜 이토록 정교하게 꿈을 만들게 된 것일까.


어쩌면 잠을 자는 시간조차도 아깝다고 느껴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이 아니었을까. 삶에 대한 아쉬움, 흐릿해져 가는 본연의 소망, 두려움, 기억과 감정의 찌꺼기들이 모두 뒤섞여 만들어낸 실체를 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꿈을 기록해 둔다. 특히 기억하고 싶은 꿈일수록 더 기록해 둔다.


한 편, 이 삶 역시도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의 꿈속에 존재는 아닐까 하며. 꿈과 삶의 차이점이라곤 하나다. 삶은 눈을 뜨면 시작하고, 눈을 감으면 끝난다. 반면 꿈은 눈을 감으면 시작하고, 눈을 뜨면 끝난다. 서로가 반대인 것이다. 하나에 종속되어 있다면 다른 세계를 볼 수 없다.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그는 꿈의 세계를 알지 못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로 상상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꿈에 세계에만 머문 사람이 있다면 꿈이 아닌 세계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생이 한 편의 꿈이란 생각을 종종 한다. 손으로 쥔 것 같아도 사실 손에 쥘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죽음 이후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왜 시작된 것인지 모르는 사유를 품고 지독한 운명을 따라 살아가는 고독한 영혼들이 아닌가 싶다. 아무도 이유를 모르기에 아무도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유 모를 곳에서 와서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야만 하는 처량한 존재가 아닐까. 그렇기에 모두에게 모두는 똑같은 여린 영혼에 불과하지 않을까.


내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기에 내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은 합당한 결론이다. 그곳에서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을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혹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는 무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구비된 천국일까. 아니면 업보를 씻어내기 위한 고통의 자리일까. 꿈과 꿈이 아닌 것의 차이가 흐릿하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저 탐구하고 살아가며 어떻게 서든 즐거움을 찾아 발버둥 친다. 그게 삶이라면서.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끝날 순간들이라면 조금이라도 즐겁게 보내는 게 좋겠지. 어쩌면 인간은 그저 즐겁기 위해서 사는지도 모르겠다. 이유 따위는 전혀 중요치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의미